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필름 사진이 내게 남긴 것 [사람]

세상은 불확실해,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해도 좋아.
글 입력 2022.10.0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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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마쿠라 바다 바람은 내 뺨을 때렸다고 느낄 만큼 추웠지만, 필름 사진 속 바다는 참 따뜻하다.

 

그렇다. 필름 사진은 내 기억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세상 모든 것을 필름 카메라로 담고자, 내 눈길은 평소 지나쳤던 대상 모두에게 몇 초 더 머물렀다.

 

애정을 듬뿍 담아서일까.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도 컸다. 일명 '망한 사진'이었다. 한 롤에 꼭 몇 장씩 초점이 안 맞거나 빛이 부족하거나 빛을 너무 많이 받아 대상이 뚜렷하지 않았다.

 

미안하게도 난 내 기준 망한 사진이 세상의 바깥으로 나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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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심심할 때마다 내가 찍은 사진을 자주 꺼내봤다.

 

어느 날 초점을 잃은 흐릿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뭉툭한 펜 촉으로 그린듯 사진 속 배경은 부드러웠다. 어떤 것도 명료하지 않아서 오히려 편안했다. 만약 이 필름 사진이 사람이라면, 내게 이런 말을 할 것 같았다. "세상은 불확실해,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해도 좋아."

 

*

 

난 선택하는 걸 두려워하는 겁쟁이다. 뭐든 결과가 그려지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략 70~80% 정도 할 일에 대한 확신을 얻어야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진짜 겁쟁이는 선택 이후에도 두렵다. 확신이 들어 일을 시작해도, 난 여전히 확신할 수 없어서 불안했다. 내 선택이 10점 과녁에 맞기를 바랐다.

 

새해가 되면 한 해를 점쳐보는 사주나 타로가 늘 인기고, 인간이 아니라 기술까지 나의 취향까지 예측한다. 우리는 예견한 말을 어렴풋 들어맞다고 여기는 것일 뿐,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노력해서 결과를 바꿔 예측을 맞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세상은 무작위로 들어오는 '불운'도 존재한다. 노력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일이 찾아와서 삶을 무력하게 만든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일은 그저 아픔을 온몸으로 소화해 내야지 지나간다.

 

내 선택이 온통 10점 과녁에 맞기를 바란 건 너무나 큰 이기심이다. 매 일상이 예측대로 딱 들어맞을 수 없다. 초점이 맞아떨어지고, 적당한 빛의 양과 안정적인 구도, 필름 한 롤에서 그나마 잘 나온 몇몇 사진이 오히려 엄청난 행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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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알 수 없는 삶은 초점을 잃고, 흔들리거나, 빛을 받지 못한 '망한 사진'에 가깝다. 비관적인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저 여태 세상을 명료하고 진실하게 보고자 했던 내 마음이 욕심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 내게 망한 사진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어긋나는 초점 사이로 대상이 흐려져도 그 뭉툭한 내 삶을 귀엽고 사랑스럽게 바라볼 자신이 있다.


필름 사진이 나에게 남긴 건 세상을 꼭 뚜렷하게 바라볼 필요 없다는 거다. 선명히 보려 해도 삶은 계속 물음을 던질 테다. 불확실함을 즐기자.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다. 그 이후 일어날 일에서 배움을 얻고, 확신을 얻자.

 

하지만 불확실함을 즐기자고 마음먹어도 난 여전히 내 선택에 대해 불안할 것이다. 삶이 불확실하다는 명제처럼 불안도 인간 삶에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면 그냥 내 마음을 꾸준히 알아봐 줄 것이다.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마음'뿐이니, 세상을 향한 물음표를 나의 느낌표로 채우면서 불확실함을 확실한 그 무언가로 '내'가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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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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