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더욱 알 수 없어진 아트 스타의 삶을 기리며 -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글 입력 2022.09.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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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리석 위에 선 예술가



반 고흐는 27세에 화가가 되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된 고흐는 정규 미술교육 대신 독학을 통해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래서 고흐는 기존 제도와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성을 뽐낸 작품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동시대 화가나 대중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현대사회에서는 고흐의 상징성이 주목받았다. 다양한 매체는 고흐의 삶을 신화화 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른 광기의 예술가이자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하고만 비극적인 예술가이며, 현대 사회가 세운 깨끗한 대리석 위에 선 아트 슈퍼스타다.

 

오늘날 그의 독특한 화풍과 삶의 행보를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만큼 그가 가진 소박한 예술관과 현실적인 고통의 무게를 접할 기회는 적어졌다. 반 고흐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그가 격정적인 성향을 표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밭을 가는 농부처럼 예술의 씨앗을 뿌리는 삶을 살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책,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는 좀 더 다양한 모습의 고흐를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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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초로한 발자국



책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는 수많은 명작을 쏟아낸 시기에 고흐가 쓴 편지들을 묶은 책이다. ‘고흐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테오에게 붙인 편지’라는 문장 아래에, 나를 포함해 많은 현대인이 미치광이 천재의 예술을 탐닉을 기대했을 수 있다.

 

하지만 고흐의 편지에는 사색적이고 고독한 예술가의 모습뿐만 아니라, 소박하고 신중한 순례자의 모습도 비친다. 테오와의 편지에 고흐는 비련의 천재로서 보다는 자신의 필치를 찾아 끊임없이 작품을 생산해내는 예술가나 동생에게 돈을 받아 생활하는 외톨이로서의 모습이 비친다. 우리가 기대한 슈퍼스타의 모습치고는 초로한 모습이다.

 

책은 고흐가 머물렀던 세 지역을 중심으로 편지를 묶었다. 구체적으로 부푼 꿈을 가지고 도착한 아를, 고독과 불안이 만들어낸 신경쇠약을 치료하기 위해 도착한 생 레미, 마지막 삶을 정리한 오베르 순으로 구성하였다. 책은 편지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주제를 키워드로 묶어 중간마다 고흐의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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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아를 시기’에는 고흐에게도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의 편지에서도 희망과 기대가 느껴진다. 아를에 도착했을 때, 고흐는 일본 판화의 간결한 윤곽과 화려한 색채에 매료되어 있었다. 붉은 태양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아를에 도착했던 것도 아를이 일본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흐는 뚜렷한 윤곽 안에서 붉은색, 노란빛, 주황빛과 녹색을 대비하여 태양보다 눈 부신 색채회화 스타일을 완성한다.

 

그는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화가 공동체를 꿈꿨다. 그는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한 노란 집에서 아틀리에를 꾸려 그림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판매금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의 계획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고, 초대를 받아들인 유일한 화가 고갱조차도 테오의 경제적 지원에 응한 것에 불과했다.

 

‘해바라기’는 고흐가 아를에서 그려낸 대표작 중 하나다. 고흐는 자신의 노란 집에 고갱을 초대하는 마음으로 ‘해바라기’를 그렸다. 높은 강도의 색채와 힘 있는 선으로 완성된 작품에서 비치는 노란색은 고갱과의 만남과 기대로 찬란하게 빛난다. ‘빈센트 침실’에서도 고흐가 꿈꿨던 화가들의 공동체의 근거지가 되길 바랐던 노란 집에 대한 열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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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그린 ‘씨 뿌리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고흐의 정신적 우상이었던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들’를 고려하여 이 작품을 보면, 씨뿌리는 농부를 비추는 밝은 태양은 어떤 종교적인 숭고함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작품에서도 ‘해바라기’나 ‘노란 집’과 마찬가지로 밝은 노란색이 사용되었다. 그에게 노란색은 팔레트의 한 칸을 차지하는 색깔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베르나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아를에서 고흐는 자신의 예술적 스타일을 완성한다.

 

 

흙은 다양한 노란 색조를 품고 있는데, 노란색에 보랏빛이 섞여서 색이 중화되지. 나는 진실된 색을 찾느라 애먹고 있어. 나는 아직도 과거 기억의 주인공들, 영원함에 대한 갈망의 마술에 잡혀 있다네. 씨 뿌리는 사람과 짚단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 전에도 그랬지만 어느 때보다 훨씬 이런 것들이 매혹적이라네.

 

- 1888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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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레미 요양원 시절에는 그는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아를 시기에 고흐의 예술적 스타일이 완성되지만, 고갱과의 불화 이후로는 정신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불안에 시달리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시기에 고흐가 많은 자화상을 남긴 것은 자신의 정체감을 확인하고 삶의 제어력을 되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이때 예술은 위태로운 삶을 조율하게 하고, 그의 삶을 지탱하게 했다.

 

생 레미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고흐는 정신적 평온을 되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를에서 보인 남 프랑스의 생기와는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생산한다. 이 시기에는 아를 때 그린 그림과 반대로 청색, 흑색, 녹색과 과장된 선을 사용했다. 이미 유명해진 ‘별이 빛나는 밤’은 강한 선을 통해 리듬감을 표현하여 소용돌이의 꿈틀거림을 표현하여 음산한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산과 별의 움직임은 하나의 생물처럼 호흡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작업은 그 무엇보다 한량없이 기분 전환이 된다. 그림에 온 정력을 쏟을 수 있다면 최고의 처방이 될 것 같은데... - 1889년 9월 2일

 

작업을 하는 동안 내 정신은 완전히 안정되고, 붓이 알아서 나가며, 논리적으로 움직인다. 아무튼, 최소한 일요일까지 가고 싶어. 건투를 빈다… - 1890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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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처럼 생 레미에서의 그림은 현실과 환상을 함께 섞어 그리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는 요양원 근처의 나무들을 열심히 그렸는데, 곡선의 자유로운 사용을 통해 어떤 리듬이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아를 시기에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다면, 이 시기의 작품들은 강렬한 뒤틀림이 표현되어 있다. 고흐의 혼란스러운 심리가 편지에도 잘 드러나 있다.

 

책에서 짧게 다루는 마지막 시기, 오베르에서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가난과 테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드러난다. 파도가 몰아치는 것처럼 펼쳐진 광활한 밀밭과 그 위를 불길하게 날아다니는 까마귀는 그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삶의 마지막을 자연의 리듬을 표현하려고 했던 고흐는 이 작품을 완성한 다음 영원한 세계로 떠났다.

 

 

붓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지고 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이 정확히 뭔지 알고 있기에, 그 이후로 큰 채색화를 세 점도 넘게 작업했다. 불안한 하늘 아래 밀밭이 광대하게 펼쳐진 그림들이다. 슬픔과 극한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데는 애를 쓸 필요도 없다.

 

- 1890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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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책을 읽으면서 고흐를 많은 부분 오해했다는 생각을 했다. 편지로 읽어낸 반 고흐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초로하고 소박한 인간이었다. 그는 고독하고 불안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연과 어떤 숭고한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고 캔퍼스를 쉬지 않고 열심히 쟁기질했다.

 

반 고흐는 자기파괴적인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는 테오의 돌봄과 사랑을 잘 알고 있었고, 그만큼 그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격정적인 상황에서도 살더라도 편지를 쓰는 손에는 신중함과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홧김에 귓불을 자른 후에도 그는 예술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추구를 사랑하는 테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진심으로 챙겨주는 테오의 행복을 비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는 결국 테오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를 안고 죽었다.

 

흔히 들어왔던 것 처럼, 고흐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는 고통과 고립 속에서 살았고, 그 누구보다 소통을 간절하게 바라왔다. 고흐는 생전 많은 사람과 깊게 소통하지 못하고 충분한 인정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에는 광활한 자연과 따뜻함에 대한 아련함이 남아있다.

 

고흐의 그림과 편지에는 예술가의 열망과 거대한 세계의 자연물이 하나가 되어 합일하고 싶은 욕망이 함께 섞여 있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몇몇 물음들이 이 혼란스러운 두 마음이 묻어나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생의 아이에게 바치는 아몬드 나무, 조용히 씨를 뿌리는 농민들을 사랑한 그는 왜 그렇게까지 부지런하게 그림을 그려야만 했을까? 동생에게 한 말이 정말 동생에게만 향한 것이었을까? 내게 인간 반고흐는 더 어려운 존재로 남았다.

 

 

내 그림들, 나는 그것들에 인생을 걸었고, 내 이성은 그로 인해 반쯤 허물어져 버렸지.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치는 아니다. 너는 인간적으로 행동하면서 어디에 있을지 택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체 너는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 1890년 7월 23일

 

나에겐 절대 찾아오지 않을 테지만 진정으로 이상적인 삶을 열망하는 향수는 계속 남아서 시시때때로 울컥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곳에서 예술가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어. 때때로 너에겐 예술에 마음과 영혼을 내던질, 예술을 하며 잘해 나가겠다는 욕망이 전혀 없지. 너는 마차를 끄는 말이고, 그 오래된 마차에 다시 묶이겠지. 하지만 너는 햇살이 비추고 강물이 흐르는 초원에서 다른 말들과 함께 자유롭게 본능대로 살아가는 편이 나을거야.

 

누가 이런 상황을 원할까. 나는 모르겠다. 죽음이나 불멸성에 매혹된 사람이나 그럴까? 네가 끌고 가는 마차는 어떤 사람들에게 다소 소용이 있겠지만, 너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하지. 어쨌든 우리가 새로운 예술, 미래의 예술가들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 1888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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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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