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을 포기한 사람의 멀티버스 [영화]

이토록 이상하고 다정한 영화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글 입력 2022.10.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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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 주연의 멀티버스 영화가 개봉했다. 누군가는 마블 영화와 연계가 있느냐 물었지만, 이것은 단순히 히어로 영화라고 단언하기엔 많은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평범한 주부이자 가장인 에블린(양자경)은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다중우주의 또 다른 세계의 나와 조우하여 '조부 투바키'로부터 세상을 지켜내는 일을 떠맡게 된다. 시놉시스를 읽었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인가 싶다.


평소 순진했던 남편 웨이먼드는 온데간데없이 알파버스에서 접속해온 '알파 웨이먼드'가 등장하여 에블린의 잠재적인 능력을 끌어내려 했다. 영화 초반부에는 에블린의 감정에 이입하여 동요했다. 세상을 구할 사람이 얼마나 없길래 나(에블린)에게 이런 중책을 떠맡기는 걸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에블린에게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말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판타지에 가깝다. 신기함보다는 성가신 감상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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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에블린이 일궈온 인생을 돌아보아야 한다. 평범한 이민자로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은 남편 웨이먼드(조너선 케 콴), 딸 조이(스테파니 수)와 함께 자신의 아버지(제임스 홍)를 돌보며 살아간다. 에블린의 인생은 여느 엄마와 아내의 삶처럼 단조롭지만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일 뿐이다.


게다가 웨이먼드가 준비한 이혼 서류를 발견하자 억울한 마음이 깃든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좀 더 여유롭고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영화 초반부 에블린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등 떠밀려 싸우기 시작한다. 여느 히어로 영화처럼 멋있는 변신 장면은 없다. '버스 점핑'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방법을 사용해 멀티버스의 '나'와 접속하는데, 그 방법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모든 곳에서 존재하는 모든 에블린의 모습은 피자를 홍보하며 배너를 돌렸고, 새끼손가락만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쿵후 고수가 되기도 했으며, 손가락이 소시지로 되어 있는 세계에 존재하기도 했다.


영화는 내내 코믹한 장면들을 내놓는다. 극장 옆자리에 앉은 남성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더라. 조부 투바키의 싸움 역시 잔인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공작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싸움이라니. 이에 맞서 버스 점핑을 시도하는 에블린의 모습에 박장대소할 것이다.


이토록 무해한 싸움이 있었을까. 억만장자의 로봇 슈트와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서도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특히 배우 양자경의 근엄한 연기가 아닌 코믹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강력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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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히어로 장르뿐만 아니라 코믹, 액션, 멜로, 가족 장르를 아우르는 굉장한 스토리를 엮어 나간다. 단순히 '웃긴 영화'로 치부하기엔 영화를 보고 웃다가 울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멀티버스라는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에블린을 만난 에블린은 꿈에 젖은 얼굴로 웨이먼드에게 말했다. 당신을 만나지 않은 내 모습을 봤어! 너무 멋있었어!


에블린이 다른 누구보다 수많은 멀티버스가 존재하는 이유는 포기한 꿈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멀티버스라는 세계관이 단순히 또 다른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에블린이 부모님의 반대에 타협하고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가짓수가 또 다른 에블린이 되는 것이다.


감히 살아보지 못한 세계의 나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구쳤다. 그러나 에블린의 마음을 고쳐 세운 것은 딸 조이의 마음을 잠식한 '조부 투바키' 때문이었다.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 자신이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가 내 딸이었다니. 대의를 위해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명령에 에블린은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조이의 멀티버스가 무엇이든, 그게 누구든지 조이는 에블린의 딸이었다. 에블린은 딸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 건 싸움을 시작한다. 평소 속을 썩이는 딸이라 여겼지만 '엄마'의 본능이 깨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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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의 혼란과 서로에게 상처만 안겨주는 싸움이 계속 되고, 웨이먼드는 이 기막힌 싸움에 뛰어들어 그만 둘 것을 간청한다. 모든 갈등에 싸움 없이 끝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조금의 다정함이 필요했다.


상처뿐인 결혼생활이 되어버린 웨이먼드와의 관계에서도, 자식의 선택에 연을 끊어버린 아버지, 평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딸 조이에게도 필요한 것은 '다정함'이었다. 조부 투바키의 설득에 넘어가려던 에블린은 웨이먼드의 간절함에 다시 눈 뜨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 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일까 궁금했었다. 그러다가 영화 후반부에 에블린이 조이에게 하는 대사를 듣고 깨달았다.


에블린이라고 부르지 마.


난 네 엄마야!


모든 곳에 존재하는 모든 에블린의 모습은 에블린이 바라던 꿈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거대한 베이글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조이를 꽉 붙든 에블린의 힘이 약해지는 순간, 웨이먼드가 그를 붙잡았고 에블린의 아버지가 웨이먼드를 붙잡는다.


현실로 돌아온 에블린은 뒤늦게 조이에게 하지 못했던 다정함을 베풀지만 그녀는 거부감에 뛰쳐 나간다. 떠나려는 조이를 붙잡은 에블린의 진심어린 대사를 통해 엄마와 딸의 형용할 수 없는 관계를 생각해본다. 분명한 것은 애정만으로 나아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너무도 현실적인 모녀의 모습이라 눈물이 왈칵 솟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서로의 존재로 인해 괴로워하는 역설적인 관계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에블린과 조이는 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고.


영화는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현재의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 정신없는 싸움이 끝나고 다소 괴랄한 연출의 영화를 모두 감상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영화를 보지 않는 이상 모를 것이다. 

 

평소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살아온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깨닫는다. 하나뿐인 소중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정함을 배우고 베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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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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