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때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들

시간의 흐름이 형태를 만들어냈다
글 입력 2022.08.18 14: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crack.jpg

 

 

최근에 나를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과거의 365일을 1년으로 묶거나 수 천 일의 시간을 몇 년이라는 한 자리 숫자로 압축한다. 그렇게 보면 과거의 특징이 한 눈에 보인다. 그때는 몰랐던, 시간이 지나고서야 형태를 만드는 것들.


그 무렵의 나도 대충을 알고 있었지만 멀찌감치 떨어져보니 나는 정말로 무기력한 사람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다.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어요.'처럼 막연한 바람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뭔가가 갖고 싶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포기했다.

 

욕심은 있었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하지 않는 게 제일 쉬운 일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글 쓰는 걸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하지만 어디 나가서 상 받을 정도는 아니고, 학교 내에서 잘 쓴다는 이야기를 이따금 들을 정도의 아주 약간의 재능이었다. 글을 진지하게 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건 일찌감치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 같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글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글이란 보다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허락된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동시에 한계를 느꼈는데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미래가 될 수 없으면 취미로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한심한 자기합리화 같지만 나는 여전히 소소하게나마 글을 쓰고 있고 글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다. 도전정신을 가지고 한계 돌파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더라면 영영 글을 접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니 절망이 피해가더라, 무기력했던 과거가 나에게 전했다.

 

*


나의 학창시절과 대학시절은 대체로 학교-집-학교-집으로 이루어졌다. 성실한 학생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체력이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랬다.

 

집에서 대학교까지 멀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아리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중간에 전과를 했고, 과 생활을 잘 안하다보니 주변과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나를 걱정하는 교수님도 있었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게 대학생인지라 주변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나는 부모님이 장학금을 받으면 용돈을 준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용돈을 선택했다. 물론 시험기간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공부하고 있나 울었지만, 어찌되었든 몸과 마음이 편하고 욕구를 죽이는 쪽을 선택했다.

 

용돈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아끼면 살만했고 대단한 걸 손에 넣지 못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또한 그시기에 나는 자발적 가난(혹은 자발적 소박함)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소유보다 절제가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그래도 행동반경이 좁은데다 취미도 관심사도 밖으로 연결되는 일 없는 전형적인 인도어파. 거기에 돈까지 쓰지 않으니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던 건 당연한 수순.

 

그렇다. 나의 젊음의 초기는 무기력으로 점철되어있다.


지나고 보니 무기력이었다. 그 시기에는 그걸 몰랐다. 우울했고 힘들었고 쉽게 지쳤으니까 그게 무기력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경험했던 무기력은 아무런 의지도 의욕도 없어서 차라리 우울한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아지겠단 생각이 0퍼센트로 떨어지는 부정의 극점을 찍었던 감정이라 그 정도가 아니면 일상에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두웠고 주변에서 그런 나를 걱정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본 나는 그럭저럭이었는데 남이 보는 나는 그럭저럭에 한참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을 테니까. 남의 걱정과 격려에 황송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럴만 했다.


뒤늦게 알게 되어서 후회한다거나 아쉽다는 감정은 없다.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있더라도 나를 정신차리게 하겠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삶의 흐름이 그 방향이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에게 머무르고 있는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 혹은 어떤 깨달음. 그때 그것이 물길의 방향이었든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연결될 무엇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8771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