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본 적 없는 앎의 바다를 향하여 -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피아노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9.1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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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페예프_리사이틀_포스터 최종.jpg

 

 

초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던 9월의 첫 주, 알렉산더 말로페예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여름 내내 진행해오던 프로젝트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나가던 차, 나를 위한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심결에 티켓을 신청했다.

 

공연 당일이 되어서야 간신히 프로그램을 살펴볼 짬이 났는데,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소한 곡들이었다. 낯선 연주자와 생소한 연주곡. 즐거운 관람 경험이 새로운 취향의 발견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당황보다는 기대에 가까운 감정을 싣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프로필 3.jpg


 

아직 청년보다는 앳된 소년의 얼굴을 한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은 젊은 피아니스트이다.

 

2014년 차이코프스키 영 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2017년 첫 '젊은 야마하 아티스트' 로 선정되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는 갓 약관을 넘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테크닉 뿐만 아니라 성숙하고 균형잡힌 음악성으로 남다른 재능을 자랑한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말로페예프에 대해 "그가 14살 때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함께한 무대를 보고 매우 놀랐다. 그는 영재를 넘어 세계의 피아니스트들이 어려워하는 음악적 깊이와 테크닉, 음악성 그리고 기억력 모두를 갖고 있었다"라며 극찬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프로필 1.jpg

 

 

이번 공연은 고전주의의 선두주자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로 포문을 열었다. 폭풍이라는 뜻의 이 곡은 베토벤이 청년 시절 작곡한 곡으로,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폭풍의 다양한 얼굴을 음악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베토벤 템페스트 3악장은 귀에 익을 것이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템페스트 3악장은 역동적이면서도 화려하고 낭만적인 선율을 자랑한다.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폭풍우마냥 촘촘히 짜여진 음표들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연주자의 자신감 넘치는 곡 해석이 곡에 힘을 더한다. 빠르게 내달리다가도 순식간에 숨죽이게 만드는 연주자의 탁월한 완급조절이 한층 더 위태로운 폭풍을 일으키는 듯 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프로필 2.jpg

 

 

이후에 이어진 스크리아빈과 메트너의 곡들은 역시나 생소한 곡들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에서 연주된 '회화적 연습곡, 작품번호 33번'은 낯선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낯섦이라는 감정으로 뭉뚱그리기에, 이번 공연은 동시대를 살았던 러시아의 중요 작곡가인 스크리아빈,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니콜라이 메트너의 곡을 비교 감상해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특히나 이번 리사이틀에서 처음 접한 스크리아빈 작품은 풍부한 멜로디와 특유의 엇박리듬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와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 시간이 야금야금 흘러 이 날의 스크리아빈이 점차 흐릿해질 때쯤, 다시 그 곡을 꺼내듣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한 관람 경험이 전에 모르던 앎과 신선한 감정을 직조해내는 순간을 애정한다. 나는 어쩌면 그 찰나의 감각에 중독되어 자꾸만 공연장으로, 전시장으로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휴의 끝자락, 다시금 시작을 앞둔 일상의 문턱 앞에서 한숨이 짙어지는 밤이다. 베토벤과 스크리아빈이라는 돛을 달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다가, 그 돛이 닳고 닳아 헤질 때 즈음 또다시 뱃머리를 돌리겠다.

 

나는 오늘도 가본 적 없는 앎의 바다를 향해 작은 노를 젓는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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