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현대미술로 바라본 한강 - 한강, 漢江

글 입력 2022.10.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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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질)한강_포스터.png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황해로 빠져나가는 한강은 이 땅에 살던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조선시대때는 수상교통의 요충지로 수많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민족의 비극이 일어난 현장이었다.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어는 한국의 고도성장을 상징했다. 그러므로 한강이 나오는 예술작품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많은 유행가와 문학작품,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한강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년 우수전시 <한강, 漢江>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현대미술의 방법으로 한강을 조명하고자 한다. 국내 작가 14명이 참여해 한강을 매개로 이야기를 건넨다.

 

이번 전시의 독특한 점은 경계가 뚜렷한 전시실에 작품을 전시하는 대신 말 그대로 한강을 전시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크루즈의 제1터미널, 제2터미널과 한강 둔치 등 한강을 찾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모든 곳이 곧 전시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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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장소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그 '경계 없음' 상태에 놀랄 것이다.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한강'이라 적힌 컨테이너 박스가 보인다면 잘 찾아왔다. 전시 장소가 특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관람객은 신문지 형태의 리플렛을 받고 작품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

 

리플렛에 나온 지도에 각 작품의 대략적인 위치가 나와 있기는 하나, 그야말로 대략적인 것일 뿐이기에 감상자의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많은 관람객들이 리플렛을 펼쳐 들고 미로 찾기를 하듯 터미널을 헤매게 될 것이다. 헤매며 발견한 작품들 중 몇몇을 소개한다.


가장 먼저 발견한 작품은 최태훈 작가의 <살-라이즈: 종합>으로, 제1터미널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살(SAL)'이란 뼈와 살을 동시에 뜻하는 말로, 작가가 직접 만든 개념이다.

 

작품은 철제 프레임과 우레탄 폼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는 철제 프레임, 이와 대조적으로 하얀색을 띠는 우레탄 폼의 조합은 작가가 고안해낸 '살(SAL)'이라는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나뭇가지에 눈이 쌓인 것 같기도 하고, 꽃이 핀 것 같기도 하고 신체의 어느 부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같은 조형물이다. 본래 연작이었던 5점의 작업이 이번 전시에서는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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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훈, <살-라이즈: 종합>, 2022, 철제 선반 유닛, 트레이 테이블, 레진, 우레탄 폼, 아크릴 채색, 가변 크기

 

 

제1터미널 선착장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원래 있던 벽화처럼 보이는 이우성 작가의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한강에 갔다1>과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한강에 갔다2>를 만날 수 있다. 작품은 한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그림으로, 파란색이 주로 사용되어 경쾌하면서도 어쩐지 서늘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한강의 수많은 요소 중에서도 갈매기에 집중했다. 보통 바다에 살 것이라 생각되는 것과 달리 한강에 사는 비둘기를 보며 그는 고향은 서울이 아니지만 서울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게끔 유도한다.


갈매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강남버그의 <강남버스>다. 약 30분짜리 영상인 이 작품은 버스 안 풍경을 담았다. 다름 아닌 강남을 '투어'하는 버스다. 실제로 강남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는 하지만, 버스를 타고 투어를 한다고 하면 어쩐지 낯선 장소기도 하다.

 

이 투어버스가 특별한 것은 정해진 구간마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가이드로 탑승해 강남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강남이라는 장소는 해체되고,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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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한강에 갔다1>, 2022, 천 위에 수성 페인트, 아크릴릭 과슈, 246m×413m

 

 

제2터미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된 듀킴의 <하이 소울>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장식품이라 해도 믿을 법하다. 작품은 십자가와 그 십자가 뒤 귀여운 유령으로 구성된 네온 조명이다. 듀킴 작가는 서울에 8천여개의 교회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종교는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그 힘이 좋은 방향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그 반대로 작용해 여러 소수자를 억압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상기하며, 작가는 8천여개의 교회 십자가에 잠든 유령을 <하이 소울> 작업으로 깨우고자 한다. 네온 불빛 특유의 쨍한 색처럼 유쾌하고 귀여운 작업물이다. 작품을 보며 폭력을 이기는 것은 같은 폭력이 아니라 유머라는 것을 다시 상기한다.

 

정소영 작가의 <부유물과 침전물>은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찾기 어려운 곳, 가장 한강과 가까운 곳에 설치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 두 개의 돌덩이 같은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가 한강에서 채집한 유기, 무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강에서 떠내려 온 것들로 구성된 작품은 그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한강을 배경으로 설치되어 있다.

 

오늘날 무언가를 실어 나르기보다 관광의 역할이 더 커진 한강이 거대한 쓰레기통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작품 뒤로 한강 물이 넘실거린다. 이곳은 임시거처일 뿐, 작품은 누군가 일부러 넘어뜨리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것만 같다.

 

제2터미널에 있는 편의점 옆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에서는 3D 캐릭터가 독특한 일렉트로닉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해파리(HAEPAARY)의 <경포대로 가서> 뮤직비디오다.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두 캐릭터가 화면 속에서 춤을 추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그래픽이 이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작 노래를 들어 보면 '조그만 배 만들어 타고/만취 대취 만취 대취'라는 토속적인 가사가 반복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가하고 조용한 평일 낮 한강 유람선 터미널에 울려퍼지는 노래를 듣던 중, 때마침 유람선에서 단체관광객이 우르르 내렸다. 그 풍경까지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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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부유물과 침전물>, 2022, 혼합재료, 한강의 부유물과 침전물, 가변 크기

 

 

<한강, 漢江>의 작품들은 미술관 또는 정해진 전시 공간에 있는 작품과는 다르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전시를 보려는 소수의 사람, 한강 유람선을 타고 내리는 단체관광객 무리, 한강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전시 작품이라기보다는 한강 터미널이 생길 때부터 있었을 것만 같은 풍경의 일부로 자리한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건 미리 전시 정보를 알고 있거나, 지나가다가 한강이라는 표시가 눈에 띄는 컨테이너 박스를 발견한 사람이거나, 터미널을 오가다 어떤 이질감을 포착한 사람일 것이다. 그들 각각에게 이번 전시의 작품은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보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다는 게 현대미술의 특징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흐르고 있지만 시대에 따라 계속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한강은 현대미술을 닮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강은 반세기 전만 해도 민족의 애환을 상징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시험 망하면 한강 가야겠다'와 같이 자조적인 농담을 할 때 보통명사처럼 쓰이곤 한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 된 건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터미널에서 마주친 장년의 관광객들이 보는 한강과, 내가 보는 한강, 각양각색의 외국인 관광객이 보는 한강은 서로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엮여 있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 우리 각자의 한강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전시는 남은 10월 내내 계속되니, 방문하여 각자의 한강을 발견해봐도 좋을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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