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 그은 선에 베이지 않기를 [영화]

영화, 김씨 표류기
글 입력 2022.09.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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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개봉작, <김씨 표류기>는 한 남자가 서울 한강 가운데에 있는 ‘밤섬’에 갇히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B급 감성이나 코미디 장르로 분류되며 ‘설마 누가 밤섬에 갇히겠는가?’와 같은 웃음 섞인 의문으로 시작되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평이 깊게 주를 이루고 있어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평가된다.

 

영화는 국내에서 가장 흔한 성(姓)인, 김 씨라는 성을 가진 두 남녀를 통해 개인들의 ‘표류’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표류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라는 뜻으로, 어느 한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부유하는 상태를 암시하며, 이는 곧 불안한 사회적 지위와도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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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부분, 남자 주인공 김 씨는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를 받고, 한강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죽기로 결심한다. 한강에 빠졌던 그는 밤섬에서 깨게 되는데, 이후 주변을 향해 아무리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아무도 남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남자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찍고 지나치는 여객선 안 관광객, 배터리 없는 휴대전화로 전화해 위험에 처했다고 말해도 무시하는 119 직원 등을 통해, 남자를 외면하는 현실을 집약적으로 긴장감 있게 제시한다.

 

영화는 익사할 듯한 연출과 함께 타인의 어려움에는 관심이 없는 경쟁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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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자 주인공 김 씨는 트렌드를 쫓아 브랜드의 의류나 이미지에 민감한 편이다. 이는 현시대가 개인들의 욕망을 움직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광고와 상품, 소셜 네트워크, OTT 프로그램 등, 각각 미디어 매체들은 자본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상적 주체를 선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아무리 개인적인 선호에도, 부르주아의 문화적 지배 논리가 작동되고 있다고 보았다.


즉 문화 자본에 속하는 생활세계의 자연스러운 취미와 습관들은 사회적인 지위와 연계되어 있으며, 이는 계급적 적대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은폐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고급 취향을 소비하면서 타인과 구분 짓는 일명, 차별화(구별 짓기) 양식은 계급적 구분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적대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문화 자본을 통한 구별 짓기는 사회적 배제의 과정이나 지배의 과정을 정당화하고, 계급적 적대가 이루어지도록 조성한다. 쉽게 자각하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지배 계급의 문화에 속하게 만들어, 일방적인 지배 계급의 논리가 작동하며 속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자본을 비롯해 경제 자본, 사회자본, 이들을 총체적으로 인정해주는 상징 자본의 소유와 자본의 소유 비율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위치는 정해지게 되며, 차별화(구별 짓기)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는 특성을 보인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결국 남자는 환경관리원들에게 붙잡혀 쫓겨나게 되는데, 이를 본 여자는 처음으로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뛰어나가게 된다. 여기서 주인공들의 차림새만을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통해, 차별화 현상이 불러온 사회적 배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은 계속해서 구별 짓기를 하며, 상징적 폭력을 행사하는 오늘날 타인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유리창 같은 계급적 적대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과 같은 점유지를 빼앗고, 신체적 폭력을 포함한 지속적인 상징적 폭력은 깊은 체념적 인식에 젖어 들게 한다. 부르디외는 ‘원래 그런 거야’라는 등의 일상의 체념적 표현이 사회상의 모습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채오병, 2018) 그러므로 체념적 인식의 만연함을 극복하고자 계급적 적대에 대한 사회적인 열린 논의, 그리고 적극적인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국가의 실질적 능력을 보여줄 잣대가 될 것이다.

 

개봉된 뒤 10년 이상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적대가 넘치고, 은폐되며, 자신의 진정한 자리를 점유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현실이다. 높이 치솟는 물가와 함께 움직이는 경제적 불안과, 벌어진 계층 간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현 계급적 적대를 허물 실효성 있는 법안과 시스템, 인식이 더욱 필요함을 증명하고 있는 시기, 영화 <김씨 표류기>는 여전히 무겁지 않게 웃음을 전달하고 있다.

 

적대가 아닌 환대로. 표류가 아닌 존중하는 점유의 공동체로 향하자고 말이다.


 

* 참고문헌

- 홍성민, 2004,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살림출판사, pp. 34-60

- 채오병, 2018, 「부르디외의 국가: 상징권력과 주체」, 「문화와 사회」, 26(2), pp. 230-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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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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