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오래, 천천히, 멀리 가겠다는 다짐 -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 후기

글 입력 2022.08.2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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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책을 본 다음에 누군가 어땠냐고 물으면 ‘좋았다, 나빴다’로 대답하는 사람인지라 무언가에 대한 후기를 쓰기가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개인적인 글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글을 자주 쓰다 보니 날짜와 시간, 장소부터 밝히는 게 손에 익는다. 익숙한 방식으로 시작해 볼까.

 

지난 8월 14일 일요일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 신촌의 파티룸 ‘공존’에서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글쓰기라는 공통분모로 피어나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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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모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좌장 중심의 그룹 담화로 시작했다. 나를 나타내는 키워드, 최근 관심사, 나를 대표하는 글 등 사전에 모임 참여를 신청하며 써낸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한 달 전에도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기에 그 사이에 뭐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싶었지만, 막상 이번 모임을 위해 빈칸을 채우다 보니 그때와는 전혀 다른 내용들로 채워져서 스스로도 놀랐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날 줄은 몰랐다.


한 달 전에 오프라인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기에 아는 얼굴들이 있었고, 덕분에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대화에 임했다. 아트인사이트 모임에 갈 때마다 느낀다. 다들 아트인사이트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고민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매번 어떻게든 써내고는 있지만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내 글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 고민이다. 각자 써낸 관심사나 키워드에 대해 듣는 것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공통된 고민을 이야기하며 대화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우리는 글을 쓰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고, 그렇게 쓴 글은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까지 닿는다. 하지만 그걸 써내는 동안은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만 한다. 글을 쓰는 시간 자체는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은 그 고독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내가 평소 즐겨 읽는 글을 인공지능이 아니라 나처럼 말하고 숨 쉬는 사람이 썼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고민이 내가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위안을 얻었다.

 

글로만 만나던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 글을 쓰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귀했다. 우리가 당장 절절한 친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오래 만나온 친구에게는 하지 않는 이야기를 오히려 이 자리에서 털어놓게 되기도 했다. 그런 이상한 유대감이 싹텄다.


조별 담화로 휴일 아침 굳어 있던 입을 풀었다면 다음은 자기소개 차례이다. 어느 곳을 가나 빠지지 않는 게 자기소개지만, 아트인사이트 모임의 독특한 점이 있다면 모두가 이 플랫폼에서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자신이 글 쓰는 분야를 언급하며 소개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나 학교, 전공 등으로만 소개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잠깐 글을 쉬고 있다며 멋쩍게 말하는 사람도,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했다며 자신의 글을 소개하는 사람도 있었다.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2분씩만 해도 40분이 넘는데, 이때 딴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자기소개가 끝나면 바로 익명지정질문 작성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질문은 첫 글자를 쓰는 게 어렵지, 자기소개를 들은 데다가 앞서 말한 간단한 정보가 모두에게 사전 공유된 상태이므로 질문은 금세 두 개, 세 개가 되기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중에 정해진 시간에 자기소개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과 답을 함께 말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내가 질문을 던진 사람이 어떤 대답을 하는지 듣는 재미가 있었다.


익명 질문을 마치고 나서는 주제별 조별담화가 시작되었다. 도서, 공연, 전시, 영화로 조를 나누고 각자 원하는 조로 자리를 이동해 또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비슷한 관심사로 묶이는 조별담화는 앞선 그룹 담화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대화에 불이 붙었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최근에 본 작품을 이야기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나는 도서 테이블에 있었다. 두루두루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테이블에 너무 사람이 몰리는 걸 보면서 조금 소규모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우리 조에는 나까지 세 명이 앉게 되어서 오붓하게 대화하며 독서 취향을 넓힐 수 있었다.

 

 

 

작가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침잠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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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은 지금까지의 오프라인 모임과는 달리 강연이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다양한 분야를 거치며 치열하게 살아온 브이알북의 정영선 대표님이 연사로 나섰다. 강연은 지금까지 대표님이 걸어온 길과 그 길을 통해 배운 점, 대표님의 철학이 중심이 되었다.


누구의 삶이든 성공과 실패, 기쁨과 좌절처럼 상반된 요소가 공존하겠지만, 어느 시기도 쉽게 지나오지 않은 대표님의 삶에는 그러한 상반된 요소가 좀 더 뚜렷하게 돌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삶을 사랑하며 삶에 열정을 바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해진 목차 없이 물처럼 흐르는 강연을 들으며 이 울퉁불퉁한 삶의 모양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읽어낼 수 있었다. 바로, 예술은 결코 한 사람의 삶에 앞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대표님이 드라마 작가로 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드라마의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즉 ‘영혼 있는’ PPL을 선보인 끝에 해당 기업 담당자가 울며 감사 전화를 했던 경험을 들려주셨다. 누군가는 그러한 요청 자체에 작가로서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쓴 대본으로 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대표님의 말이 울림을 남겼다.


이후 들려준 일화들도 이 PPL 일화와 궤를 같이한다. 예술은 소수가 향유하는 고귀한 무언가가 아니다. 예술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밀착해 있어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제 예술을 위한 예술, 삶을 파괴하는 예술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대표님은 강조했다.

 

내멋대로 구체적으로 해석하자면, ‘리얼함’을 살린다며 배우와의 협의 없이 노출 장면을 촬영하던 시대, 윤리와 법이 정해둔 선을 넘나드는 것을 곧 '예술적인 것'과 동일시하던 시대, 대중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의 구분이 선명하여 둘 사이를 넘나들 수 없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제 사람들은 예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중요시하며, 모르는 예술을 아는 척하기보다 자신의 삶이 투영되는 예술에 반응한다.


정영선 대표님은 홀로 독방에서 글 쓰는 삶을 경계한다고 말했다. 듣지 않고 보지 않는 자는 자신의 것을 만들 수 없다. 오늘날의 예술가는 누구보다 사람들 틈에 섞여 살며 모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 그렇게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 시점에는 침잠하여 자신의 것을 길어 올릴 줄 아는 사람이다. 대표님은 겉보기에는 비슷한 침잠과 익사의 차이점이 자발성에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익사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침잠하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한 예술’을 지향하는 대표님은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챙길 것, 기도 또는 묵상을 매일 할 것, 고전을 읽을 것. 이렇게 세 가지를 권했다. 뛰어난 무언가를 써내기보다 시작한 것을 마무리 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앞서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았던 만큼,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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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참여하기 전, 일요일 하루를 다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어떤 분들일지 궁금했다. 사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익숙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는 건 내게는 에너지 소비가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힘들었고, 다녀온 다음에는 진이 다 빠졌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면 이만큼 생각이 확장될 기회는 놓쳤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매번 어떤 어려움을 견뎌내야만 그다음이 있다는 것이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별다른 꼼수가 없다.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어려움 속을 헤쳐나가는 일을 앞으로도 수없이 해야만 한다. 날달걀을 양손에 쥐고 뛰어가는 모양새 같다. 빨리 뛰다 보면 손에 힘이 들어가 계란이 깨지고, 계란에 신경을 쓰면 발걸음이 느려진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걸작 하나를 남기고 요절하는 천재는 지난 시대의 이미지다. 평범한 우리는 웬만해서는 요절하지 않고 매일매일 살아간다. 하루, 1년은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인생 전체는 생각보다 길다. 문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서른이 되어 청춘과 이별하는 슬픔과 아쉬움을 담은 이 노래의 제목을 요즘은 ‘마흔 즈음에’ 또는 ‘쉰 즈음에’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이제 사람들이 옛날보다 젊게 살며,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천천히, 꾸준히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 먼 곳에 닿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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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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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xxzy
    • '매번 어떤 어려움을 견뎌내야만 그다음이 있다는 것이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라는 말이
      참 와닿아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네요.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지 벌써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이따금 생각나서 관련 글을 읽어보고 있어요. ㅎㅎ 도서 테이블에서 함께 대화 나누게 되어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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