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의 프랑스 화가로 불리던 빈센트 반 고흐. 그가 남긴 작품과 편지는 이름 앞에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는 수식어를 덧붙였다.
더욱이 그의 이름을 잠시만 떠올려봐도 자연스럽게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자화상>, <꽃 피는 아몬드 꽃>, <아를의 침실>, <밤의 카페 테라스> 등 여러 작품이 단번에 나열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
위에서 나열한 작품은 모두 아를-생레미-오베르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3년의 그림들로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에 수록되었다. 특별하게 편지와 함께 실린 고흐의 대표작과 스케치를 볼 수 있어 독자의 흥미를 더욱 이끌고 있다.
편지의 수령인들은 가족, 동료, 지인으로 그중에서도 동생 테오 반 고흐와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수령인에 따라서 편지 내용은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공통적으로는 고흐가 바라본 삶에 대한 태도, 이와 연결된 예술을 향한 생각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혼이 느껴졌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많은 작품에 태양의 흔적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찾아서 빈센트 반 고흐가 직접 남긴 발자취로 하나씩 떠나보기를 바란다.
당시 6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림을 익혔던 반 고흐는 작품에 대한 열정, 예술을 향한 새로운 영감을 찾아서 1888년 2월 프로방스의 '아를'로 향한다.
1888년 4월 9일
사랑하는 테오에게
(······)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의 풍경을 그릴 거야. 아니, 어쩌면 무엇보다도, 무르익은 옥수수밭을 그릴지도 모르겠다. 이곳의 밤은 때때로 무척이나 황홀하단다. 나는 계속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단다······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내용 中
아를에 도착한 초기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고흐는 다채로운 색을 활용하여 대상을 표현한다. 특히, 색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점으로 인해 표현력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유독 그의 작품에 눈길이 오래 머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5월 이후로는 여러 화가와 교류하는 '남쪽의 화실'을 꿈꾸며 '노란 집'을 빌리게 된다. 더 나아가 희망의 장소에서 화가로서의 성장할 모습을 그려 나간다.
이에 대한 생각은 고흐의 대표작인 <해바라기>와 <아를의 침실>에서 유독 눈에 띄는 '노란색'을 통해 발현되었다. 그러므로 남쪽의 화실이 노란 집인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닌 듯하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프로방스의 '태양' 그 자체와 이에 반사된 빛은 그의 무한한 영감의 대상이다.
다음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도슨트'가 직접 동료 화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이처럼 편지 내용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데, 작품에 대한 해설을 원작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색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이다.
1888년 6월 19일경
친애하는 베르나르에게
(······) <씨 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쟁기로 흙덩이를 갈아 놓은 너른 들판은 진짜로 보라색으로 보이네······
흙은 다양한 노란 색조를 품고 있는데, 노란색에 보랏빛이 섞여서 색이 중화되지. 나는 진실된 색을 표현하느라 다소 애를 먹고 있어······
내가 고장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네. 나는 아직도 과거 기억의 주인공들, 영원함에 대한 갈망의 마술에 사로잡혀 있다네. 씨 뿌리는 사람과 짚단이 상징하는 게 바로 그것이지. 전에도 그랬지만 어느 때보다 훨씬 이런 것들이 매혹적이라네.
그런데 말이야, 내 머릿속을 사로잡은, 별이 빛나는 하늘은 언제쯤 그릴 수 있을까?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내용 中
<해 질 녘의 씨 뿌리는 사람>
위에서 언급한 두 편지를 비롯하여 고흐의 편지 곳곳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리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열망은 1888년 10월 2일 화가 외젠 보흐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견되었다.
그 내용은 함께 방문한 포룸광장의 그랑 카페를 배경으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에 대한 이야기, 편지에 동봉하여 보낸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스케치이다. 고흐가 설명한대로 강에 비친 빛나는 별이 인상적이며, 어딘가 따뜻한 느낌마저 든다.
안타깝게도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후, 불과 7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고흐는 더 이상 아를의 밤하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를 괴롭힌 아픔은 끝내 몸과 마음에 가득 차서 아를을 떠나 생레미 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산의 풍경>
비록 생레미에서 보내는 편지의 시간적 간격이 길어졌지만, 빈센트는 예술의 세계를 더 견고하게 지켜나갔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산의 풍경>은 생레미에 도착한 후,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그리고 있던 그림이다. 색채가 조화롭고 부드럽다.
그리고 이어진 편지에서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등장한다.
1889년 6월 18일경
사랑하는 테오에게
올리브나무들이 있는 풍경화 한 점과,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린 새로운 습작 한 점을 그렸단다······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내용 中
<별이 빛나는 밤>
아를에 와서 줄곧 이야기했던 '별이 빛나는 밤'과 '별이 빛나는 하늘'은 보다 강렬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앞선 별이 빛나는 하늘과는 달리,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상상과 현실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보다 아름다운 밤하늘과 대조적으로 사이프러스 나무에 눈길이 가는 것은 고흐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1889년 6월 25일
사랑하는 테오에게
(······) 사이프러스나무들이 항상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들을 <해바라기>그림처럼 그리고 싶단다. 아직 내가 보는 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놀랐어.
(······)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푸른 하늘과 대비하여, 아니 오히려 푸른색 ‘안에서’ 봐야만 한단다······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내용 中
1890년 5월, 약 2년간의 프로방스 생활을 뒤로하고 빈센트는 프로방스를 떠나 파리 인근의 오베르로 거처를 옮겼다. 파리에 살고 있던 동생 테오와 가깝고, 자연의 풍경과 더불어서 환경의 변화가 필요했던 그에게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한편,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의 표지 그림인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은 1890년 6월 17일경 화가 폴 고갱에게 쓴 편지에서 언급되었다.
특히 밤하늘에 애정을 갖고 있던 빈센트가 고갱에게 남긴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운데 사이프러스 나무와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고흐와 고갱. 아를에서 남쪽의 화실을 꿈꾸었던 고흐가 노란 집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고갱과의 관계는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시선을 달리하여 빈센트가 고갱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들의 관계를 단순하게만 볼 수 없을 거 같다.
남겨진 편지가 우리에게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을 포함하고도 미술사적으로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과 그림에 대한 호기심, 이에 영향을 받은 무수한 흔적들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프로방스를 떠나서도 그렸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빈센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 편지는 끝내 고갱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빈센트 사후에 발견되었지만, 어쩐지 그가 꿈꿔온 밤하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밝게 빛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1888년 10월 25일경
사랑하는 테오에게
내 그림들이 팔리지 않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언젠가 이 그림들이 물감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 날이 오겠지······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내용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