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싸의 기준은 니들이 만든 거니까, 책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글 입력 2022.08.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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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트라는 용어가 있다. 미술사를 두고 보았을 때, 흔히 주류라고 불리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말하는 용어로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창작한 작품들을 일컫는다.

 

아마 일반인이라면, 다시 말해서 예술사나 미술사와 관련된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아웃사이더 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전시회들은 대개 잘 알려진, 주류 예술가들의 작품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시를 위해 작품을 해외에서 빌려와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지 타산의 관점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 작가를 선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름 전시회 경험이 풍부하다고 자신하는 나에게도 책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속 작품들은 생경했다.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들이 더 많았고 익숙한 그림체보다 처음 보는 그림체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책의 저자인 미술 에세이스트 이소영은 아웃사이더 아트를 오래도록 좋아하고 아껴왔다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힘이 들 때, 위로가 되어준 작품들이라 말하며 작품, 그리고 작가에 얽힌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었다.

 

그중 여기, 인상적이었던 두 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청소부, 세상을 창조하다: 헨리 다거(1892~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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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청소부였던 헨리 다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청소부로 살다 쓸쓸히 삶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쓸쓸하다는 평은 세간의 평가에 불과하다. 진정 그가 쓸쓸한 삶을 살았는가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주인 네이선 러너를 통해, 헨리 다거의 작품은 비로소 세상 밖으로 꺼내지게 되었다. 그의 사후, 그의 짐을 대신 정리하기 위해 들어선 집에서 발견된 수많은 작품들. 사진작가였던 네이선 러너는 이 역사적인 유물들을 보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은방을 가득 채운 글과 그림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 없던 헨리 다거였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창작을 이어갔던 그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헨리 다거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 즉, 소설에도 재능을 보인 작가였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가 그림뿐만 아니라 글에도 창작의 불씨를 태우고 있었다는 점이 나에겐 어쩐지 슬프게 다가와서, 더욱 각인이 되었던 것 같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도 예술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던 헨리 다거. 그가 집필한 소설 <비현실의 왕국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긴 판타지 소설이라고 한다. 어디에서 그런 방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일상은 결코 아니었을 테고, 부수적인 작품을 감상하거나 소비하기에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이 그 자신의 상상에 근거하지 않았을까? 모든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겠다 위협하는 성인 남성에 맞서 싸우는 용맹한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 존재했을 미지의 세상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나쁜 그림: 카임 수틴(1893[1894]~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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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좋은 그림, 나쁜 그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나쁜 그림이라는 용어가 실제 존재한다고 하니 흥미로울 따름이다. 나쁜 그림의 뜻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훌륭하지 못하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한다. 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마샤 터커가 1970년대에 만든 용어인데, 개인적으로 아웃사이더 아트와 용도가 비슷한 용어라는 생각이 든다.

 

카임 수틴은 아름다운 것을 그리지 않았다. 화가라면 응당 모델로 삼을만한 대상들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들만이 그의 모델이 될 수 있었다. 화가의 꿈을 품고 파리로 떠나왔지만, 그를 반기는 이는 없었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던 그는 힘들게 번 돈으로 작업실을 마련해, 정물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때 그렸던 것이 바로 동물의 시체. 피 흘리는 고깃덩어리와 동물의 내장 등을 화폭에 담아낸 그의 그림은 베이컨의 그것과 유사하면서도, 괴기스러움은 덜하다. 오히려 역동적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왜곡을 많이 사용한 카임 수틴의 그림은 꿈틀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는 왜 좋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이 기피하는 대상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카임 수틴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이 느낀 바를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저 그가 보고 접할 수 있는 것이 고깃덩어리였던 것이고 그는 그것을 성실히 그려냈을 뿐이다.

 

*

 

책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의 책장을 덮으며 아웃사이더 아트를 향한 짝사랑을 고백하는 저자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혹 아웃사이더라는 용어가 감상에 편견을 자아내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는 저자의 진심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있는 그대로의 작품과 작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모습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책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서 배운 저자의 태도를 앞으로 나의 감상에도 적용해 보려 한다.

 

작품을 만나는 순간의 머리와 가슴의 순서를 바꿔보려 한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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