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아하는 건 애쓰는 마음 [사람]

추석에 느낀 가족의 자리
글 입력 2022.09.12 15: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traffic-jam-g30140f057_640 (1).jpg
출처 : pixabay

 

 

 

좋아하는 건 애쓰는 마음이다.



추석 연휴 동안 고향에 내려와서 맛있는 반찬이 엄청 많아서 신나게 삼시세끼를 먹고 있다. 서울에서 먹던 밥과 다르다. 시골의 밥은 정성스러운 한 끼의 재미를 누리지만 서울의 밥은 항상 한 끼를 때웠다. 매일 똑같이 먹는 반찬과 밥을 차리는 것 일련의 과정이 지겨웠다. 먹는 재미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여름에 불 앞에 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주 일요일, 서울로 올라오신 부모님과 함께 장흥으로 내려갔다.


나는 백수의 특권으로 남들보다 더 이른 추석 연휴를 맞이했다. 장흥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서울에서 장흥까지 423.9km, 차로 (안 막히면) 5시간이다. KTX에 직통이 없어서, 나주역에서 내려 아버지의 차로 1시간 30분을 더 가야 한다.


오전 11시에 출발해, 조금 지겨워질 무렵 충청남도 서천군의 수산물 시장에 갔다. 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손에 아이스박스 한 개씩 들고 있었다. 서천에는 꽃게와 전어가 유명하다. 때마침 서천군에서 <자연산 전어 꽃게 축제>를 하고 있었다. 꽃게는 1kg 28,000원, 대하는 1kg에 30,000원. 엄마는 노련한 솜씨로 무려 6,000원이나 깎았다. 가끔 시장을 함께 가면 부모님의 억척스러움이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까 고도의 협상 기술이었다. 그렇게 대하와 게 2kg, 5마리를 샀다.


가끔 왜 부모님이 결혼했을까? 궁금했다. 두 분 모두 민망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여전히 모른다. 굉장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데 예고편처럼 말해줬다. "미팅을 하고 한 번 만나고 말았는데, 우연히 지리산에서 만나게 됐는데..!" 여기까지만 안다. 물어봐도 본편을 알려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일상을 보내다 보니까 어쩌면 이런 면이 좋았던 게 아닐까? 혼자 추측할 수 있었다.

 

 

 

아빠의 세심함을 발견했다.



할머니가 저녁 식사 때 "게를 사야겠다"고 흘린 말을 잊지 않고 내려가는 길에 수산물 시장에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늘 저녁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칼국숫집에서 엄마가 손에 닿지 않을까 봐 고기만두 접시를 옮겨주고, 나에게 새우를 까주고(!), 맛있는 걸 먼저 먹지 않는다. 나주역에서 장흥 집까지 편도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길을 달려 자식들을 데리러 와주신다.


중요한 건, 이러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생색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신다.


세 남매 중 둘째인 나는 식탐이 가득해서, 빠르게 많이 먹는 게 항상 목표였다. 괜히 덜 먹으면 억울했다. (남동생이 정말 빠르게 흡입하면, 나도 많이 먹으려고 빠르게 먹었다. 동생이 입이 짧아서 중간에 갑자기 그만 먹고, 나는 계속 먹었다. 그래서 동생은 말랐고 나는 살이 쪘다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부모님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대하를 함께 먹으면서,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런 대화를 했다.


 

할아버지 : 새우 맛있네


아버지 : 이제 손주들 오면 많이 못 먹으니까 많이 드세요


할아버지 : 그래야지


나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 : 그럼 내가 챙겨드릴게요~ 저밖에 없죠?

 

(나는 생색내기를 좋아한다)

 

 

bright-ga680005f0_1920.jpg
출처 : pixabay

 

 

 

"너도 자식을 낳아봐라"



"너도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아니라 네가 중요해지는거다. 항상 할머니 댁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평소에도 진수성찬으로 해먹고 사는 줄 알았다. 어린 나의 착각이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이 가능하다.

 

나는 너무 가까워서 소중한 사람들을 가끔 잊고 살았다. 6살 어린아이처럼, 숯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고 싶다고 해도 나무라지 않고, 태풍으로 바람 소리가 무서워서 새벽에 부모님 침대 사이로 들어가니 자리를 내어주고, 폭죽놀이를 하고 싶다니까 만 원을 쥐여주는 가족들이 나에게 있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내 삶의 중요한 지지대다. 고갈될 거라는 의심조차 없다.


옛날에는 1인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1.3인분 정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물론 그만큼 좋아해서 힘들 때도 있다.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상처를 주는 법도 제일 잘 안다. 싸우지 않고 추석을 무사히 다정하게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트인사이트_에디터.jpg

 

 

[강현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