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Re : 나에게

그 시간들 속 나에게
글 입력 2022.09.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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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2020년,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리더라. 네가 들어간 팀에서 매년마다 해오던 사업이, 그래서 당연히 그 해에도 할 줄 알았던 일이, 어떻게 딱 네가 입사한 해에 처음으로 삐끗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였을까, 네가 입사하고 약 두 달 동안 너네 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사업을 따오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제안서를 제출하곤 했어. 피곤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채 지하철에 몸을 맡기던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사람은 이미 채용됐지, 사업은 계속 못 따오지... 회사는 언제까지 제안서만 쓰고 있는 너희 팀의 사정을 봐줄 수 없었어. 당연한 거야,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니까. 그래서 팀에서 가장 막내였던 네가 다른 팀의 일을 돕게 된 거지. 물론 말이 돕는 거지, 뒤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다들 네가 팔려 갔다고들 하더라고.

 

네가 기약없이 다른 팀으로 팔려... 아니 도우러 가게 됐을 때, 팀장님은 너에게 미안하다며 올해는 같이 견뎌보는 시간이라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셨지. 빨리 다른 사업을 따와서 너를 다시 팀으로 데려오겠다고 덧붙이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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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팀장님과 함께 있던 그날의 카페 풍경이 생생해. 그래도 이 시국에 잘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서 네게 미소를 지어 보이시는데, 어째 그 얼굴이 네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더 쓰게 느껴지던지.

 

농담처럼 말씀하시기까지 그 누구보다 마음고생을 하셨을 팀장님에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너. 컵에 맺힌 물기를 닦아내면서 네 마음속의 불안함까지 닦아보려 애썼던 거 알아.

 

그때 넌, 사회에서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싶었거든. 그 마음이 욕심이라면, 적어도 이곳에서 네 존재가 누군가에게 무거운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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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팀에서 네가 맡은 일은 방대한 데이터들을 한 파일 안에 정리하는 작업이었어. 평생을 문과생으로 살아온 네가 처음 보는 낯선 설계도면들을 해석하고, 그 결괏값을 파일 안에 하나 하나 채워가면서 그때 넌 무슨 생각을 했어?

 

지금 이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될까,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혹시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너 스스로가 날려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뭐 이런 생각들?

 

그 질문들이 너를 덮쳐올 때마다 네가 수도 없이 되뇌던 말을 다시금 꺼내어 봐. 모든 일에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고, 지나고 보면 점에 불과한 시간에 괴로워하지 말자고. 몰론 그 당시 너는, 이 말들 뒤에 "....는 개뿔!" 을 더 크게 읊조리긴 했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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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21년 8월의 네가 춘천에서 보내온 엽서가 도착했어.

 

팀장님과 함께 너희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출장차 이곳에 들렸다고, 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다가 느린 우체통을 발견하곤 이 엽서를 작성하고 있다면서 적어 내려간 네 글씨 안에는 20년도의 힘듦이 보이지 않더라.

 

소현아,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래. 사실 지금도 난, 과거의 네가 겪은 힘듦과 괴로움, 걱정을 네가 적어둔 기록들을 통해 겨우 되새겨. 참 이상하지, 그땐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고 혼자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며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으면서.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는 게 말야.

 

지금 넌 무슨 일로 힘들어 하고 있니?

 

단 하나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이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는 거야.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이것밖에는 안 되지만, 이게 너에게 확실한 위로로 닿을 거라는 걸 잘 알아.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너에게 남긴 기록이니까.

 

그리고 네가 이 위로를 믿음으로 삼아, 그 어떠한 일에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서 있을 거라는 것도.

 

 

추신.

22년의 나는 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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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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