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처음 보는 자연, 그리고 사람 -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영화]

처음 느껴보는 기분, 감각. 로이스 파티뇨의 작품을 보고서
글 입력 2022.09.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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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영상'이 어떤 것인지 영화제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으며,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적인 영화는 볼 기회가 많지 않았고, 상업 영화의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버려서 찾아볼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덜컥 영화제를 보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낯선 장르였고, 아는 감독도 없었지만 주제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접해 보지 못한 장르도 마냥 어렵다고 판단하기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듣는 감각의 경험을 통해 느낀 바에 대한 기록을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견문을 넓히기에도 좋은 기회임이 틀림 없었다.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nem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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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에 인디비디오페스티벌로 시작하여, 올 해로 22회차인 네마프는 매 년 다양한 미디어 아트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지난 8월 18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제 22회차의 슬로건은 "자연"으로, 미디어로서의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상호성에 주목한 작품들을 대거 상영하였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주류 영화 및 영상 예술은 인간중심적 시선으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폭넓은 개념으로 확장한 영상들을 소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더군다나 표현 방식 자체도 기존의 '영화'와는 색다른 작품들은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8월 20일, 새로운 자연 그리고 인간을 만나다. <로이스 파티뇨 특별전 3: 풍경&부동성>


 

필자는 네마프와 아주 깊은 인연이 있는 로이스 파티뇨 감독의 작품 일부를 지난 8월 2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관람하였다.

 

 

로이스 파티뇨 감독은...

 

스페인 출생으로, 풍경을 가장 급진적으로 다루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에는 빛과 바람 그리고 땅이 있다. 그는 무의식 중에 자연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거나 감정이입하는 대신에, 무의식에서 나아가 우리와 분리되기 이전의 차원에서 서로 중첩되는 부분을 건드린다.

 


많고 많은 상영작 중에서도 그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초청작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 경험이 말해주듯, 작품성이 탁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의 초기 작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작품을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전 3을 선택하였다. 또한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소감을 남기고 싶어서 앞서 작성한 감독 소개도 읽지 않은 '무지한' 상태로 방문하였다. 풍경과 부동성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상상하며.

 

<붉은 해(sol rojo)>를 시작으로, 약 1시간 가량 상영된 <로이스 파티뇨 특별전 3 : 풍경&부동성>은 총 5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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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무거운 느낌이 극장 안을 감쌌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관람을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나지 않았다. 어두운 심해에서부터 인간이 떠오르는 것을 관객은 그저 지켜볼 뿐. 2분 30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이지만, 영겁의 시간을 담아낸 듯 하였다.

 

위 작품은 <붉은 해(sol rojo)>로 하달(hadal)이라는 전시에서 소개되었다.

 

 

하달이 의미하는 것은 수면 6,000미터 이상 깊이의 해저 지층이다. 그곳은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며, 기압은 높고 온도는 섭씨 0도에 가깝다. 이러한 특성에서 그리스 죽음의 신을 칭하는 '하데스'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그저 붉게 빛나는 태양과 시퍼런 바다를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만 들지는 않았다. 깊고 컴컴한 바다도, 붉게 타오르는 태양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태양 근처는 온도가 아주 높으며, 빛을 발하는 곳임을 생각해보면 심해와는 정반대의 성질이 있다. 어두운 곳에서 저 붉은 태양을 향해 말 없이 그곳을 향해가는 인간과 그 주위를 둘러싼 물고기 떼가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로 상영된 작품은 <풍경의 움직임에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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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부동성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풍경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계절을 담아냈다면, 인간은 그 가운데에 서서 움직임 하나 없이 광활한 자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인간의 형상은 그를 둘러싸고, 그를 향해 전개되는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흐르는 시간과 대자연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우리를 마주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매일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간의 경험을 선사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대인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속도감과는 다른 작품이었다.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부제를 가장 완벽히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 새벽(faj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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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모래사막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사람 셋. 아니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그것들이 움직임 없이 서있다가 걷다가 한다.

 

물결 모양이 새겨진 사구에서 하늘과 맞닿은 바닷가로의 전환은 탁월한 표현이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할 만큼 완벽했다. 또한 소리라고는 바람 소리나 물 소리밖에 나지 않은 것 또한 새벽과 부제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로코의 사막에서 밤은 형체를 흐릿하게 만들고 모래가 미끄러지듯 침묵이 흘러간다. 새벽이 밝으면 사구의 실루엣이 나타나고, 움직이지 않은 형체는 이러한 풍경에 점점 나타난다. 밤의 추상에서, 빛은 차원을 공간으로, 부피를 신체로 바꾼다.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밤의 추상에서 동이 트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실루엣을 드러내는 방식과 그 빛을 담아내는 탁월함에 보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도의 조절로 바다인가 모래인가 했던 것이 결국 사구임을, 그리고 결국 동이 트고 화면이 하얗게 전환되고 평평한 곳을 걸어가면서 그것이 바닷가임을 보여준다. 자연 생김새의 연속성과, 착시로 인한 인간의 착각을 맛볼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네 번째 작품은 이번 특별전 3에서 가장 길고, 대사가 많고, 소리가 다양했던 <밤 속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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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기억의 한 단상. 포르투갈과 갈라시아 사이의 국경에서는 수 세기 동안 밀수가 이루어졌다. 제레스 산맥은 국경을 알지 못하고 우뚝 솟은 바위는 무심히 두 나라에 모두 걸쳐 있다. 밀수업자들도 분리에 불복한다. 침묵하는 증인인 바위, 강, 나무가 그들이 숨도록 돕는다. 그들은 그들을 분리하고 있는 공간을 지나갈 수 있는 밤을 기다릴 뿐이다.

 

 

이 날 감상한 작품 중에, 필자에게는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영상이었다. 시작부터 색상이 반전된 화면이 나오면서 대화하는 장면이 쭉 이어진다. 작품 설명을 보지 않았던 탓이겠지만, 어떤 상황인지 감을 잡는 데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하였고 왜인지 모를 장벽이 느껴졌다. 예술적인 장벽이랄까.

 

아무튼 23분 짜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 짜리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듯 하면서도 사실적인 이야기는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했고, 색반전으로 시각적 새로움을 더해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밤 속의 밤'이라는 제목을 색반전을 통해 잘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하였다. 어둠이 걷히면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 범법행위를 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야만 하는 상황들을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하게끔 만든 일종의 장치같았다.

 

마지막 작품인 <이미지의 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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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빛이 되기 위한 물질의 노력의 산물이다' 라는 자막과 함께 형형 색색의 색이 떨어진다.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이 7분 가량 이어졌다. <이미지의 층>이라는 제목을 가진 마지막 작품은 마치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을 한 사람이 덩그러니 서서 지켜보는 영상이다.

 

 

이 작업은 이미지를 여기저기 반사하려 하고 시간, 색 및 움직임의 요소로부터 사색적인 경험을 반사한다. 우리는 인간-풍경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사이 시간의 두 가지 차원 - 인간적 차원, 지질학적 차원 - 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정의는 작업의 의지를 잘 반영한다.

 

"풍경은 이미지로 응축된 시간의 층위이다."

 

- 시놉시스 일부

 

 

그의 미술적 감각과 철학이 여실히 담겨있는 작품이었다.

 

쏟아지는 색들은 결국 하얀색의 빛이 되어 사라진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하염없이 쏟아지는 것들을 눈에 담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온전하게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의 의미기도 하겠다.

 

그렇게 사색에 잠기다보면 다양한 것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살아있음과 죽음 등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현재의 나는 어디쯤에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등 잠깐 동안에 삶을 멈추고 관망하는 태도를 갖는다.

 

이윽고 영화는 하얗게 페이드 아웃 되며 끝이 났다. 곧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나를 포함한 관객들이 일어나 자리를 뜬다. 우리가 오늘 보고 듣고 함께 경험한 그 시간은 과연 몇 분의 가치로 내게 쌓일까 생각하며 극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의 깊이를 더해 줄 영화제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안겨준 영상이었다.

 

극장에서 나오며 생경함 때문에 적잖은 충격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조용한 영상과 담백하지만 화려한 색감, 심오한 분위기가 자아내는 멋은 예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비주류의 문화, 거기서 그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은 이들이 향유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바람 같은 것.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창작물이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작품이다. 감독의 의도만이 유일한 것이 아닌,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각도적인 작품인 만큼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는 힘과 멋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로이스 파티뇨 감독의 작품은 좋은 창작물로 기억 속에 자리하였다.

 

익숙함이 주는 경험보다 새로움이 주는 경험은 말할 수 없이 짜릿하지만, 이미 고착화된 시선으로는 쉽사리 찾을 수 없다. 그만큼 경험의 무의식에 지배되는 것이 인간이다. 보다 새로운 시선을 탑재하고, 생각의 힘을 기르기에 대안영화는 좋은 도구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앞으로 매 년 꼭 한 편의 영상이나 전시를 보기 위해서 참석하고 싶은 페스티벌이라고 말하며 글을 마친다.

 

 

* 아, 감독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했는데 관련 인터뷰를 보고 나니 확실히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 나중에라도 보실 생각 있으시다면 아트인사이트에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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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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