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끼니 [도서]

글 입력 2022.10.0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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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는 밥을 먹다 생긴 에피소드와 식당에서 마주친 사람에 대한 책이다. 참치집 사장님, 짬뽕집 배달원, 만둣집 부녀 등 끼니를 때우다 마주친 사람들의 별나고도 재밌는, 때론 안타까운 이야기 총 47편이 수록되어 있다. 특별한 사람만이, 특별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맛있게 드셨던 음식이 뭐였나요?


중학생 하교 길에 매일같이 사 먹었던 초코 와플, 엄청나게 배고픈 상태에서 먹은 잡곡밥에 갓김치, 내가 좋아하는 순두부찌개와 감자탕, 회사 건너의 테이크아웃 초밥 등. 근데 뭐니 뭐니 해도 늦여름 나무 그늘 아래, 야외테이블에서 국수와 함께 먹은 야채전이 최고였다.


“다른 사람한테서 네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냔 질문을 듣는다면, 여기 이 가게에서 먹은 전이라고 말해줘야겠다.”라는 말을 들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좋아했던 티가 났나보다. 내가 진짜 맛있게 먹었나보다, 떠올리니 동그란 웃음이 난다. 다시 가더라도 그 때만큼 맛있으려나 생각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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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의 낭만은 개뿔!


 

깊은 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문득 몰려오는 센치함, 아련히 떠오르는 그녀, 눈앞에 펼쳐진 포장마차. 뭔가 적당한 그림이 만들어졌다. 드라마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꾸역꾸역 소주 한 병 반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거스름돈으로 꺼낸 천 원짜리 5장 중 1장을 슬쩍 주머니에 꾸겨 넣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따져야 했다. 왜 돈을 꼬불치냐고.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 그때까지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었으니까.


빗방울이 아까보다 굵어졌다.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이런 얍삽한 아주머니 같으니라고!’ -46p


에피소드에 댓글을 달고 싶다면 군말 없는 ‘ㅋㅋㅋㅋㅋㅋㅋ.’ 내 주위에 감성에 한껏 젖어있던 사람이 있었나? 떠올랐다. 항상 복도 계단에 앉아 슬픈 발라드를 부르면서 아련하게 친구들을 쳐다보고 있던 같은 반 여자아이도 그랬었다. 야, 쌤이 너 바닥 안 닦았다고 불러오래, 하면 게슴츠레 뜨던 눈을 퍼뜩 뜨곤 아오 쉬, 하고 현실말투를 뱉곤 엉덩이를 팍팍 털고 일어났었다. 그냥 웃긴친구였어서, 지금도 어디선가 개성있게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잘 익은 수박 확인하다 봉변을


 

여인은 귀찮다는 듯 “다 맛있어요”라고 말했다. 여인의 성의 없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수박 속 좀 확인시켜 줄 수 있어요? 내 말에 여인은 약간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삼각 모양으로 잘라내기 위해 수박 윗부분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쩌어억!’ 일부만 도려내기 위해 칼을 조금 찔러 넣었을 뿐인데 그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른 걸로 바꿔 달라고 할 마음은 없었다. 내가 얌체같이 굴면 쪼개진 수박은 처리가 곤란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착한 척할 기회는 없었다. 여인이 쪼개진 수박을 들고 내게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손님이 잘라 달라고 했으니 책임지셔야죠.” -68p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별개로 그저께 본 궤변을 늘어놓던 존재가 겹쳐 생각났다. 별로인 행동을 먼저 해놓곤, 책 ‘미움 받을 용기’를 끼고 살 것 같이 행동하던. 마음에 여유가 없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태도나 말이 좋게 나가지 않는다는 건 안다만, 얄궂게도 그 상황에 직면하면 이해 따윈 하고 싶지 않다.


여인이 얄미워지고, ‘나 과일 좋아하는데, 그 여인은 우수 고객을 놓쳤다.’는 작가의 속내에, 나의 그 일도 여러 정황상 아쉽게 되었다는 생각에 공감됐다. 에라, 평생 그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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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일은 그냥 생기기도 한다


 

살다보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 물론 대부분의 일에는 그에 합당한 인과가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다. 그냥 느닷없는 억울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냥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상황을 수습하는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기서 인생의 성패가 갈리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몇 번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야 겨우 노련한 기술을 얻을 수 있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남에게 상처를 준 핫도그 할머니나 학생식당 아주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악행을 벌였으니 하늘의 대가를 치렀을까, 그랬다고 믿으련다. 그래야 내 정신 건강에 이로우니까. -185p


뭐든 그렇게 된 이상, 직면하고 타파해 나가야 한다. 미운 그 사람을 통해 나는 비슷한 상황에 어떤 행동으로 대하는 게 현명할지 생각하고 고민했다. 몇 번의 경험은 감정을 분출했을 때, 그 후엔 불편한 상황 혹은 분노에 완전히 휩싸인 모습만 남았다고 내게 일러주었다. 그렇다고 당황했을 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반박하는 것도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좀 더 현명한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했을 때 상대가 과연 내 뜻대로 움직일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단지 확실히 배운 건 분노가 더 크게 이는 걸 원초적으로 막기 위한 방법-심호흡과 숫자세기, 귀여운 아기 동물 보기-을 알게 된 정도다.


아, 카카오톡 나와의 대화방 배경 화면엔 내가 좋아하고 항상 인지하고 싶은 문장이 써진 사진이 있다. “불쾌한 일은 미리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99%는 참을 수 있다. 아침이 되면 자신에게 말해라. 나는 오늘 은혜를 모르는 사람, 거만한 사람, 인간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 질투하는 사람, 화풀이를 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라고.” 좀 더 나은 멘탈을 위해 하루의 기대감을 확 꺾는, 씁쓸한 문장처럼도 보이지만 정말 유용하다.


재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은 부쩍 행복한 하루가 되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그럴 줄 알았어.’하고 넘길 수 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나쁜 일은 생겨. 그건 일종의 자연재해 같은 거야. (본문 중)그래, 그냥 그랬던 거다. 그러다 또 좋은 사람, 좋은 기분도 찾아오는 거겠지.


일상의 가장 평범하고 가장 당연한 ‘밥을 먹을 때’에 겪은 이야기라 공감도 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당연한 모든 것에도 하나하나 이야기가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었던 도서 <끼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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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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