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고리군과 아스파라거스군, 이중섭[미술]

ㅈㅜㅇㅅㅓㅂ, 편지로 엿보는 그의 사랑
글 입력 2022.10.20 02: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내가 만난 이중섭 

 

 

 

이중섭의 편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흰 소를 그린 화가, 담뱃값의 은박지 위에도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리고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던 한 화가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의 편지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3530909086_UGK2MhIW_a94c44da9fe455fc3236877a01a4ef86.jpg

 

 

중섭은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가서 데이코쿠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의 분카가쿠엔으로 옮기게 되는데, 분카 학원에서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 연애를 하게 된다.

 

이후 1943년까지 일본에서 활동을 하다가, 1945년에 마사코와 결혼하게 되고 원산에 자리를 잡게된다. 마사코는 이남덕으로 이름을 바꿨고, 1947년엔 첫째 이태현, 1949년엔 둘째 이태성 두명의 아이를 가지며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며, 부산으로, 그리고 제주도로 피난을 가게된다. 힘든상황에서도, 이중섭은 가족과의 시간이 행복했음을 알 수 있다. 이중섭의 <서귀포의 환상>과 같은 작품은 제주도에서의 가족간의 행복감, 그리고 따스함을 잘 보여준다.



222.jpg
서귀포의 환상, 1951

 

 

1952년에 생활고에 못이기던 마사코는 결국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게되고, 그때부터 중섭과 아내의 편지가 시작된다.

 

 

우동과 간장으로 하루 한 끼를 먹는 날과 요행 두 끼를 먹는 날도 있는 그런 생활이었소.

 

춥고 배고픈, 그런 괴로운 때는 ... 사경을 넘어 분명히 아직도 대향은 살아남아 있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만난 다는 희망과, 생생하고 새로운 생명을 내포한 ’믿을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고 행동하는 회화를 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고 견뎌왔던 것이오.

 

 

중섭의 편지 내용을 통해, 당시 그가 처했던 생활고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는 심정도 느껴진다. 그가 이야기하는 가족에 대한 희망과, 그림에 대한 희망, 이 두가지에서 너무도 적나라하게 그의 삶이 느껴졌다.


그리고 1953년 일본으로 가기위해 노력한 끝에, 선원증을 입수했고, 7일간의 체류 허락을 받아 아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내를 만나고 복귀한 이후에 편지내용은 그 어느때보다 사랑에 가득찬, 그리고 아쉬운 그의 심정이 드러난다.

 

 

이번에 도쿄에서 당신과 함께 보낸 6일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버려서 정말 꿈을 꾸고 온 것만 같소.

 

당신과 헤어진 이후 날이면 날마다 공허해서 견딜수가 없소. 다음에 가면 남덕의 모든 것을 두 팔에 꽉 껴안고 내 곁에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결코 놓지 않을 결심이오.

 

 

다음에 가면 모든 것을 두팔에 껴안고 놓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결심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일본으로 다시 가기 위한 방법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만남이후에 이중섭은 <부부>와 같은 한국미술의 대표작을 쏟아냈다.

 

 

20221022020352_dyvmefna.jpg
부부.1953

 


배경의 수평의 선을 가로질러서, 힘겹게 날개짓을 해야만 만날 수 있었던 그들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힘든 상황에서의 극적인 만남은 중섭과 아내의 이야기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그림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리운 사진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몇 달 만에 뵙는 사랑하는 아고리의 얼굴, 기뻐서 정신 없이 입 맞추었습니다.

 

소중한 것은 건강입니다. 한번 건강을 잃으면 좀처럼 돌이킬 수 없습니다. 제발 부디 조심해주세요. 남덕과 귀여운 아이들을 위해서 제발 세심한 주의를 다해서 버티어 주세요.

 

 

중섭의 아내가 보낸 편지에는 그리움과 걱정, 애틋함이 느껴진다. 중간에 아고리는 이중섭의 애칭으로 턱이긴 lee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섭은 아내를 아스파라거스 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로간의 애칭에서 얼마나 서로가 각별했는지 느껴지고, 다른 편지에는 이남덕의 또 다른 별명인 발가락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별명을 지어주고 불렀던, 중섭의 장난꾸러기같은 면모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남덕은 중섭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가족들을 보지못한 그의 마음을 달랬던 건 술이었다.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갔고 결국 1956년 9월 6일 서대문적집자 병원에 입원한지 한달여만에 숨을 거두게 된다. 그 후, 생전에 가지 못했던 아내의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아내를, 진심으로 모든걸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결코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소.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의 표현이오.

 

 

중섭은 예술을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할 만큼 로맨티스트인 화가였다. 그러한 사랑의 표현을 느낄 수있는 그의 편지를 읽는다면, 중섭의 예술을 더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황소처럼 달려가고자 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가지 못했던 비극적인 천재화가의 편지가 많은 분들에게 닿길 바란다.

 


* 발췌한 편지의 내용과 연도에 관한 정보는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책을 참고했습니다.

 

 

[이봉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