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당신의 자아분화, 안녕하신가요?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기
글 입력 2022.08.1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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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리즈 : 정상가족은 없다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에서는 가족 안에서 느끼는 고민과 갈등의 다양성을 진솔하게 나눕니다. 개인이 속한 가족이라는 체계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더 건강한 삶의 방식과 관계를 꿈꿉니다.

 

2편 : 당신의 자아분화,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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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이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들을 때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가수 지코(ZICO)의 “너는 나 나는 너(2016)”라는 노래가 특히 그랬다. 얼마나 죽이 잘 맞고, 설레고, 사랑스러우면 ‘너=나’라는 공식까지 만들었을까. 간질거리는 멜로디. 너는 나고, 나는 너라는 귀가 녹을 것 같은 가사. 이 노래를 들으면 몽환적인 분위기에 젖어 비현실적인 시공간마저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앞선 노래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있다. 바로 '자아분화'다. 그렇다면 자아분화란 무엇일까. '자신이 속한 체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나타내는 수준'이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과 얼마나 명확한 선을 긋고 생각하며 사고할 줄 아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만약 지코의 세레나데를 연인 사이가 아닌 ‘가족’으로 바꿔 생각하면 어떨까. 장르는 멜로에서 공포물로 순식간에 변한다. 가족 안에서 ‘나=나’를 외치는 것은 개인의 독립성와 자아를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 안에서 개인은 소멸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인 “선 넘었다”의 뜻을 살펴보게 된다. 때때로 사람 사이에 심한 간섭이나 개입이 이뤄지면 ‘이 사람 나한테 선 넘네’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에는, 정말로 “분명한 경계선이 있어야만 한다”라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분명 자신만의 선을 지켜야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선 또한 침범하지 않아야한다.

 

*

 

‘어떻게 한 사람과 오래 연애할 수 있어?’


얼마전 친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을 듣고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솔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내 안에 있는 바닥까지 경험했어. 그리고 진정한 나를 계속 찾으려 했지.’


분명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들었는데 답변은 ‘자신’으로 초점이 향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연인과 함께하며 끊임없이 ‘자아분화’를 노력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연인에게까지 나누지 않도록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즉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함을 목표로 삼았다. 이전의 어느 시점까지는 내가 지닌 모든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분노, 두려움 등 온갖 감정과 기분을 연인에게 남김없이 쏟았다. 마치 겉과 속이 투명한 물방울 같았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걸어가는 행인의 머리 위에 그저 제멋대로 떨어진 물방울처럼. 톡,톡,톡. 그렇게 떨어지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쏟아냈다. 물방울은 머리를 가볍게 적신 후 이내 바닥에 닿아 끊임없이 고인다. 그리고 고인 웅덩이를 밟는 자는 신발이 홀딱 젖기 마련이다. 축축하게 젖은 발의 느낌을 낭만적인 누군가는 즐길 수도 있지만, 그것이 여러 번 혹은 매일 반복되면 불쾌하다. 찝찝하고, 지치고, 짜증난다.


연인이라는 이름을 띠고 있지만 실은 완벽한 타인에게, 그간 ‘정제되지 않은’ 삶의 짐과 감정을 이처럼 모두 쏟아냈다. 이윽고 ‘너는 나 나는 너’는 매우 무시무시한 악몽이라는 걸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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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분화의 개념에서 중요한 지점은 ‘융해’다. 여기서 파생되는 질문은 ‘다른 사람의 정서적 반응에 융해되는가?’ 혹은 ‘다른 사람과 융해되려는 경향이 있는가?’다. 융해, 영어로는 melting, 한자로는 녹을 융(融), 풀 해(解). 융해는 쉽게 말해 상태변화다. 더 정확하게는 에너지를 흡수하여,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일이다. 무생물인 물질이 융해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람이 다른사람에 의해 융해된다면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될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너에게 투사할게. 그렇다면 너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해.’


스스로 만들어낸 악몽을 끊어내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연인에게 나의 모든 것을 투사하고, 덜어내고, 쏟아내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선과 그를 둘러싼 선을 구분한다. 말문을 더 열어 친구에게 대답했다. "대화를 참 많이 했어. 갈등이 생길 때, 그 갈등이 미결되지 않게 끝까지 매달렸지. 서로가 서로에게 납득할 수 있는 범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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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물어볼 차례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볼까. 살면서 당신의 선을 침범한 누군가가 있는지, 혹은 당신이 타인의 선을 침범한 적이 있는지. 만약 떠올렸다면, 이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선물을 주고 싶다. 다세대 정서중심 가족치료를 만든 ‘보웬’의 제안이다. 그 이름은 ‘정서적 중립성’이다.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서, 정서적 중립을 지키는 사고와 태도를 지향하는 것이다. 즉 자신을 다른 사람과 강력히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에서 일정 수준 분리시키는 노력이기도 하다. 자신을 독립적으로,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기능하는 주체로 만드는 일이다.


보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성숙한 인간은 감정과 지성과의 분화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다. 만약 가족 관계 또는 연인, 친구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정서적 압력 또는 충동에 직면하더라도 감정과 지성의 분화를 끊임없이 불러일으켜야 한다. 요즘은 이 주장과 반대되는 이론을 접하고 있는데, 감정과 지성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아들러 심리학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을 듯하다. 감정, 지성의 분리 또는 통합을 논하는 것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과 융해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니까.


다시 돌아가, 왜 자아분화를 위해 노력해야만 할까? 자아분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융해되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바로 ‘다세대 전달과정(Multigenerational transmission process)’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보웬은 다세대에 걸친 대가족을 하나의 체계로 보고, 핵가족을 그 체계의 하위체계로 생각했다. 따라서 어떤 세대에서 자기분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반드시 다음 세대로 투사되어 다음 세대의 미분화 정도를 심하게 한다. 예컨대 자아분화 수준이 낮은 부모가 자신의 내적갈등과 상처를 자녀에게 투사한다면, 그 자녀 또한 낮은 자아분화 수준을 지닐 것이다.

 

- 가족치료(김유숙) p.252 중에서

 

 

이렇게 가족투사과정은 다음 세대를 희생시킨다. 자아분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또다시 희생된다. 이윽고 세대 간의 지나친 융해는 더욱더 심화될 것이다.

 

*

 

생각해보면 우리가 관계를 맺는 새로운 사람들은, 어쩌면 과거의 관계유형을 계속 반복하는 대상이다. 이는 자신의 정서적 욕구에 따라 자연스레 반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서적 단위인 가족 또는 연인, 친구 관계는 정서적 장(emotional field)이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자신의 미해결된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는 경향이 생기는 이유다.


이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자신의 태도다. 자아분화를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과정만으로도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보웬은 가족 내의 한 사람이 높은 자기분화를 마침내 ‘성취’한다면 다른 가족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기본전제를 일컬었다.

 

실은 이 글을 쓰는 나도 아직 완벽하게 자아분화를 성취한 사람이 아니다. 완벽한 자아분화에 다다를 수 있을까 확신하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더욱 결의를 다지고자 또다시 글을 쓴다. 아무래도 다시 실패하고, 실수하고, 또 넘어지고, 깨질 것이다. 하지만 노력할 것이다.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기. 나와 타인을 동시에 존중하는 삶의 기술을 끊임없이 익히기. 누구나 관계에서 불안없이, 사람들과 좋은 정서적 접촉을 원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출처 : 가족치료(김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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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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