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선과 기록: 사진의 진정한 의미, 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글 입력 2022.09.0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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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_나는 카메라다_띠지 앞표지.jpg

 

 

최근, 비비안 마이어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을 한 권 읽었다. 책을 읽으며 사진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나아가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멋들어지는 서평도 썼다.


하지만 나는 내가 뱉은 말에 떳떳하지 못해 마음을 졸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어느 영화 제목처럼, 사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책을 덮으니 비비안의 사진이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문학 시간에 배웠던 '시'가 떠올랐다. 수능 언어 영역의 점수를 위한 시를 공부했던 내가 그저 어렵고 딱딱한 공식에 불과했던 시의 매력을 이해하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사진도 마찬가지일까? 사진 또한 나에게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 오히려 조급해지는 기분이었다.

 

따라서 나에게 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은 너무도 무거웠다. 사진집이라 물리적인 무게도 무거웠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훨씬 무거웠던 것 같다. 나가 비비안 마이어를 정말 읽어낼 수 있을까? 그녀의 사진을 진심으로 감상하고 감탄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지만 이겨내고 싶었다.

 

이전 책을 통해 비비안 마이어가 베일에 가려진 천재 사진작가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를 품고 다녔다는 비비안. 그녀의 주변인들은 사진을 향한 비비안의 열정은 진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그녀. 심지어 인화를 하지 않은 필름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일생을 보모와 간병인으로 일했다는 사실 외에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비비안 마이어의 생애는 뭇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자극제가 되었고, 이제는 유품이 된 훌륭한 사진들과 합쳐져 전 세계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꾸밈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비비안의 사진을 통해,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방식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손을 거쳐 인화된 사진보다, 그녀의 손길을 거치지 못한 사진의 비중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사진은 찍는 것만큼이나 찍은 후의 편집 또한 중요한 작업이다. 편집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비안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저 그녀의 순수한 사진 그 자체를 볼 뿐이다. 이는 기존의 사진사에 비추어보았을 때, 굉장히 독특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다. 비비안 마이어를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로 구분하는 이유가 될 정도로.

 

게다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광범위하다. 주제가 무척 다양하다는 말이다. 그녀는 무척 다양한 인물과 상황, 풍경 등을 사진으로 담았다. 마치 기록의 일부처럼 말이다. 일기를 쓰듯이 자신이 잊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사진으로 담은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비비안은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를 사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을 통해 성공을 거머쥐고 명성을 얻기를 탐한 것이 아닌, 자신이 찍고 싶은 '그것'을 찍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필자는 그녀가 사후에 이렇게나 유명해지기를 과연 바랐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개인적인 기록을 굳이 펼쳐 들고서 우리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왠지 필자의 의문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관찰력과 순발력은 분명 대단했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도대체 그녀 앞엔 왜 이렇게 멋지고 재미있는 일들만 펼쳐지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일상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장면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녀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가 그저 일상의 거리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모두가 똑같이 보고 지나쳤을 그 순간의 장면을 그녀만의 센스로 포착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특정한 장면을 담기에 적절한 거리감마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이 진짜 천재적인 감각이 아닐까?


확실히 전 책보다는 사진의 비중이 많았던 터라, 사진들을 천천히 감상하며 잊고 있었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아, 내가 이런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사진 몇몇 개가 있었는데, 공통점을 찾아보니 바로 '호기심'이었다. 예를 들면, 아래의 사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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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왜 여성의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는 것일까? 여성 구두는 광이 나는 반면, 아이의 운동화는 왜 이렇게 더러울까? 둘은 어떤 관계일까?

 

사진을 보는 순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사진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게 된다. 단 하나의 이미지가 영화 한 편을 만든다. 어느새 살아 움직이는 영상이 된다.

 

 

VM19XXW01325-05-MC.jpg

 

 

이 사진 역시 수많은 물음표를 달고 있다. 수많은 군중 속 생각에 잠긴 듯한 남성의 표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 표정 뒤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된다. 흘러나온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녀가 이런 이미지에 유독 눈길을 주었던 이유는 그녀의 생애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눈길을 끄는 이미지를 결코 놓치지 않은 그녀의 관찰력과 순발력이다. 나아가 솔직한 열정을 망설이지 않고 표현한 그녀의 용기이다. 물론 이는 사생활이 중요한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매력적이다. 그녀의 시선이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시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비비안 마이어에게 중요했던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시선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일. 그것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비비안의 사진은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는 카메라, 그 자체였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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