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곳의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여행]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시간들
글 입력 2022.10.01 14: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미국 여행을 시작한 지 약 10일 정도가 지났다. 내가 걸어갈 앞으로의 시간들에 비하면 분명 짧은 시간이지만, 9번의 밤은 생각보다 꽤 길다. 나는 그동안 곳곳을 걸어다니며 꽤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들 중 일부를 적어내고자 한다.

 

 

1.jpg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헤치고 지나가야 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같은 경우 아무 말 없이 사람들 사이의 공간을 찾아 몸을 구겨 넣고는 했다. 그렇게 하면 누군가와 부딪치지 않고도 내가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내 옆을 지나야 할 때는 내가 당연히 몸을 피해준다. 아마도 이 행동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할 것이다.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이 도시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정신 없다, 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고 차들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그 속의 나는 휴대폰 속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기 위해 발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그들의 흐름을 잘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익숙하던 넓은 인도가 아닌 사람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에 버거운 너비에서는 타인과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사방에서 "Excuse me"가 들려온다. 그저 자신이 지나가겠다고 알리기 위함이다. 나와 조금이라도 길이 겹치면 나에게 "Sorry"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발화는 이들에게 일상이었다. 초반의 나는 언제나 그랬듯 내 몸만 쏙 빠져나가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Sorry"가 나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이와 단 둘이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나는 휴대폰을 보거나 벽면의 거울을 보거나 멍을 때리기도 한다. 모르는 이에게 굳이 말을 걸지 않고, 그 사람 역시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다.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How are you?" 내가 여행 중 가장 많이 들은 세 가지 말 중 하나이다. 인사를 건네고도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여행은 잘 되어가니? 너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어디에서 왔니? 등... 여행자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대화를 5층까지 가는 약 일 분여 동안의 시간에 거의 다 한 것 같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한 번 마주치고 말 모르는 사람이 걸어오는 안부 인사는 겪을 일이 없었다. ”How are you?"라는 물음을 처음 듣고 나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 와중에 “Fine. Thank you. And you?"라는 대답은 하지 않기 위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Great"을 내뱉고 상대방과 헤어진 뒤 곧장 후회했다. “Thank you"라고 할걸. 그 다음 기회에는 “Thank you."를 말하는 데 성공했으나 또 후회했다. 나도 물어볼걸.


나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는 사람의 안부 인사는 낯설다. 그리고 당황스럽다.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와 이름도 국적도 모르는 나의 하루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이야기한다. 나는 이내 가지고 있던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웃으며 대답하고 고맙다고 대답한다. 안절부절하며 답하던 나는 이내 익숙하게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2.jpg

 

 

"How are you?"의 연장선이다. 일명 ‘스몰톡’이라고 불리는 행위가 참 자연스럽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즐겁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당연하게도 지인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내리며 오늘 즐거웠다, 너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 라고 이야기한다. 주변을 둘러 보면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대체 무슨 말을 할까,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주제가 있을까 궁금했다. 혼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버스 도착이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어진 상태였다. 내 주변에 서 있던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했고 놀랍게도 나는 그 사람과 계속해서 말을 주고 받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냐 묻는다면 김 빠지게도 별 말 안했다는 대답만 할 수 있겠다. 버스 늦네, 무슨 버스 기다리니, 어디 가니, 어디서 왔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면 신천지인지 의심부터 하던 나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대화를 하게 되었으니 웃긴 일이기도 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거나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에게 이 글은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순간 순간들이 모두 생경하고 소중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의 문화 차이는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기에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는 것이 훨씬 깊이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여러 번 겪어도 그 때마다 뜻깊다고 생각한다.

 

최근 나는 여행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감각들을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간과 나의 감정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글에 그것들을 보관하는 행위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이 글도 그 중의 일부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욱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지금의 내가 적어내려간 이 경험들이 그 때에는 어떻게 읽힐까.

 

 

 

5CE56F63-4EB3-40F3-8781-E65644ED5AD7.jpeg

 

 

[민시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