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래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나에겐 최악의 면이 있다.
글 입력 2022.09.02 13: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랑할 땐 누구나 2.jpg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컷

 

 

요즘은 매일 명상을 하고 있다. 자기 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은 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 나름대로 큰 시험을 앞두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택한 가장 가성비 좋은 방식이었다. 공부할 때는 오히려 자아의 스위치를 잠깐 꺼두는 게 도움이 된다. 상상도 좋아하고 잡생각도 잘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명상이라는 웜홀을 타고 자꾸만 미래로 먼저 가 있는 조급한 나를 현재로 데려오는 과정이 재밌기도 했다. 난폭한 사자를 곤히 잠재우듯이 왁자지껄한 부분의 나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해지기까지 한다.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이나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일 것 같다. 아무래도 복싱을 한다거나 홈트를 하면 생존 본능이 발휘되고 당장의 내 코어의 달달거림에 온 신경이 쏠려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다른 곳으로 흐를 겨를이 없다.

 

여행도 비슷하다. 익숙지 않은 환경과 자연 속에 나를 던져두기만 하면 지금 당장 펼쳐지고 있는 모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기 위해 그 순간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상은 운동이나 여행처럼 공간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도 거의 비슷한 역할을 한다. '바쁘다 바빠 현대인'에게 최적화된 아주 효율적인 휴양이라고 할 수 있다.

 

*

 

내 명상은 유튜브 속의 성자 같은 여러 선생님이 담당해주고 계시다. 며칠 전엔 ‘자기 사랑 명상’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날은 이것 저것에 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내가 별로 사랑스럽지 않던 날이었다.

 

영상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는 왜 이리 어려울까요?’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신이 내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심상화하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내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를 떠올리라고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인자하게 웃고 있는, 실제 나보다 조금 더 키도 더 크고 나이도 더 많아 보이는 나를 떠올렸다.

 

그리곤 나의 맘에 안 드는 점을 떠올리고, 인자하고 키가 큰 내가 그런 부분의 나를 안아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나는 영화 매트릭스 속의 흰 벽으로 둘러싼 방을 공간으로 머릿 속에 만들어두고는 나의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을 담당하는 쪼끄만 버전의 나를 그렸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담당 세포들처럼 내 모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나’를 그렸다. 그리고 이다음 부분이 문제의 부분이다.

 

영상에서는 사람 대부분이 가지고 있지만 맘에 들지 않아 하는 모난 부분을 먼저 말하고는 ‘그래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예를 들면, ‘나는 성격이 좋지 못합니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도 사랑합니다.’ 혹은 ‘나는 사랑 받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나도 사랑합니다’ 같은 문장들이었다. 난 그 운율에 맞춰 내 안의 인자한 어머니인 나와, 세포 옷을 입고는 슬픈 눈으로 서 있는 내 모난 부분들을 안아주는 상상을 해야 했지만 쉽진 않았다.

 

특정 문장을 들을 때는 마음속에서 “내가 이렇게까지 최악이진 않은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 눈이 떠졌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 생각나면 눈을 꽉 감았다. 그러다가 '나는 가끔 속으로 쌍욕을 합니다. 그런 나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입니다.' 같은 문장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면 진지한 마음은 흐트러지고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선생님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명상을 대충 끝냈다. 웃긴 건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는 거다.

 

얼마 뒤에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보고 내 마음이 후련해졌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노르웨이의 영화 감독인 요아킴 트리에는 오슬로를 배경으로 영화 3부작을 만들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오슬로 3부작의 마침표가 되는 영화이다.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기변환]common.jpg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는 책처럼 구성되어 프롤로그, 12개의 장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모든 챕터는 주인공 '율리에'의 연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율리에를 보고 있자면 공감이 되면서도 이해가 안되고 또 이해는 되면서도 공감이 안간다. "내 인생에서 내가 조연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대사에 공감 했다가도 그녀의 선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녀는 자꾸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 선택과 행동들을 한다. 의대에 갔다가 심리학과로 전과를 했다가는 또 사진작가가 되어야겠다며 서점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영화 내내 모순되는 언행하며 삐그덕거리도록 만드는 관계들까지 모두 제멋대로다. 율리에의 행동은 대체로 이기적이고 철없고 충동적이다.

 

원제목은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로 한국 제목('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마 '최악의 사람'은 율리에를 가리킬 수도 있고 영화 속 인물들 모두를 가리킬 수도 있다. 율리에를 포함한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은 전혀 무지갯빛 인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모두 자신을 위해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다. 외부 인물인 나에겐 최악인 것 같아보여도 말이다.

 

연인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도망치듯 나왔을 때, 복잡한 감정이 눈물로 흐르는 상황에서는 아마 율리에도 '나 지금 최악이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떠올리거나 인생의 타이밍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또 아이를 유산하고 미소가 지어졌을 때에도.


영화 속 율리에는 분명 결점과 모순 투성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인생은 그래도 흘러가는 게 사랑스럽다. 물론 감성적인 색체나 미장센도, 북유럽 거리의 계절과 빛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기가 막히게 선곡된 OST들도 (그리고 여배우의 외모도) 한 몫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어찌저찌 굴러가는 인생이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있나?

 

나는 언제나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어느 정도 노력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겐 내 선택과 행동들이 최악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 자체가 최악이었을 수도 있다. 나에게 최악인 사람이 있듯이 어떤 이에겐 내가 최악일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 최악의 면이나 선택은 없었으면 했지만 나도 율리에처럼 무엇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인지 전혀 모른다. 그게 인간인 나의 한계다. 정답과 해설은 없고 끝없는 문제지가 일상으로 펼쳐진다.

 

언젠가 친구가 자기 인생이 시트콤이라고 생각하고, 최악인 상황에 배경에서 웃음소리가 나온다고 상상하면서 에피소드 중 하나로 보면 그냥 웃기다고 말해줬다. 인생의 좋지 않은 면면들을 너무 진지하게 느낄 필요 없이 영화 속 인물을 바라보듯, 시트콤 속 상황을 바라보듯 내 인생을 생각해보면 모난 부분도 나름대로 사랑스러워 보인다. 한동안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에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사랑을 할 수 있지."를 외치며 다녔는데 이젠 나와 내 인생에 그걸 적용해볼 차례였다.

 

다시 눈을 꼭 감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시도해본다. 구석구석을 청소하듯 건드려본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최악의 기억과 최악의 부분들이 툭툭 떨어져나온다. 다음 문장을 말하기는 조금 힘겹다. 그래도 성자 같은 명상 선생님을 생각하며 내뱉어본다.

 

'나에게는 최악의 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나도 사랑스럽습니다.'

 

 

 

컬쳐리스트 권현정.jpg

 

 

[권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