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족상담소 인터뷰 :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을 거 같아요

가족은 고유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좋은 팀이 되어야한다
글 입력 2022.10.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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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은 없다]가족상담소

 

"가족에 관한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아트인사이트 내부 인원을 대상으로, 가족 관련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상담소' 1:1 인터뷰에 귀히 모셨습니다. 인터뷰는 익명과 대화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으며, 에세이 시리즈 [정상가족은 없다]의 마지막 편을 장식합니다. 가족 안에서의 '나'를 온전히 살펴보고,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 

 

1편 정상가족은 없다 Ep. 1 가족치료의 세계

2편 당신의 자아분화, 안녕하신가요?

3편 드디어 내면아이와 만나는 시간

4편 인지와 행동, 합리적 친구가 되기를

5편 작은 변화는 눈덩이처럼 뭉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침이었다.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장을 장식할 <가족상담소> 인터뷰를 위해 토요일 아침부터 신촌 카페로 향했다. 누구보다 가족의 피상성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며 정답을 찾아가고자 고군분투하는 H님과 마주했다. 


인터뷰보다는 차라리 수다 혹은 대화가 어울렸다. 그저 의식과 무의식에 흐름을 맡겨,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생각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고개를 강력하게 끄덕이기도, 머리를 쥐어뜯기도, 한숨을 푹푹 쉬기도 하며 열렬하게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주제 하나만으로 2시간 반 가량을 대화한 것은 나조차도 생전 처음이었다. 그만큼 인터뷰 현장은 고민의 장이 되어 진지하고도 치열한 공기를 뜨겁게 내뿜고 있었다. 


 

“저는 가족이 껍데기같다고 생각해요. 가장 피상적인 관계가 가족간의 관계이고, 점점 더 피상적이 되는 것 같아요. 항상성에 의해서 굴러가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그것(항상성)에 매몰돼서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지 않나요. 항상성 속에 감춰있는 진면모를 털어보고 싶어요.” 

 

- 익명의 아트인사이트 구성원 H님의 한마디

 



Ch 1. 처음 뵙겠습니다,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S.(신지예, 이하 S)

가족상담소라는 타이틀로 찾아뵙게 되었잖아요. 내담자가 되시는 에디터분께 가족에 관한 고민을 함께 듣고, 고민하고 어떤 치료이론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이 대화가 단순히 고민에 대한 담소로만 끝나지 않고 해결에 대한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치료라는 기법이 내담자 가족들을 다 모으는 자리에서 시작하거든요. 한 명 한 명씩 개인의 과거 역사도 들어보기도 하고 또 같이 모아서 서로의 상호작용에 대해 얘기도 하고. 그렇게 여러가지 세션으로 나눠져요. 그런데 오늘은 사실 한 분만 딱 모시는 거니까 주관적인 얘기를 들어보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H. 

저는 가족학이라는 학문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어요. 엄청 생소해요. 그러면 그 가족학에서 가족을 어떻게 정의해요?

 

S.

사실 학자들의 정의로 나눠져요. 각 국가마다의 가족에 관한 법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건 나라마다 다르구요. 처음에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라고 대부분 정의했죠. 자녀의 재생산 기능도 강조했구요. 그런데 최근에는 형태적인 정의보다 가족의 기능같이 친밀감, 애정, 소속감을 더 중요시하고 있어요. 그래서 학자들이 가족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할 수가 없어서, Family라고 안하고 Families라고 하거든요. 가족의 형태는 단적으로 말할 수 없어서 복수형 '-es'를 붙여요. 

 

H.

우리나라 요즘 시끌시끌하잖아요. 여성가족부 없어지고.. 학계에서는 분위기가 어떤가요?

 

S.

일단 여성가족부 폐지라는건 엄청 유의미한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으로 전국에 가족센터라는 기관이 있어요. 가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요. 그런데 가족센터의 중앙 정부기관이 여성가족부거든요. 사실상 가족센터의 정부 기둥이 없어진거죠.

 

그리고 건강가정기본법이라고, 가정과 가족에 대한 정의와 건강가정정책을 명시한 법이 있어요.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요.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적어도 가족학에서는 무정부 상태라 느껴요. 많이 안타깝죠. 여성가족부 조직을 살펴보면 청소년가족정책실이 있는데, 그 안에서 청소년정책관과 가족정책관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토대가 없어지는 거거든요.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건강가정정책을 꾸릴지 모르겠네요. 

 

H.

(공감하며) 얼마 전 뉴스 기사를 봤는데, 한국이 정의하는 가족이 조금 더 편협해지고 있다는 말을 봤던 거 같아요. 

 

S.

저도 얼마전에 그 논의를 접했어요. 말씀하신대로 좀 편협한 시각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달까요. 이미 전세계에서 가족에 관한 형태와 기능이 다 달라지는걸 인정하는데요. 과도적인 시대같아요.

 

 

 

Ch 2. ‘정상성’이라는 신화를 던지고 ‘건강한 가족’을 향해 가는 길



H.

가족에 대해 크면 클수록 느끼는데 '이건 정상적이지 않은데?'라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살다보면은. '엄마는 왜 저렇게 행동하지?', '왜 아빠는 저렇게 행동하지?' 싶어요. 생각해보면 나한테 긍정적인 행동을 끼치는 것 같지도 않고요. 


TV보면 오은영 박사님이 나와서 자폐니, ADHD니, 자기애 부족이니 하고 무언가 정의를 내리잖아요. 그러면 대중은 본인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해요. '아 나는 이런 가정에서, 이런 부모에게서 자라서 이렇다'. '우리 엄마가 애정결핍이라 나한테 저렇게 대했구나'. 이런 현상을 보면 저도 괜히 부모를 분석하고 전문성도 없이 나를 임의로 진단하고, 종국엔 스스로를 연민하게 돼요. 자존심은 비대해지는데 자존감, 불안감, 우울감만 커지죠.

 


내 프로젝트 (4).jpg

출처 : 채널 A <금쪽같은 내 새끼>

 

 

그런데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엄마는 "너는 뭐 잘난줄 알아? 너 사춘기때 기억안나?"하며 또 싸우기 시작하구요. <금쪽상담소> 같은 방송이 하나하나의 가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한국의 많은 사람이 '나는 금쪽이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긍정적인 방송의 영향도 있지만 동시에 방송의 부작용도 존재하는 듯 해요. 병명이 또다른 mbti가 되어 소비되는 느낌. 방송으로는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오박사님 방송을 보면 정상가족이 되나? 그건 아닌 거 같거든요


요즘 가족과 제 작품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하는데요. 그냥 제가 가족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캐내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무례할 수도 있잖아요. '이게 좋은 가정으로 가는 방법'이야 라고 주장하려고 하고, 가족들의 사사건건을 캐내려고 하니까 부모님은 오바를 떤다고 해요. 아버지는 대답하기 싫은 것도 있다고 하시구요. 

 

제가 너무 폭력적으로 정상성을 향해 달려가는게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수 있는지 궁금해요. 어차피 대화라고 해봤자 "학교에서 어땠어?", "(밥) 맛있지?" 이런 말이잖아요. 그걸로 그 사람을 알 수는 없어요. 너무 몰라요. 가족들을. 내가 너무 불편하게 하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학계에서는 오박사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S.

오은영 박사님은 의사기 때문에 의학적인 접근을 먼저 하실거에요. 당연히 심리적인 부분을 대표적으로 진단하시겠지만요. 그리고 가족치료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정신과 치료를 해야해요. 

 

H.

(놀라며) 아 정말요? 

 

S.

왜냐면 가족치료라는게 가족의 전체 기능이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참여하는 사람은 최소한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기제는 갖추고 있어야해요. 그런데 그 정도도 어려운 심각한 증상이나 문제는 가족치료가 아닌 정신과 치료를 먼저 해야해요. 그래서 가족치료랑 정신과 치료를 구분할 필요는 있어요.

 

H.

어 이거 되게 중요한 이야기네요.

 

S.

심각한 문제는 정신과를 가야해요. 정신과는 입원이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가족치료는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건 아니에요. "가족 다같이 와서 입원하고 치료하세요"라는 개념이 아니라, 상담을 하는 것이죠. 

 

H.

그러면 약도 처방하나요?

 

S.

정신과는 약도 처방하는데 가족치료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가족치료는 결국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이라고 말하죠.

 

H.

요즘 지인들보면 다들 오박사님의 진단명에 본인을 대입하더라구요. 사실 그 정도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약을 먹는 정도의 수준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S. 

그게 사실 위험한데요. 심리적이거나 의학적인걸 명명하려면 병원이나 센터에 가는 게 좋죠. 사실 방송을 통해 진단을 내려놓으면 낙인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H.

방송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보면 스스로를 너무 동정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인들도 비슷해요. 제가 보기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금쪽상담소>에 나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방송이라는 것이 그런 연민주의? 동정론적인 분위기를 조장한다고도 생각돼요.

 

S.

프로그램 취지는 심리적인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자는 좋은 취지인데, 낙인이 들어가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간의 원망이나 한탄, 갈등이 더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정상성'에 대해 달려간다고 말씀하셨는데, 꼭 말씀드리고 싶은건 정상적인게 아니라 건강한 것이라 표현해요. 그래서 가족학에서는 '건강가정'이라 표현해요. 정상가족이 아니라 건강한 가족은 서로 상호작용의 기능이 원만하고, 가족의 의무를 잘 이해하는 관계죠. 그렇게 건강한 생활을 이뤄가는 가정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건강함을 목표로 한다면 조금씩 나아가는 관계와 자신을 볼 수 있을 거에요. 

 

H.

정상이라고 하면 틀이 생기는 것 같아요. 

 

S.

맞아요. 그러면 내가 정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정상이라고 느끼잖아요. 그래서 건강한 가족을 지향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보다 조금 더 건강한 의사소통과 상호존중의 방식으로 가족을 이뤄가는 것이요. 저는 가족의 꼭 필요한 기능을 딱 한단어로 표현하자면 '친밀감'이라 생각해요. 물리적으로 같이 안 살고, 경제적으로 협력하지 않더라도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친밀감을 느낄 수는 있잖아요. 그런데 그 친밀감 안에는 상호 이해와 존중이라는 가치가 바탕이 되어있거든요. 결국 행복하고 즐거운 가족을 만드려면 그 안에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있어야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다 필요없고 건강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도 결국 건강이 모든 생활의 질을 보장하니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H.

꼴보기 싫은 가족이었어도, 오히려 떨어져사니까 가족에 대한 애정도가 좀 올라간다고 해야하나. 이게 오히려 이상한 거에요. 왜 그러지 나? 이중인격인가? 싶어요. 

 

S.

맞아요. 멀리 있으면 보고싶고 애틋하잖아요.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떨어있어도 친밀감만큼은 남는 게 신기한 거 같아요.

 

 


Ch 3. 가족안에서의 독립적인 ‘나’를 발견하기 


 

H.

그러면 가족의 의무라고 하면은 어떤 역할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S.

일단 가족은 사회의 가장 1차적 집단이잖아요. 가족으로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를 이루니까 경제적 부양의 의무가 있죠. 그리고 자녀가 있다면 자녀에 대한 지원과 보호가 부모의 의무에요. 그래서 보통 아동을 방임하고 학대하면 부모는 아동학대 신고를 받게 돼요. 법적으로 아동의 보호자이기에 학대와 방임을 하면 처벌을 받아요. 

 

H.

그러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장남의 역할이라고 하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제사를 드리죠. 그런데 그런 의무나 역할이라는 것들을 지키는 게 좋은건지. 아니면 목소리를 내서 갈등상황이 만들어지더라도 의견을 내는 게 좋을까요?  저는 위로는 언니, 아래는 막내 남동생이 있는데요. 저희 언니는 K-장녀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과 담론도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었다고 생각한대요. 언니는 첫째니까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저는 둘째니까 차별받는다고 느꼈고, 동생은 장남이라 군대 휴가를 나와서도 할머니를 뵈러 다녔어요. 그동안은 이런 역할에 순응했지만, 가족구성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자 갈등이 조장되어도 각자의 불만과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맞지 않나란 생각이 들어요.


S.

한국은 유교적인 관습에 너무 많이 영향을 받은 국가라, 아직도 문화가 부여한 역할이 중요하다고들 느끼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 가족학에서는 가족을 지배하는 규칙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규칙에 근거에서 특정 가족의 정체성을 구분할 수 있어요. 만약 그 규칙에 의해 누군가가 희생된다면 그 항상성을 한번 깰 필요는 있어요. 역회전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구분짓는 건 무의미해요. 사실 문화라는 게 몇 세대를 걸쳐서 계속 내려져오기 때문에 '왜 그럴까' 하기 보다는 새로운 해결방법을 제시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제시하는 쪽이 좋다는 이론이 있어요. 인과관계보다는 상호작용의 과정을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거죠.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려울 거에요. 자녀가 부모에게 수평적인 대화를 요구하는 것도요. "수평적으로 대화하자"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죠. 그래서 새로운 해결을 제안하는 사람은 가족의 언어와 문화를 고려해서 역회전을 시도하는 게 좋아요. 전략이 필요한거죠 사실. 인간관계도 결국 심리니까요. 만약 지금과 같은 가족 규칙을 순응하는 순간, 체계는 절대 변하지 않구요. 그대로 거기에 맞추셔야 할 거에요. 

 

H.

계속 그렇게 평생 사는 거죠. 나도 불만을 가지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S.

그래서 용기가 필요해요.

 

 

내 프로젝트 (2).jpg

 

 

H.

그런데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한 거 같아요. 거의 아이언맨 수준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 태어날 때부터 그 (가족)의 분위기로 살았거든요. 어차피 불만을 가져도 대충 넘어가고 갈등을 꺼낸 사람은 비참해져요. 다시 갈등이 묵혀져 썩어가는 것 같아요. '그냥 모른 척 하고 살던대로 사는거지' 하는 상황이 더 많은 것 같아요.

 

S.

전체 가족문화를 바꾸는 건 당연히 어렵고, 조금씩 새로운 규칙 딱 한 개라도 만들면 변화가 시작되거든요. 딱 하나의 변화만 새롭게 만들고 거기에 적응을 하면, 조금씩 바뀔 거에요. 

 

H.

윗세대들을 이해 못하고 내 멋대로 보이지는 않을까요?

 

S.

그럴 수도 있죠. 얘가 도전하는 구나 느낄 수도 있구요.

 

H.

막말로 얘가 '기어오른다'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왔으니까 이해해야지'라는 생각이 전체적인 거 같아요. 사회 전반적으로. 세대 간의 경계가 강해진 느낌. 여기는 MZ, 여기는 X 이렇게요. 

 

저는 갈등이 최고조로 쌓일 때 편지를 쓰는 게 효과적이란 생각도 해요. 그런데 그런게 정말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무서운게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 우리 가족센터에 가서 상담해볼까" 이것도 너무 어색해요. 그런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 같아요. 심리적으로 흔들리지만 참고 사는? 


S.

그래서 제가 해결중심 가족치료로 시리즈를 마쳤는데, 가족과 치료사 간의 관계유형과 비슷한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방문형'인 사람들이 아마 전체의 98%가 아닐까요. 가족관계 변화의 필요와 의지도 없는 유형이죠. 보통 인간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니까요. 

 

자아분화라는 개념도 있어요. 보웬의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에 근거한 개념인데요. 지금 내가 속해있는 이 가족문화가, 2~6세대까지 올라가서 계속 전수된다는 입장이거든요. 가족을 이루는게 시즌 1,2,3,4,5 처럼 반복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보통 정신병을 얻는 조현병 환자들은 가족의 역기능적 상호작용의 희생양이 되어 정신과로 가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되고 있어요. 가족은 절대 변하지 않고, 그 변하지 않는게 몇 세대까지 내려오니까. 희생양이 나오는거에요. 

 

여기서 제안하는게 자아분화 수준을 높이라는 거에요. 나와 타인의 경계를 구분지을 줄 아는거죠. 예를 들어 가족구성원의 모든 생각과 감정에 동요된다면 자아분화 수준을 높여야 하는 신호거든요. 나와 타인이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시리즈 글에서 '융해'라는 말을 썼어요. 타인의 감정과 생각이 나의 과제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타인과 나의 과제를 분리해야해요. 가족의 감정에 완전히 전염될 필요는 없어요. 응원을 하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감정에 완전히 전염돼서 나까지 아플 필요는 없어요. 

 

H.

그걸 공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공감능력도 없다" 처럼요.

 

S : 공감에 대한 정의도 참 오해가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죄다 슬픈 사람이면 100명 앞에서 100번 울어줘야 하거든요. 그러면 사람 못 살아요. 뇌가 폭발하겠죠(웃음). 공감이라는게 같이 울어주는 것만은 아니라 생각해요. 마음을 알아주는거, "아, 네가 이래서 그랬구나. 힘들겠구나" 라고 이해하는게 공감이지, 그 사람이 대성통곡한다고 해서 나도 땅바닥 구르고 통곡하는게 공감은 아니거든요. 그건 자아분화가 낮다고 봐요. 매쉬드 포테이토 아시죠. 뭉쳐진 감자. 가족도 뭉쳐진 감자처럼 다 얽혀있는 거에요.

 

 

내 프로젝트 (1).jpg

인터뷰에서 비유를 들었던 매쉬드 포테이토(Mashed Potatoes)

 

 

H.

(웃으며) 아, 눈물나

 

S.

매쉬드 포테이토 감자는 뚝 떨어져도 깔끔하게 떨어지는게 아니잖아요. (H : 지저~분 하죠) 그래서 저는 관계가 '콩'처럼 변해야 한다 생각해요. 콩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하나의 단위잖아요. 가족도 콩같은 사람들이 관계를 이뤄야한다고 봐요. 

 

H.

큰일날 뻔했네. 매쉬드 포테이토처럼. 

  

S.

한국은 집단주의가 너무 강해서요. 가족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여기 신촌일대(카페장소)에 다 손들거에요. 서양에서만 개인주의를 지향하지, 한국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매쉬드 포테이트와 같은 관계는 아마 많을 거에요. 어쨌든 결론적으로 자아분화를 높이는 게 인생의 최종 과제라고 해요.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과제를 해결하고 타인은 타인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몰중하잖아요. 그래서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있어요.


H.

(웃으며) 무슨 올림픽 심볼같은 문장이네요.

 

S.

교집합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가운데 부분이 가족의 관계라 보면, 양 옆에 바깥 원은 개인의 삶이에요. 각자의 삶이 있고 동시에 함께하는 삶이 있죠.

 

H.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게 건강한 관계네요. 제가 가족들을 작품이랍시고 인터뷰하는 게 취조하는 것처럼 폭력적일 수 있겠네요. 

 

S. 

그죠. 인간관계는 한마디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의 방식에 따라 A부터 Z까지의 결과가 나올 수 있잖아요. 모진 말이 나온다면 관계는 틀어지겠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을 하면 간이라도 빼주는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정말 가족과 인간관계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H.

그러고보니 제가 학원에서 강사를 하는데 애들을 보고 어머니들을 보면, 아이가 왜 저렇게 크는지 알 거 같은 거에요. 그런데 그 순간 거울처럼 저를 비추기 시작하는거죠. 나도 우리 엄마랑 똑같나? 그런데 예전에는 그 말이 너무 싫었어요. 지금도 좋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저렇게 안 될거야'라고 반복할 수록 제가 그 모습이 되는 걸 느껴요. 

 

S : 자연스러운 귀결 과정인 거 같아요.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모방을 하며 세상을 배우는데, 결국 모방의 대상이 대부분 부모님이다 보니 그 메커니즘이 갑자기 없어지진 않을 거에요. 나도 모르게 닮아가는 거고, 다만 자아분화를 기억하며 그 사람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더 발전시킬 부분은 따로 생각한다면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자아분화)를 의식하지 못하면 닮아가는건 자연스러우니까요. 말투라든가, 소통방식이라든가.. 비속어까지도 비슷하고. 

 

H : 맞아요. 완전 비슷해요. 그냥 매쉬드 포테이토 되는 거 같아요. 하나의 덩어리처럼.

 

 

 

Ch 4.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을 거 같아요



내 프로젝트 (5).jpg

 

 

H.

한 세대가 끝나는 것 같아요.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과정같아요. 그런데 이 상태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에요. '이렇게 모르는 척하고 갈거야?'란 느낌이 드는게 자연스러운 거 있죠. 엄청 큰 화재가 났다가 전소된 느낌? 완전히 전소된 줄 알았는데, 불씨가 하나 남은 거에요. 어딜 또 태울지 찾아 헤매는 느낌. 만약 이걸 해결하지 못하잖아요? 그 다음 제가 이룰 가정은 파탄날 것 같아요. 

 

S.

그 불씨가 아까 가계도에서 본 '전수'네요. 

 

H.

그렇죠. 아빠랑은 이거 해결, 엄마랑은 이거 해결하고, 동생이랑은 이것, 언니랑은 이것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족들은 불편해 하죠. 갈등을 만들고, 쑤시고 다니니까. 

 

그런데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저는 제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을거 같아요. 이 가족 문제를 해결해야만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달가워하지 않죠. 이 인터뷰 준비하면서 부모님께 "이 (가족)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라고 했어요. 


S.

부모님이 싫어하시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체계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몇십 년 동안 살아오신 문화나 관계의 역동을 바꾸시기가 거북하실 거에요. 

 

H : 맞아요. 거북해해요!

 

S.

그 (체계)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세 자녀도 잘 키웠는데 그걸로 문제제기를 한다는 게 서운하실 수도 있거든요. 얘가 왜이러나, 생각하실 수도 있죠.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 건 해결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를 해보는 거에요. 정의를 못한다면 계속해서 다른 상황에서 발견되는 허점이나 갈등이 발견되거든요. 정확하게 '이거를 해결하고 싶어'라고 하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가족관계라는게 인과관계를 따지는건 무의미해서, 상호작용의 과정을 재편하는 게 좋거든요. 지금같이 부모님의 반감을 일으키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H : 어 이거 좋은 말씀인 거 같아요. 

 

S.

말씀을 나누다보니 인지행동 가족치료가 떠올랐어요. 유관계약이라는 게 있어요. 싫어하는 행동은 덜하고, 좋아하는 행동은 더 많이한다. 말은 쉽지 어려운데, 이걸 하기 위해서 서로 간의 목표 공유가 필요해요. '이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이 뭐지?'라는 정의, '좋아하는 행동이 뭐지?'라는 정의. H님은 엄청난 추진력도 있고 용기도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가족끼리 터놓고 말하는 환경을 조성하기만 해도 변화가 느껴지실 거에요. 그 작은 변화가 체계의 항상성을 조금 깨트리는 거거든요. 

 

H.

그걸(체계)를 깨기가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마치 가족이라는 종교, 신화가 된 느낌?

 

S.

더 높은 차원에서 현재 상황을 보는 걸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의사소통 방식도 메타인지가 필요한 거 같아요. 우리 가족이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건강한가? 예를 들어 이런 거죠. "너는 항상 왜이래?", "아니, 너도 항상 이렇잖아"라고 얘기하는 방식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거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하우투(how to)가 중요한거죠. 만약 가족들이 소통 방식에 불만을 품으면 어떻게 바꿔 말할지 고민하면 어떨까요? 지시하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해주고 그 다음에 나의 상황과 의견을 말하는 거죠. 그러면 갈등의 씨앗이 거의 보이진 않을 거에요.

 

H.

(공감하며)말 한마디 잘해야 한다니까 진짜.

 

S.

해결중심 가족치료에 '기적질문'이라는 게 있어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면 H님과 가족 분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요?

 

H.

(웃으며) 그런데 이런 질문을 받으니까, 또 "이대로 살자"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거 이상한데. 이대로 살자~ 

 

S.

그래서 말씀드렸듯 목표를 잡는 게 중요해요. 기적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그 사람의 가족에 대한 목표에요. 

 

H.

만약 제가 꾸미는 저의 이상적인 가정이라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재 원가족은 괜찮은 거 같네요. 그냥 살던대로 살자란 생각이 드네요. 

 

S.

원가족에서의 경험이 자녀와 배우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는 게 정신역동적 가족치료인데요. 아직은 미혼이셔서 해당되진 않지만, 향후 배우자-자녀와 또 갈등이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그 갈등과정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원가족의 상호작용에 대해 영향을 분석할 필요도 있을지 몰라요. 

 

H.

있을 거 같아요. 들으니까 되게 찔리는게, 저는 제 가정을 갖고 싶어요. 그 이유가 저는 원가족에서 소외당한다고 느꼈거든요. 지금 그렇지는 않은데, 한참 자아도취에 빠진 사춘기 때 '내가 제일 왕따야'란 생각했어요. 그게 응어리로 맺혀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가정을 만들면 내가 짱 먹을 수 있는 가족이면 좋겠어서..(웃음) 내가 중심이 될 수 있는 가정을 이루고 싶어서.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무 위험한 생각인 거 같아요. 

 

S.

부부상담 분야에 '과대기능'과 '과소기능'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각자가 맡은 역할이나 임무를 지나치게 과하게 담당하거나, 혹은 너무 소홀히 하는 기능이죠. 그런데 신기한건 이 두 기능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석처럼 붙어서 만나게 돼요. N극 S극끼리 붙는 것처럼요. 가장 중요한 건 따로 또 같이 민주적으로 살아가는 건데 많은 경우가 불균형한 기능을 머무르죠.

 

H.

그러면 제가 과대기능을 할 수 있겠네요. 

 

S.

그렇죠. 휘어잡고 싶은 마음. "내가 중심이야!"

 

H.

아, 위험할 수 있겠네요. 다시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S.

'나 전달법'이라는 표현 방법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 사실 인정받고 싶었던 인정욕구가 있었잖아요. 

 

H,

맞아요. 결국 소속감이 필요했죠.

 

S.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부모님께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말을 먼저하면서, 원래 H님이 바랬던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 그때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거에요. 말을 바꾸는 건 당연히 언어습관 때문에 힘들지만.

 

H.

으으으으! 오글거려요 진짜요.

 

S,

그런데 신기한게 부모교육론 책에도 이 내용이 그대로 나와있어요.

 

H.

(웃으며) 이론은 쉬워, 적용이 어렵지. 그래도 다음 할 일은 정해진 것 같아요. 정확한 목표와 타겟, 문제설정이요. 이정도면 공동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네요.

 

*


H님과 아마 밤을 새도록 이야기 하더라도 부족할 것만 같았다. 가족에 대한 역사와 관계를 논하는 것은 악명높은 수능 수학의 30번 문제를 푸는 것보다 어려웠다. 어딘지 모르게 복잡하고 지끈거리는 마음과,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은 희망이 공존하는 정오였다.


분명한 건 가족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인 고유한 팀이라는 사실이었다. 무수히 많은 웃음과 울음이 쏟아지는 인생에서 가족은 희노애락을 나누는 팀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체계는 고유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좋은 팀Team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시나브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고유한 개인의 각자의 경계선을 지키면서도 ‘따로 또 같이’ 상생하는 관계가 필요할 것이다. 


이론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걸 실감했다.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를 인터뷰로 마무리한 이유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방향성과 생각을 품고 있어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통해 책 밖으로,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 H님의 가족 이야기는 새로워진 눈과 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벌써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가족이라는 좋은 팀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것이다.

 

 

 

전문필진_신지예.jpeg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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