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마흔의 비혼녀, 그녀는 왜 고독사를 쫓을까 - 뮤지컬 '어차피 혼자'

새로운 '소시민' 뮤지컬의 등장
글 입력 2022.09.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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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사랑, 낭만, 환희로 가득 차 ‘오락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이 호화로운 예술에 현실의 암울함을 섞어 보기로 하자. 신비롭고 몽환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칙칙하고 숨 막히는 ‘노랑장판’ 감성에 더 가깝다.


이 뮤지컬은 무려 ‘고독사’라는 파격적인 주제를 택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애써 피하고 싶은 내 주변의 비극을 대극장 위에 공개적으로 올렸다. <빨래>의 뒤를 잇는 또 다른 ‘소시민’ 뮤지컬, <어차피 혼자>가 첫 달리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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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구청 공무원 독고정순, 복지과에서 무연고 사망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집요할 정도로 고독사한 이들의 죽음을 쫓는다. 그녀의 후임으로 서산이 입사한다. 그는 구청장 아들이며 낙하산이다.

 

독고정순과 서산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의 이웃으로 살며 서로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고독감을 느낀다. 그 감각을 공유하며 차차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40대 비혼녀와 20대 낙하산 청년의 만남. 두 사람이 느끼는 그 ‘고독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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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인간의도리 #공무원


 

극을 이끌어 가는 건 ‘독고정순’이란 여성 캐릭터다. 딱딱한 표정으로 매일 서류를 결재 받고 민원 전화 받기만을 반복하는 흔하고 평범한 구청 공무원. 독불장군에 융통성도 없어 윗선의 눈총을 받는다.


그녀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를 고독사로 방치해버린 죄책감 탓에 무연고 사망자를 처리하는 자신의 업무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연을 끊은 지 한참 됐다는 사망자 가족에게 매달려 유품을 가져가 달라, 가시는 길 얼굴 한 번민 보셔라 애원한다. 죽은 타인을 위해 본인 아쉬운 소리만 잔뜩 하며 과로하는 유의 인간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마음을 쏟는 그녀의 ‘고집’이 이 작품의 주제다. 얄팍한 서류 한 장으로 끝나버리는 누군가의 삶이 안쓰러워 그 죽음을 최대한 정성스레 마무리하는 것.

 

구급차로 이송되는 시신에 잠시나마 묵념을 하며 명복을 비는 것. 생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윤리를 그녀를 통해 되돌아본다. 이 시대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그녀에게서 삶의 또 다른 의지와 세상의 따뜻함을 엿본다.




#비혼녀 #1인가구 #딸


 

경쟁 사회와 정반대로 향하는 그녀의 이타심은 ‘비혼녀’라는 수식어와 함께 더욱 멸시받는다. 결혼을 안 해서, 남자가 없어서, 그러니 유들유들하지 못하고 괜히 히스테리만 부리는 ‘노처녀.’ 독고정순은 이런 사회적 질타 속에서도 묵묵히 제 일을 한다.


무엇에도 상처 받지 않아 보이는 그녀의 담담한 표정 뒤엔 ‘자포자기’에 가까운 고독감이 깔려 있다. 고독사를 처리하면서도 혼자 사는 노인만큼이나 고독사 할 확률이 높은 사람. 죽은 어머니가 살던 낡은 아파트에 홀로 남아있는 그녀의 외로움은 이상하리만치 우리와 비슷해 보인다.


독고정순 역을 맡은 조정은, 윤공주 배우를 통해 인물의 내면이 더욱 깊이 드러난다. 같은 대사를 쳐도 유달리 더 맘 아프게 들리는 배우, 짙은 호소력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배우. 두 주연의 응축된 감정선이 독고정순이란 캐릭터에 숨을 불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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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미성숙 #동질감


 

구청장 아버지의 ‘빽’으로 손쉽게 공무원이 된 20대 청년 ‘서산’ 또한 제 나름의 아픔이 있는 인물이다. 무심하고 강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다소 비뚤어지고 무례한 사회성을 갖고 있다.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을 ‘사수’ 독고정순에게 사사건건 비아냥댈 정도로 말이다.


분노로 점철된 그에겐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기에, 서산은 사망자 연고를 찾으려 고생하는 독고정순의 노력을 비웃는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청년은 미성숙하고 거칠다. 그리고 세상에 적을 두지 못해 외로이 부유한다. 이 공허함을 독고정순은 알아본다.


성별, 나이, 직업, 자라온 배경이 다름에도 상처 받은 이들이 느끼는 고독감의 깊이는 비슷하다. 나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독고정순과 서산은 묘한 위로를 주고받는다. 이 작품이 전하는 메세지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만 고독한 게 아니에요.’




#재개발 #소시민 #빨래



이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뮤지컬 <빨래>가 겹쳐 보이기도 하는 작품이다(그것은 <빨래>의 극작/연출/작곡가니까!). <빨래> 특유의 소탈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한껏 담겨있다. 여성 주연, 이웃 간의 정, 서울살이의 팍팍함이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빨래>의 달동네가 이번엔 ‘재개발 예정 아파트’로 그 무대를 옮겼다는 점.

 

낡고 좁은 저층 아파트에 적어도 반평생을 그곳에서만 지내왔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서로 애정 어린 핀잔을 주고받을 만큼 화목한 동네지만, 사실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목숨 부지 하고 있는 ‘독거노인들의 동네’이기도 하다. 이곳 주민들 역시 ‘고독사 위험군’에 속한다.


당장 여기가 아니면 살 곳이 없어 ‘재개발 절대반대’를 외치는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고독사와 가깝다. <어차피 혼자>는 자식들조차 신경 쓰지 않는 이 작고 가난한 동네의 주민들을 조명한다.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그린다는 점에서 ‘소시민 뮤지컬’이란(이젠 장르라 불러도 될) 수식어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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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이란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쇼’뿐만 아니라 소박하고 정겨운 ‘현실’을 담아낼 수도 있다. 무대의 경쾌함에 매료돼 잠깐 일상을 잊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우리가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지 반추하는 거울로서의 공연을 즐기는 것도 좋다.


<어차피 혼자>라는 냉소적인 제목과 달리 ‘그래도 같이’라는 위로를 건네는, 새로운 ‘소시민 뮤지컬’의 등장이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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