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배가 부르면, 그만해야지.

나무에서 씨앗까지
글 입력 2022.10.0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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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Han SeungMin)


해냈다.

 

2022

 

photo, digital image

 

 

껍데기_small.jpg

 

 

사과 하나가 있다. 노랗고 빨갛고 시큼한 사과가.

 

사과의 과육은 동그랗고 부슬거리며 투명하고 축축하다. 싱싱한 사과의 향은 하얗고, 순진하고, 거칠다. 난 옛날 tv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코너 갈갈이처럼 사과껍질을 까기 시작한다.


입에 들어오는 향은 잘빠진 빨간 스포츠카같다. 갈수록 향이 심화한다. 내 이빨에 의해 떨어져 나간 껍질은 싱싱한 듯 몸을 한껏 꺾고 코에 그 향으로 달려들지만 잠시뿐이다.

 

갓 떨어져나온 껍질은 빳빳하고 반짝이니 보기 좋지만 얼마 안 돼 식탁의 풍경과 함께 끈적하게 붙어 눅눅한 냄새를 풍긴다. 껍질은 누워 과육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과육도 껍질을 그리워하는 듯 하다.


사과 조직이 앞니를 만나고, 질긴 듯 가볍게 분리된다. 바로 다음 어금니로 이동한 조직은 그 향이 어물어져 질척하고 부슬하고 쫀득거리는 단백질 찌꺼기가 되어 입에 자리 잡는다. 이때쯤되면 처음 물었을 때의 사과 맛은 흩어져 사라진다. 서운할 정도로 빠르게. 과육과 과즙은 곧 점막과 침에 엉긴 채 식도에 흡수된다. 사과가 지나간 자리의 점막은 시큼함이 물들어있다. 


다 먹어갈수록 입 주변은 끈적해지고, 손은 지저분해진다. 사과의 내핵에 가까워져 단단하고 질긴 부분이 입속으로 들어온다. 어그적 씹으며 말한다. 곧 씨앗이 나오겠어.


사과의 꼭지와 씨앗을 맛보기 시작한다. 달고 신 과육의 맛이 아니다. 이 사과가 원래 달려있었을 나무의 맛이 느껴진다. 쓰기도 하다. 떫기도 하고. 식도와 뱃속은 사과를 소화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난다. 위장이 빨간색, 아니 신 주황색으로 물드는 느낌이다.


이제 곧이다. 까만 씨앗이 볼 안에서 구르는 게 느껴지고 뱉는다. 배가 부르다. 사과를 먹어서 부른 건지. 시간을 먹어서 부른 건지 모르겠다.

 

뱃속이 섭섭할 정도로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잠시도 기다릴 수 없다. 기다리면 체한다. 


퉤. 

씨앗이 있다.

씨앗은 뱉어야 한다. 먹으면 안 된다.

언젠간 또 먹을 사과를 위해서.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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