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나고 시작된 연주 -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피아노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9.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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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2호선. 평소 같으면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샤롯데씨어터로 향했겠지만 이날은 지도 앱을 보며 롯데콘서트홀로 향했다.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서였다.


난생처음, 그리고 내 취향과는 멀다고 생각해 온 피아노 공연을 보러 간 이유에는 올해 내가 세운 목표가 큰 몫을 차지했다. 문화를 향유하는 데 있어서 '탐색하자', 그리고 '편식하지 말자'라는 목표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듣던 것만 듣고, 보던 것만 봤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장르라면 나랑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도조차 꺼렸다. '찜'을 누른 작품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막상 듣거나 본 것은 잘 늘지 않았다.

 

정체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맞는 것 같든 안 맞는 것 같든, 소위 문화 '폭식'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올해에 들어서며 위와 같은 목표를 세우고, 이전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공연을 보러 가게 된 것이었다.


처음 접하는 피아노 리사이틀이었고,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리뷰와는 거리가 먼 후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공연 이후 내 안에 남은 여운을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 글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두며, 글을 적어보려 한다.



말로페예프_리사이틀_포스터 최종.jpg



이날 내가 본 공연은 알렉산더 말로페예프의 첫 내한 연주회였다. 포스터에 적힌 '차이코프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 '피아노 신동'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부푼 기대와 함께 공연은 시작되었고, 곧 입장하는 알렉산더 말로페예프의 뒷모습을 보며 공연을 감상했다.


프로그램은 총 다섯 곡으로 구성되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메트너의 피아노 소나타 사단조 - 작품번호 22, 스크리아빈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 작품번호 16와 두 개의 즉흥곡 - 작품번호 12,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 작품번호 33.


솔직히 귀에 익숙한 곡은 있어도, 제대로 아는 곡은 없었다. 어릴 때 초등학생 필수 코스인 '하교 후 피아노 학원'을 그래도 꽤 성실히 밟았던 지라 체르니 30까지는 뗐건만, 프로그램의 곡들을 모두 알기에는 피아노, 그리고 클래식과 떨어져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럼에도 놀라웠던 점은, 사실상 처음 듣는 곡들이었음에도 각 곡에 담긴 감정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1부보다 2부에서 말로페예프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연주에 빨려 들어가며 그가 연주하는 곡들과 감정을 함께했다.


상투적이지만 '춤을 추는 것 같다'라는 표현 외에는 피아노를 치는 말로페예프의 모습을 묘사하는 보다 적확한 표현이 없었다. 그는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정말 온몸을 들썩이면서, 서정적인 부분에서는 파도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것 같이 움직이며 피아노를 쳤다. 2부까지 끝났을 때에는 과연 피아노 연주는 행위예술이구나, 생각하며 마지막 박수를 쳤다. 정확하게는 마지막'인 줄 알았던' 박수를.

 

그때 어디에도 예고된 적 없었던, 관객은 물론 말로페예프 역시 몰랐을 새로운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프로필 7.jpg



말로페예프의 즉흥적인 선곡으로 이루어진 즉흥적인 연주. 멈추지 않는 박수소리에 말로페예프는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듯하더니 은은하게 웃으며 앵콜을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번. 그는 20분이 넘도록 총 6곡의 앵콜을 진행했다.


환호 속에서 어느 곡을 칠지 잠시 고민하다가 시작된 연주는 1부, 그리고 2부보다 더 말로페예프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담은 음악을 담아냈다. 정말 '날아다니면서' 연주를 마친 마지막 앵콜은 정말 짧게 끝났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곡보다 스펙터클하게 들렸다.


말로페예프가 앵콜곡을 연주하는 내내, 그가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모든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집중해서 빨개진 귀나 자유로운 몸짓과 같은 시각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공연장을 에워싸고 있는 분위기 만으로도. 관객이 공연을 볼 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연주자가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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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피아노 리사이틀은 이전까지 내가 봐 왔던 공연과는 달리, 반드시 '이대로 끝내야만 하는' 정해진 결말이 없었기에 새로운 연주였다. 공연장에는 연주자와 관객 오롯이 둘만이 존재했다. 오롯이 둘만이 소통하고, 호흡하며 새로운 결말이자 다시는 없을 유일한 결말을 만들어냈다.


공연이 끝나고 내 안에 남은 여운은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앵콜에서 했던 곡들이 무엇인지, 1부와 2부에서 그가 연주했던 곡이 음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찾아보는 시간은 마치 다시 시작된 앵콜과도 같았다.

 

끝나고 시작된, 끝이 새로운 시작이었던 연주. 이 연주가 나의 피아노 리사이틀 경험의 첫 시작이었다는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피아노 연주는 듣는 것에서 끝난다는 생각을 지우게 되었으니. 그리고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의 연주의 끝은, 내 피아노 리사이틀의 기억에 있어, 그리고 음악의 기억에 있어도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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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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