각본가가 대칭에 미친다면 이런 뮤지컬이 나옵니다

뮤지컬 | 지킬 앤 하이드를 보았다면 더 재밌게 읽혀질
글 입력 2022.10.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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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뮤지컬을 좋아한다면 <지킬 앤 하이드>는 필수 관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보게 되었다.

 

 

 

Facade | 가면 속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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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 배우들의 반복되는 손동작 안무와 붉은 조명의 강렬함, 푸른 조명의 냉혹함이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 잘난 여자 잘난 남자 겉보기엔 손색없이 하지만 결국 모순 덩어리의 위선자

성직자는 살인 살인자는 설교 교사는 거짓말을 사기꾼은 공부를

 

Facade 

 

 

이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곡은 인간의 이기심과 이중성, 위선적 면모를 고발적 성격의 넘버이다. 이 장면에선 인간을 중심축으로 모든 사회의 자본적인 흐름과 이로 인해 이기적으로 변한 인간을 꼬집는다. 동시에 극의 대칭적인 성격을 이중적으로 담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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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층은 끊임없는 노동에도 계속해서 힘든 삶을 살아간다. 이는 1층의 앙상블 배우들의 반복되는 손동작 안무를 통해 표현된다. 그들은 마치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있는 것 마냥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기묘한 손동작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들을 아무 동정심 없이 응시 중인 2층의 자본가들의 모습은 꽤나 함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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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의 후반부 즈음 ‘하지만 결국 모순 덩어리의 위선자’라며 자본가들과 빈민층들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이는 모든 사회적 난제는 서로의 탓이라며,

‘우린 잘못한 거 없어’라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인간의 이기심을 풍자하는 듯 하다.

 

 

 

No one knows who I am | 여성 캐릭터의 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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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루시의 공식적인 등장이 나왔다. 루시는 매우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이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인물이다.


이 넘버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며 자신은 누구냐며, 내가 누구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며 한탄하는 루시의 비극적인 선율이 담긴 곡이다.


단조스러운 기악의 흐름과 비관적인 가사로 보아서는 루시의 공허한 삶과 사랑 없는 차가운 현실에 지긋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루시 스스로가 찾을 수 없는 정체성을 스스로 규명하고자 하는, 희망적인 느낌의 넘버라고 본다.

 

루시는 환경이 안정적이거나 사랑스러운 성격의 캐릭터는 아니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 누구보다 거칠고 구박받으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엠마보다 더 연약하고 상처받는 존재다. 수많은 남자들의 손길을 거쳐온 루시지만, 처음 받아보는 지킬의 친절함이 그녀에겐 곧 사랑으로 다가온 순수한 존재다. 처음 느껴보는 친절에 푹 빠져 지킬을 사랑하게 된 루시는 그로 인해 새 삶을 살리라 당당히 기약하지만, 희망찬 다짐과 동시에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러한 비극적인 면모와 순수하고 연약한 내면의 면모가 합쳐져 루시라는 캐릭터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의 인생은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또 그 순간 부르는 A new life는 얼마나 잘 만든 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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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이퀄리즘이 수면 위로 깨어난 요즈음, 공연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적응을 해 나가는 느낌을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여성 캐릭터가 메인타이틀이 되거나, 여성 캐릭터가 극의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극들이 높은 평점을 받는다거나 등. 그렇다고 해서 공연계가 사회 흐름의 눈치를 본다는 건 아니다. 무대 예술은 낚아채려는 소재가 얼마나 전위적인지 상관쓰지 않고, 좋은 예술과 잊지못할 찰나의 순간을 만들기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소재로 채택하는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무대 예술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렇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지킬 앤 하이드>는 어떨까?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서 <지킬 앤 하이드>는 적절한 시대에 흥행하고 있지 않다. 결혼식을 앞둔 지킬이 유흥업소에 가는 부분이나, 누가봐도 매력적인 두 여성 캐릭터가 누군가의 서사를 위해 소모되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킬 앤 하이드>의 스토리, 여성 캐릭터의 비중에 대한 비판과 작품 리바이벌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곤 한다.

 

나 또한 지킬 앤 하이드의 각색 버전이 기다려진다. 다만 이 작품은 특정 교훈이나 시사점을 던져주기 보단, 단순히 많은 요깃거리와 자극적인 연출, 쫄깃한 넘버의 작품이기에, 각색에 강경히 찬성하진 않는다. 그저 루시나 엠마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단순히 소모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만약 루시가 '새 인생'을 부른 후 죽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면? 그 나름대로 궁금하긴 하다만, 지킬 앤 하이드는 모든 인물이 죽는 맛에 보는 거 아닌가! 내 의견은 그러하다. 이런 극이 있으면 저런 극도 있는거지. 선만 넘지 말자고~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 | 쇼 커튼과 실험실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의 실험실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는 '단순히' 외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무대를 만들지 않는다. 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무대 속에서 극의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는 그런 무대를 만든다. 그의 손이 닿는 무대는 항상 작품의 일부가 되어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외관적으로 굉장히 화려하고, 현대적이고, 독특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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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무대의 쇼 커튼은 꽤 함축적인 의미를 갖곤 한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저 자주 나오는 조명의 색을 쓴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킬 앤 하이드>의 쇼 커튼과 포털은 인간 내면에 얽혀 있는 두 가지 욕망인 선과 악을 형상화하고자 했다고 한다. 선은 푸른색으로, 악은 붉은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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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의 실험실을 무대에 구사한 이 장면은 꽤 화려하고 인상적이다. 이 공간은 지킬이 현실 세계로부터 그를 분리시키는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맨 아래 있는 칸부터 무대 세트의 천장까지 수많은 약물이 전시돼 있는데, 이는 지킬이 박사로서 끊임없는 열정과 수많은 실험을 해왔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또한 실험실 세트가 워낙 웅장한 느낌이라, 이 세트 안에서 부르는 지금 이순간이 그렇게 웅장하다.

 

 

 

this is the moment | 이거지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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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이다. 모두가 이 넘버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넘버가 시작될 때 나오는 피아노의 그 낮은 음이 나오자 그 박자에 따라 심장이 따라 뛰기 시작한다. 후렴구가 나오고 그의 실험실이 열릴 때 예상하지 못했던 무대 안 밝은 흰색 조명이 굉장히 아름답다. 인외적 감정과 경이로움 황홀함을 무엇보다 잘 표현해 내는 조명이 흰 조명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홀로 무대에 서있는 지킬의 몸을 따라 흰 실루엣처럼 그려지는 흰 조명은 이 장면의 웅장함을 더한다.

 

 

 

In his eyes | 대칭이 아름다움을 띌 때

 

내가 아는 여성 듀엣 넘버 중 감히 최고의 곡이라 말할 수 있다! 동시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대칭성에 관하여 절대 빼놓고 논할 수 없는 넘버이기도 하다.

 

엠마와 루시의 목소리는 위키드의 엘파바와 글린다의 목소리처럼, 완전히 다른 재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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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의 목소리를 그가 살아온 나날처럼 따뜻하고 꾀꼬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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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목소리는 그가 살아온 삶처럼 묵직하면서 앙칼지다.

 

이처럼 두 여성 캐릭터가 보여주는 차이의 무게는 작품의 대칭성을 이루며 이는 곧 스토리의 개연성을 성립시킨다. 상대적으로 재력가 집안인 엠마는 세트의 2층에서, 하류층인 루시는 1층에서 부르는 것 또한 그러하다. 루시는 거칠고 문란한 클럽 유흥가에서 자라온 이지만 사실 순수하고 여린 영혼의 소유자였으며, 엠마는 온실 속 화초처럼 평탄히 자라온 것과 반대로 굳은 심지의 소유자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대칭성 | 이거 보러 들어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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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지킬 앤 하이드를 얘기할 땐 대칭성이 빠질 수 없다. 내가 극에서 찾은 대칭 요소는 총 5가지다.

 

엠마와 루시

거리와 클럽에서 자라온 루시, 유복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라온 엠마처럼 작품의 두 여성이 대칭을 이룬다. 캐릭터 설정만을 넘어, 배우 본체가 구사하는 목소리조차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엠마로부터 꾀꼬리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루시로부터 소울풀한 진성 발성도 듣는다. 관객에게 얼마나 이득인가?

 

지킬 그리고 하이드

주인공에게 정반대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도 완벽한 대칭이다. 한 자아는 '선함'을 갖고, 다른 자아는 이 선함과 분명히 대비되는 '악함'을 갖는다. 전자는 지킬, 후자는 하이드로 생각되곤 하지만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질이 다분한 지킬이 과연 선함을 상징할 자격이 있는가는 새롭게 생각해보아야 할 논쟁거리다. 

 

조명

보통 푸른색이 무대에서 쓰인다는 건 극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서, 붉은 조명은 강렬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이 두 조명이 상징적인 넘버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 또한 대칭이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가장 임팩트있는 장면을 고르자면 2막 후반부의 'Confrontation'이 될 것이다. 다른 색의 조명이 재빨리 번복하는 것 또한 대칭을 이룬다. 

 

빈민층 그리고 자본가

지킬 앤 하이드에선 부유한 자본가, 그렇지 않은 빈민층이 빈번히 등장하기에 일명 계급론을 채택한 극이라 볼 수 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약혼녀는 상대적 부유층에 속하지만 그들의 도처엔 루시와 같은 빈민층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모습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제목

이 뮤지컬의 제목은 지킬 앤 하이드. 저 가운데 앤(And) 을 보라. 작품의 이름 또한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아니한가?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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