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장르는 여름밤

사유를 담은 일기
글 입력 2022.09.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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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는 여름밤>은 작가가 밴드 몽구스로 데뷔 후 현재 몬구로 활동하기까지의 일기장이다. 그는 인디 음악가로 짧게는 한 단락으로 길게는 여러 페이지로 나누어 연대별이 아닌 키워드에 따라 책을 구성했다.

 

남의 일기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쓰는 일기와 비교되더라. 나의 일기는 전형적으로 ~ 했다는 업무 일지와 다를 바가 없는데, <장르는 여름밤>은 에세이 제목과 서브 카피의 컨셉에 맞게 서정적인 표현으로 그날의 사유를 담았다. 감성적인 음악가라 카피뿐만 아니라 문체도 상당히 부드럽고 다채롭다. 그래서 자꾸 손길이 갔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몽상가이고, 여름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몽상가다. 나는 여름밤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소리를 만들고 글을 쓴다. 그 결과물인 음악을 어느 계절에 들어도 누구나 여름밤을 떠올리기 바라며. 내게 여름은 감성의 근원이고 여름밤은 열매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여름밤에 쓴 곡도 많고 여름밤을 떠올리며 쓴 곡도 많다. 누군가 내게 어떤 장르의 음악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여름밤으로 하고 싶다.


<장르는 여름밤> 중 장르는 여름밤 20쪽

 



음악가가 전하는 심심한 위로


나는 음악가의 생리를 모른다. 주변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전공도 접점이 없어 더욱더 문외한이다. 직업의 범위를 넓혀 예술가라 하여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지 전혀 모른다. 프리랜서 느낌으로 생각하면 될까? 직장인보단 직업인이란 말이 어울리는 그들의 삶에 대한 어떠한 지식과 이해 없이 읽은 책은 여러모로 내게 위안이 됐다. 어떠한 공통점도 없는 나에게 말이다.

 


여러 예술가를 만나며 배운 게 세 가지 있다. 첫째, 예술은 ‘작품의 도구’가 아닌 ‘삶의 태도’로 접근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의언어에는 하나같이 묘한 깊이와 울림이 있었다. 둘째, 오랜 세월과 꾸준함으로 만들어진 무게감이 있다. 꾸며서는 만들 수 없는 안정된 무게감이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예술가의 삶을 막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들뜨거나 낙담한다. 기분도 오르락내리락이 심하다. 하지만 그 시기를 꿋꿋하게 넘어선 사람들은 안정감이 느껴진다. 또한 순수하다. (중략) 마지막은 자존심이다. 그들은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품위를 지켜 내고 있었다.


<장르는 여름밤> 중 품위를 지키며 꾸준히 실패하는 중 185쪽


 

<장르는 여름밤>은 다양한 소재를 담았다. 그중 책의 초반의 ‘장르는 여름밤’이란 일기는 책의 제목이 됐고 상징성을 가진다. 아마도 작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이라 그러겠지. 여름과 여름밤을 구분하고 그것을 몽상가라는 특징과 연결해 자신을 나타낸 그는 진행 중인 인생의 한 지점들을 일기로 썼다. <장르는 여름밤>은 꿈, 직업, 사랑, 친구, 이별, 등 이러한 시간을 견디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낸 현재까지의 모든 일기다.

 

작가가 지키고 성장시킨 정체성은 책의 소개처럼 ‘청춘’과 가장 어울렸다. 성장하는 우리가 지나간 혹은 앞으로 지나칠 지점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만들었다. 평범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인생을 기록함으로써 성장하는 청춘의 의미를 만들었고, 이를 음악가로서 사유한 풍부한 표현은 딱딱하게 뭉친 내 어깨를 노곤하게 풀어주며 심심한 위로를 안겨줬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유난스럽지 않다고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적당한 외로움이 여유를 주는 것 같다.

딱 그정도의 여백이 지금 내게 필요하다.

<장르는 여름밤> 중 딱 그정도의 여백 33쪽



20대에는 바라는 것이 적었기 때문일까? 그땐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제법 많았다. 하지만 점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진다. 원하는 게 많아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하는 대로 되는 마법의 힘이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어르들이 건 최면에서 깨어나 불행을 마주하게 된걸까? 더 슬픈 건 왠지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듯한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장르는 여름밤> 중 그건 그때 가서 알 것 같다 51쪽


 

장르는 여름밤_표지.jpg

 

 

 

사유를 담은 일기 

 

문득 예전에 애정했던 밈이 떠올랐다. 배우 유해진 님이 예능에 나와 말했던 건데, 아저씨와 요즘 애들의 감정 표현 차이였다. 아저씨는 노래를 붙이지만 요즘 애들은 시크하게 표현한다며 ‘대박’ 이란 단어로 표현을 모두 퉁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웃기기도 했지만 나는 그만큼 사유와 표현, 기록이 짧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즉,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를 포기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삶의 이유를 무덤 속에 묻는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적어도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이 지점을 타개하고자 일기를 쓴다고 앞서 말했는데, 사실 이게 쉽지 않다. 사유에 대한 초심은 갈수록 잃어갔고 나의 일기는 일지가 됐으니까. 어떨 때 보면 초등학생이 쓴 일기 같다.


 

자신을 너무 몰아세울 필요는 없겠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면 잠시 멈춰서 자신의 소리를 내 보고 정확히 들어 보는 게 좋다. 나라는 악가가 내는 그 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조금씩 조율해 보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기타는 튜너기라도 있지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없으니 더욱 어려울 터. 역시 귀찮은 일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귀찮은 일은 대개 중요하다고 했지. 중요한 건 쉽지 않다고 했고.

 

<장르는 여름밤> 중 기타와 튜닝과 마음 121쪽

 

 

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밝힌다. 누군가가 시간은 유한하기에 지금의 감정과 생각을 잘 가꾸고 기록해야 한다며, 작가는 일기 대신 음악으로 만든다고 했지만 그는 글로써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한곳에 모으게 됐다고 한다. 책은 일기이자 에세이답게 우리가 했을 법한 생각도 많아 공감된다. 나는 이 고민을 정돈하여 글로써 풀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끙끙 앓기만 했는데, 부드럽고 명쾌한 글로 마주하니 고민이 선명해지고 해결에 대한 실마리가 또렷해지더라.

 

작가는 이 고민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을까? 짬 내 썼다기보단 써야 해서, 해야 해서 자신과 약속한 일기를 쓰고 사유를 그렇게 늘려간 걸까? 일기의 제목과 내용은 작가가 그날 하루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사유에 대한 노력으로 일기를 왜 권유했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글은 사람을 사유하게 하며 풍부한 생각을 만드니까. 꼬리를 무는 질문은 우리가 기꺼이 대답하고자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점을 만든다. 그리고 글은 증거로 남아 차곡차곡 쌓인다.

 

정체성의 원동력에 대한 태도는 그의 일기에서 알 수 있었다. 인터뷰의 ‘질문’이 주제인 차례였다. 일기의 본문은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던지는 질문이 닫혀있느냐 열려 있느냐에 따라 같은 질문이어도 다른 대답을 얻는다는 그러한 내용인데, 이 차이를 고민한 그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여 이 일기를 지속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순전히 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질문’을 이용해 생각을 확장하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견고히 쌓아 올린 것처럼 일기의 내용은 단단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일기를 쓰면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또 생각하는 행위가 모아보면 인터뷰 과정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몇 글자씩 써내리며 스스로 에디팅하여 글로 적어내니 그것이 인터뷰가 아니고 무엇인가 싶더라.

 

작가는 일기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여름밤을 떠올리며 영원히 남길 수 있도록 250쪽에 달하는 책을 기록의 상징으로 출간했다. 단순히 일기가 아니라 이날 이때까지 유연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기록이자 칭찬으로,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살아갈 이유를 더 해주는 글로써 말이다. 모두 자신에게 열려있는 질문을 한 번씩 던져보길 바란다. 작은 질문을 시작으로 사유의 물꼬를 틀어보길 바라며.



대화가 답답한 이유는 ‘닫힌 질문’이라는 걸 발견했으니까. 닫힌 질문을 받으면 그 너머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아, 이건 닫힌 질문이구나. 그래서 내가 기분이 좀 이상하구나.’ 알아채고, ‘왜 이런 질문을 한 걸까? 혹시 같은 경험을 한 걸까?’하며 상대방의 진심에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쾌함은 부수적이다. 게다가 그 이유를 알았으니 조금씩 컨트롤 할 수 있다. 안 좋은 기분으로 대화의 내용을 놓쳐봤자 나만 손해일 테고. 또한 이유도 모른 채 기분이 엉망이면 잠들 때까지 찜찜하지만 이유를 알고 나면 그리 찜찜하지도 않다. 그마저도 잠들 때쯤에는 거의 다 녹아서 희석된다.


<장르는 여름밤> 중 열린 질문 55쪽

 


어쩌면 대답보다 질문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질문은 생각을 확장시킨다. 생각을 자극하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촉구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성장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질문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강력한 표시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하나의 기술이 되기도 하겠지. 자기 의견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장르는 여름밤> 중 열린 질문 55쪽

 

 

 

이서은_전문필진.jpeg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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