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기 드라마 속 심리학 지식 찾기, 책 '오징어 게임 심리학'

글 입력 2022.09.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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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회자되는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누구나 혹하게 만들기 좋은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결합하다니! '오징어 게임'을 그리 재미나게 보지 않았던 나조차 홀렸으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무척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책일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책 <오징어 게임 심리학>의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라는 책으로 유명한 장프랑수아 마르미옹, 그가 바로 책 <오징어 게임 심리학>을 세상에 선보인 주인공이다. 그렇다! 프랑스의 심리학자가 대한민국의 '오징어 게임'을 보고 책을 집필했다는 경이로운 소식을 전하는 바이다.

 

그 역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무척 재미나게 보았다고 한다. 더불어 심리학자로서, 그 안의 입체적인 인간 행동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말한다. 그 누구도 무조건적으로 착하거나 악한 이가 없는 역동적인 지옥 속에서, 그는 어떠한 인간 행동을 포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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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


 

게임이 펼쳐지는 곳은 익명의 공간이다. 서로가 서로를 번호로 부르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며 마지막 생존자가 되기 위해 싸워 나간다.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은 익명성이 악행을 부추기는 현상에 주목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인 '악의 평범성'은 우리 주변에 특정한 악자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어떠한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 심지어 타인을 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밀그램과 짐바르도의 실험으로 증명된 '권위'의 힘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물음표를 던졌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의지대로 '선'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일까? 두 실험은 그저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기만 해도, 나의 직책이 조금만 달라져도 인간은 이성의 끈을 언제든지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에서도 현저하게 드러난다.

 

가면을 쓴 채 등장하는 진행요원들. 이들에게는 이름도 얼굴도 개성도 없다. 그저 게임의 룰에 따라 군말 없이 명령에 복종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문득 궁금해진다. 정말로 그 무자비한 상황에서, 일말의 감정적 동요도 없었을까? 명령을 어기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이, 그들을 극한의 공포로 밀어 넣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 것인지 혹은 그저 돈, 돈 때문에 그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인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자기 합리화


 

게임의 참가자들은 한 마디로 사회 속 '루저'들이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다들 어딘가 하나씩 결핍을 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돈'을 벌고자 게임 속으로 들어왔다. '오징어 게임'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그 모든 게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자발성'을 가지고 게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눈앞에서 죽음을 목도한다는 것은 결코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끝난 후,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게임을 중단한다. 하지만 결과는? 다시 또 게임이었다. 밖으로 나가봤자 지옥이 계속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참가자들은 다시 '자발적'으로 돌아온다. 게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처음은 몰랐겠지만, 두 번째는 다르다. 이제 참가자들은 이 게임의 결과가 누군가,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게임을 지속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고 있자면,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까지 잔혹해질 수 있을까?'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당연하게 서로를 짓밟고 나아간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사실은 그들 각자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 보인다. 여기는 어차피 이런 곳이니까. 이게 게임의 룰이니까!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범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행하는 것을 '자기 합리화'라 말한다. 이미 행동은 벌어졌으니, 해석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을 이러한 곤경에 처하게 만든 상황을 탓하고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는 '오징어 게임'처럼 극한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기 합리화'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오징어 게임'처럼 극한의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러올 파국은 깨닫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토닥이는 게임의 참가자들. 그들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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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징어 게임 심리학>에는 이 밖에도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에 내재된 다양한 인지/사회 심리학적 현상들이 담겨있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오징어 게임'은 스토리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심리학 사례의 보고였던 모양이다. 굉장히 유명한 심리학적 개념들이 '오징어 게임'의 장면 장면을 사례로 삼아 소개되니,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임에도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심리학 개념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역시, 사례는 가장 강력한 설명 도구이다.

 

그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드라마라고만 생각했던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심리학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책 <오징어 게임 심리학>을 읽으며, 역시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 즉, 사람과 사회의 이야기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결국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인간을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잔인함 이전에 사람, 사람을 보여 주었기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를 넘어 사회적 담론이 될 수 있었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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