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의 장르는 가을 저녁이 될 거야, 책 '장르는 여름밤'

글 입력 2022.09.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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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을에 태어났다. 이 말인즉, 나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하, 사실 이건 100% 사심이 담긴 문장이다. 사실 나는 그래서 가을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믿음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나도 안다. 요즘의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몹시 추워서, 여름에 태어났음에도 여름을 싫어하고 겨울에 태어났음에도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주변에서도 이미 발견했는걸. 분명 7월에 태어났다고 했는데, 더위를 추위보다 못 참는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 느낀 더위가 너무 강렬해서 반발감이 생기신 것 같다'라며 대화를 무마했더랬지.

 

내가 가을에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계절을 사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을이니까.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독서의 계절에 태어났으니까. 때론 쓸쓸하고 가끔 서걱거리는 감정이 들긴 해도, 시원한 바람과 푸른 세상이 자꾸만 피크닉을 가자고 꼬셔대는 데. 나에겐 가을을 싫어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여기, 자신의 장르는 여름밤이라 선언한 사람이 나타났다. 여름밤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소리를 만들고 글을 쓴다. 누구나 여름밤을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누군가 어떤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있느냐 묻는다면, 여름밤이라 대답할 것이다. 책 <장르는 여름밤>의 저자 몬구는 푸른 에너지와 습기가 배어나는 여름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문득 나의 여름밤을 떠올려 보았다. 더위와 싸우기 바빴던 수많은 밤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여름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지? 생각하다 여름의 밤은 1년 중 가장 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길어진 해 덕분인지, 여름밤은 사람을 여유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집에 조금 늦게 들어가도, 잠을 조금 늦게 자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 몬구는 이런 기분을, 여름밤의 느낌을 푸른 에너지로 해석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에는 표지와 같은 몽환적인 푸른색이 배어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나의 마음마저 촉촉이 적시는 물기 어린 싱그러움이 가득 담긴 글들이었다. 물론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서, 그의 모든 글에 마음을 두긴 어려웠다.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미움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그의 바람은 나의 그것과 몹시 닮아 있어서, 끝내 나의 마음을 비춰 놓은 듯한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 01


 

책 <장르는 여름밤>의 저자 몬구는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나는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 질문은 집중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친구와 지인,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질문을 한다. 어쩌면 내가 밸런스 게임의 원조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질문을 고르고 또 고른다. 지금은 꽤 익숙해진 상태라 의식하지는 않지만, 좋은 질문을 건네기 위한 노력은 무의식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몬구는 열린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 말한다. 닫힌 질문은 질문자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별로란다. 틀에 짜 맞춰진 대답을 요구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대답을 고를 수 있는 열린 질문이 좋다는 그의 인사이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깨달았다. 좋은 인터뷰는 결국 좋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인터뷰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다, 대단해 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질문들이 우선이다.

 

 

질문은 생각을 확장시킨다.

생각을 자극하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촉구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성장하는 것이다.

 

- 책 <장르는 여름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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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나의 방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있다. 이름은 '성장'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라며 직접 붙여준 이름이다. 종류는 테이블 야자라고 한다.

 

성장이는 이름처럼 정말 잘 자라주었다. 혼자서도 쑥쑥- '식물을 보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맙게도 알아서 잘 커주었다. 그런데 그런 성장이가 요즘은 통 새싹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걱정이 될 정도로 소식이 없어서 매일 우는 소리를 하고 있다.

 

몬구는 홍콩야자를 키운다고 한다. 홍콩 야자와 벌써 1년을 보냈다고 한다. 봄여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홍콩야자가 가을겨울이 되자 더디게 성장하는 모습을 전부 지켜봤다고 한다. 몬구의 식물 멘토는 잎사귀가 자라지 않아도 뿌리는 자란다고 말했다.

 

몬구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명언이 된 문장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장이의 진짜 '성장'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단한 뿌리로부터 건강한 싹이 시작된다는 진리. 과학 시간에 그렇게 배웠음에도 역시 자기 자식 일에는 눈이 어두워지는 모양이다.

 

나의 성장이는 지금도 성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더 튼튼한 싹을 틔우기 위해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있겠지. 아니, 근데 그럼 우리 성장이 진짜 기특한 거 맞네?

 

*

 

제목처럼 여름밤을 푹 담아낸 책 <장르는 여름밤>을 읽으며 나의 장르는 어느 계절의 어떤 시간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나의 장르는 가을 저녁이 될 것 같다. 나는 내가 태어난 가을을 사랑하고 가을의 저물어가는 하루를 좋아하니까.

 

언젠가 나도 나의 계절과 시간을 담은 글을 써보고 싶다. 그 글 속엔 한적하고 여유롭고 약간 쓸쓸하지만 포근한 가을 저녁이 담겨 있을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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