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인지와 행동, 합리적 친구가 되기를

인지행동가족치료의 두 꽃밭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9.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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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리즈 : 정상가족은 없다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에서는 가족 안에서 느끼는 고민과 갈등의 다양성을 진솔하게 나눕니다. 개인이 속한 가족이라는 체계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더 건강한 삶의 방식과 관계를 꿈꿉니다. 

 

4편 : 인지와 행동, 환상의 커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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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갈등한다. 가족이 모이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끊임없이 갈등을 마주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직면해야 한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가족 각자의 반응이 다른 이유가 있다. 개인마다 특정한 인지도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도식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창이다. 사건에 대한 해석의 도구다. 그래서 인지는 정서와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바통을 이어받은 행동은 관계의 역동을 미묘하게 바꾸거나 유지한다. 인지와 행동, 두 가지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지행동가족치료는 흥미롭다. 마치 냉난방 장치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사람의 인지와 행동도 균형이 맞게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역기능적 가족패턴을 바꾸는 확률을 높인다. 물론 어느 방면에나 그렇듯 완벽한 변화가 처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수한 연습이 필요하다.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를 통해 지금까지 보웬의 다세대 가족치료, 정신역동적 가족치료 등을 소개했다. 공교롭게도 이 치료들의 공통점은 치료의 목적이 과거를 살펴보는 데 있었다. 과거의 무의식을 탐색하고 영향력있는 인물(양육자, 원가족 등)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었다.

 

반면 오늘 소개할 인지행동가족치료는 '현재'에 일어나는 관계에 주목한다. 관찰가능한 문제행동을 바꾸는 데 관심이 있다. 과거 경험이 어떻든간에 지금 이 시점에 변화하면 된다. 방 안의 온도가 너무 추울 때 난방기를 틀어 따뜻함을 피우듯이. 가족관계도 그런 원리로 변화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지와 행동이 달라진다면!

 

 

 

Preview | 인지와 행동, 그리고 가족


 

인지행동가족치료를 살펴보기 전에 미리 생각해볼 명제들이 있다. 참고로 이 치료이론은 보통 부자관계, 모자관계, 부부관계 등 대체로 2인 관계에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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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구성원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 타인이다. 그래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를 회피하려고 하면 상처를 더 썩히는 꼴이다. 생각과 신념,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사소통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야한다.

 

가족이라도 복제인간처럼 생각이 동일할 수는 없다. 물론 원가족으로 인해 자녀가 무언가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자아분화, 안녕하신가요?>에서 언급했듯 가족 사이에 ‘나=나’를 외치는건 비극적인 자아분화 파괴이다. (조심하자!)

 

2. 가족에게는 기대하게 된다. - 누구나 가족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 안타깝게도, 기대가 지나치게 현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비현실적인 기대다. 타인의 모습이 내 이상과 불일치하면 마음 속 깊은 용암이 꾸물꾸물 흘러나온다. 이것이 바로 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3. ‘가족은 모름지기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긴다. - 스스로 만들어낸 가족의 상(image)에 당위성을 만들기도 한다. 가족관계에 대한 인지적 왜곡이나 과잉일반화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지도식으로 인해 때로 비합리적인 행동이나 갈등이 일어난다. 남탓을 하기도 하고, 상황의 객관성이나 합리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특이한 점은 한국이 지금까지 가부장적 사회를 유지해온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작금의 사회가 더 합리적인 가족관과 의식을 점차 추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Part 1. 인지의 세계 "부정적 사고는 습관이다"


 

몸풀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인지행동치료의 꽃밭으로 향한다.

 

이 치료의 시작은 먼저 '인지치료'다. 인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얻는 깨달음은 "부정적 사고는 습관"이라는 것이다. 생각을 하는 방식이 문제해결의 정중앙에 있다.

 

비합리적 사고는 순환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 1913~2007)다. 그는 정서적인 문제, 특히 우울증은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방식에서 근원한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이유를 극단적으로 결론짓고, 이것이 반복되면 반사적으로 우울한 감정을 겪는 것이다.

 

비합리적 사고의 순환은 다음 5단계가 반복된다. 1) 비합리적 생각을 한다. 2) 스스로를 미워한다. 3) 스스로를 미워하기에 타인도 미워한다. 4) 타인에게 비합리적 행동을 한다. 반복한다. 5) 타인들도 마찬가지로 비합리적 행동으로 반응한다. 1번부터 5번의 과정이 계속해서 돌고 돈다.

 

내가 싫어질 때 타인(가족)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에게 엄격할 수록 상대방에게도 그런 잣대를 들이민다. 반대로 스스로를 사랑하면, 타인에게도 그런 관대한 마음을 품을 가능성이 생긴다.

 

스스로와 타인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느냐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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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앨리스는 내담자의 합리적인 사고를 유도하기 위해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역사깊은 비합리적 신념을 논박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비합리적인 사고와 신념은 사실과 객관성을 간과한다. 당위성만 강조한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Should, must"의 개념이다. "반드시.. ~해야만 해."라는 의무를 나에게 혹은 다른 이에게 부과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행동한 방식이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면 부정적인 감정이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그 감정은 비합리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비판과 비난의 장이 순식간에 열려버리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앨리스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사고에 개입해 현실적이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치료를 구상했다. 내담자의 언어를 변화시키고, 인지적 과제를 부여하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색안경을 점차 벗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그럴 수도 있다"라는 관용적인 사고와 유연함을 기르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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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치치료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학자 아론 벡(Aaron Beck, 1921~)은 우울스키마 가설을 제시하며 3가지 인지적 오류를 일컬었다. 바로 자기 자신과 세상, 미래에 대해 모두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인지삼제다. 삶이 힘겹다면 눈 깜짝할 사이 인지삼제에 가까워진다. 통제불가능한 외부 환경에 좌절할 때.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나아지는 것 하나 없다고 느낄 때. 마치 낭떠러지에 와있다고 느낄 때 온전한 사고를 유지하기 어렵다.

 

벡은 덧붙여 '추론의 오류'를 분석했다. 그 예로 여러 경우가 있다.

 

먼저, 임의적 추론은 근거없이 부정적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아직 명확한 의미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상대편 마음을 지레 짐작한다. 가족관계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가장 쉬운 길이다.

 

과잉 일반화는 특정 사건에 근거하여 극단적으로 일반화를 하는 것이다. "늘, 항상, 반드시, 매번"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상대의 실수를 고집스럽게 비판하는 데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불과 같은 갈등이 벌어지기 딱 좋다.

 

이분법적 사고는 흑백논리와도 같다. 모 아니면 도다. 선과 악 둘 중에 하나다. 갈등이 일어날 때 잠시 거리를 두고 관계의 휴식을 갖거나, 서로의 차이점을 소통하고자 노력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좋을 때는 너무 좋고, 싫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싫다.

 

과대평가는 사소한 사건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반대로 과소평가는 실상은 중요한데 실제보다 작거나 약하게 평가한다.

 

 


Part 2. 행동의 세계 “행동이 달라지면 사건이 달라진다”



앞서 인지치료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를 달리했다면, 이제는 행동적 측면으로 나아갈 차례다. 인지행동가족치료는 인지와 행동 변화를 보완적으로 이끄는 것이기에, 인지변화 하나만으로 가족 의사소통 패턴이 달라지기는 어렵다. 눈에 보이는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행동치료의 일차적 목표는 가족관계에 역기능적인 문제행동을 수정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말이야 거창하지만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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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개념은 심리학자 스튜어트가 고안한 유관계약이다. 쉽게 말해 변화를 위한 계약이다. 구성원끼리 상호호혜적인 행동을 하도록 의무를 지게 한다.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보상을 보장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다.

 

1)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은 줄인다.

2) 상대가 원하는 행동은 더 많이 한다.


지금 당장 이 두가지만 가족생활에 적용해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그 핵심 지점을 돌파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역회전’이다. 유관계약은 상담현장에서 상담자와 직접 약속하는 특수성이 있다. 하지만 상담을 하지 않아도 이 두 가지 조건은 누구나 실천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의 행동적 기법으로는 체계적 둔감범이 있다. 체계적 둔감법이란 원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기 위해 행동으로 대비 또는 준비하는 과정이다.

 

우선 심리적 거부감이 적은 상황부터 상상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연습을 한다. 눈을 감고 상상한다. 심호흡을 해도 좋다. 상황에 걸맞는 행동을 추가하며 상황대처 능력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다 점차 상황의 구체성과 강도를 더 강화한다. 점진적인 단계로 연습을 해왔으니, 심리적인 조절과 통제가 조금이라도 쉬워질 것이다.

 

모델링도 빠질 수 없는 기법이다. 관찰과 모방이다.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한 모범적인 행동 사례를 찾는다. 실제 치료에서는 집단 상담으로 다른 가족들의 의사소통을 보며 모델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치료를 받지 않고 개인적인 노력으로 개선을 이루는 사람들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참고하면 된다. 유튜브든, 책이든, 모델로 삼을 만한 대상이 발견되면 좋다.

 

 

 

인지와 행동, 환상의 커플이 되는 그날까지


 

인지와 행동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어렵다. 사람이 로봇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소개한 치료는 길면 몇 년이 걸리기까지 오래 연습하고 실천하는 기법들을 담고 있다. 어려운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 볼 만하다.

 

굳이 과거의 깊은 곳까지 파헤치고 들어가 고통스럽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속한 이 자리에서 '인지'의 도식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다면, 그로인해 '행동'도 변화 가능함을 확신한다면, 마침내 '관계'의 패턴과 역동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지와 행동이 환상의 커플이 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만 않으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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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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