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 [공간]

새 얼굴로 찾아올 공간을 기대하며
글 입력 2022.10.0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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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던 중 안내 문구 앞에서 모든 행동이 멈췄다.

 

OOOO 도서관 리모델링 10월 17일 진행 예정입니다

 

바로 사서 선생님께 달려가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17일부터 리모델링이 시작된단다. 언제 끝날 것 같으냐 물었더니 올해 말은 족히 지나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진다. 손에 잡힌 5권의 책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그러니까 너희가 지금 내가 읽을 수 있는 마지막 상호대차 도서란 말이냐. 예약 중이라 못 빌린 책이 한 트럭인데. 하필 지금? 게다가 내년에는 집 계약이 끝나 동네도 옮길 예정이다. 마지막 석 달 정도 열심히 정을 나누어보려고 했더니 새로 꾸민 도서관도 못 보고 떠나게 생겼다. 평소라면 책을 새로 빌리고 그대로 도서관을 빠져나와 아늑한 내 집에 돌아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조금 더 안쪽, 책장과 가까운 자리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토록 아쉬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울살이 7년 차인 작년, 나는 미루던 주소 이전을 했다. 그 이유는 전세 대출 때문도, 지원금 때문도 아닌 도서관 대출증 때문이었다. 오직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이 도서 대출증 때문에. 날 서울 시민으로 만들어준 도서관이 리모델링으로 멈춰버리는 것은 나로서는 다소 섭섭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까 니가 왜)


어쨌든 동네에 도서관이 있다는 건 주거지를 선정하는 데 있어 꽤 매력적인 포인트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단골 해장 가게인 맥도날드가 있는 것보다, 체육관이 가까운 것보다 좋아하는 카페가 옮겨오는 것보다, 역이 가까운 것보다 좋다.


이렇게 도서관을 높이 평가하는 주제에 정작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이사 오고 2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약 500미터. 신호등 하나를 끼고 있는 직선거리에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다. 도서관은 신분증을 재발급하려 찾아간 주민센터 1층에 수줍게 자리하고 있었다.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숨은 적이 없지만, 누구 하나 나에게 일러준 적도 없어 몰랐던 도서관을 그렇게 처음 만났다.


아담한 공간이다. 10개 남짓의 책장이 좁게 들어서 있고, 아동용 도서 공간까지 있으니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임을 알리듯 늘 열려있는 문과 분류 테이프와 바랜 책 표지 색의 뚜렷한 차에서 드러나는 세월에서 아늑함을 느꼈다. 여기 정말 마음에 든다. 한 바퀴를 돌아본 후 나는 잔뜩 부푼 가슴으로 대출증을 만들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서울 시민 대상으로만 대출증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저도 서울 시민인데요. 벌써 서울에 산 지 7년이 꼬박 넘어가는데요. 그래도 안 된단다. 거주 중인 주소지가 서울이어야 한다고...살면서 내가 만들어낸 미루기와 귀차니즘에 몇 방 얻어맞을 때가 있는데 이것도 꽤 어질한 한 방이었다.


주소 이전을 하지 않은 것은 귀차니즘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로 주소지를 빼고 싶다는 말을 하자마자 서운함을 숨기지 않는 부모님의 촉촉한 눈망울을 마주하고서 우기지 못한 물렁한 마음도 있다. 등본을 뗐을 때 내 이름이 없는데 섭섭하다는 것이 딸바보 아버지의 주장. 설득당했었다.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부지. 나 책 빌리고 싶다. 근데 주소 이전 해야 된대.

서울 오래 살았다 캐보지 왜.

했는데 안된대.

책 빌리고 싶다는데 우짜노. 해라.


그렇게 전화로 허락 아닌 허락을 받고 나니 웃음이 났다. 아, 그러니까 책이 뭐라고.


책과 도서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에서 ‘독서자매’라며 취재도 왔었다. 나란히 1, 2위의 독서 기록이 찍힌 독서통장을 들고 동생과 머리를 맞댄 깜찍한 사진도 남았다. 지금도 가끔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동생과 키득대곤 한다.


대학부터 취업 전까지는 오랫동안 책과 이별한 상태였다. 취업 준비 중 내가 읽은 책이라곤 시사상식과 논술 작성법에 관련된 자기 계발서뿐이었다. 소설과 에세이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로알드 달이든 구병모든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야기를 끌어안기보다는 지난 내 삶을 탈탈 털어 만든 ‘자소설’을 쓰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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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후에야 조금 여유가 생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퇴근하는 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한 권 사서 읽는 식으로. 쓰는 직업으로 살면서 느끼는 점은 내 글을 읽는 시간만큼 남의 글을 읽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활동을 100% 지원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다름아닌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을 다닌 지는 1년이 넘었고, 첫 대출일인 2021년 4월 5일부터 지금까지는 143권의 책을 빌렸다.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좁은 공간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사서, 올해의 젊은작가상 신간을 펴놓고 한숨을 쉬어가며 혀를 차가며 재미있게 책에 빠져든 남자, 지루함에 몸을 배배 꼬다가 책이 쌓이면 장갑을 끼고 일어나는 근로 학생, 커다란 가방에서 반납할 아이들 책을 한 무더기 꺼내놓는 여자. 이어폰을 끼고 문제집을 푸는 학생...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궁금했다. 보고 싶은 책을 한 아름 쌓아두고 가끔은 휴대폰으로 찍고, 가끔은 서둘러 노트에 뭔가를 적다가 노트북에도 무언가를 타닥타닥 적어내려가는 정신 사나운 여자?


다니던 도서관이 영영 사라지는 것도, 다시는 오지 못할 것도 아님을 알지만, 마감이 끝나고 부리나케 달려갈 곳이 없어진 것은 아무래도 섭섭하다. 인기가 많은 책이 쉽게 끄트머리가 닳아버리는 것도, 구입을 부탁했던 도서가 들어왔다는 알림을 받는 것, 상호대차 도서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는 것까지 모조리 설레는 일이었으니까.


도서관과 나의 역사를 정리해 보니 더욱 마음이 이상하다. 기나긴 도서관의 겨울방학 동안 나는 어디서 표류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다시 내가 책이랑 만날 수 있도록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도서관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새 얼굴을 고대하며. 다시 만나기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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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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