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알못'이어도 그림들을 재밌게 즐기는 법 - 그림들

글 입력 2022.08.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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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취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식상하긴 해도 늘 '전시회 보러 가기'를 빼놓지 않고 말한다. 그렇다고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냐고 한다면 아쉽지만 전혀 아니다. 전공은 미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업계에서 일해 본 적도 없다. 그래도 나는 미술을 좋아한다. 직접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것은 좋다. 흥미로운 미술 전시가 열릴 때면 타고난 집순이 기질은 잠시 제쳐두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이유다.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림들을 둘러보며 고요하게 사유에 잠기는 것이 좋아 대부분 혼자 전시를 보러 가는 편이고 도슨트도 굳이 찾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를 더 많이 볼수록 어딘가 아쉬움이 남기 시작했다. 분명 그 화가의 그 작품이 참 좋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았고 어떤 점이 인상 깊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접하게 되는 그림과 예술가들은 점점 쌓여 가는데 그저 '어? 이 그림 어디서 봤는데...', '이 화가는 이런 점이 유명했었지?' 정도만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에 정석이 있겠느냐만은 기껏 다녀온 전시들이 이내 휴대폰 갤러리 속 사진 몇 장과 흐릿한 추억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어느 날은 마음먹고 도슨트 시간에 맞춰 미술관을 찾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했던 툴루즈 로트렉 전시였는데 입구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도슨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했다. 화가의 개인적인 인생사와 작품마다 얽힌 에피소드들을 함께 들으니 더욱 깊게 그림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떠올라 왈칵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느라 애쓰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요즘은 시간이 되면 도슨트를 들으려고 한다. 알고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의 차이가 분명 존재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가볍게 펼쳐 보는 도슨트
 
책 <그림들>은 미국 뉴욕의 현대 미술관, 일명 '모마 MoMA'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중 관람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 컬렉션 16편을 선정해 소개한다. 책의 저자 SUN 도슨트는 현지의 미술관 도슨트로 지금까지 무려 1,700여 차례나 그림 해설을 진행했다고 한다.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미알못들을 위한 책인 만큼 각 작품들에 대한 해설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끔 서술하고 있다. 언젠가 모마를 방문할 예비 관람객 또는 이미 다녀왔지만 아쉬움이 남는 이들 누구나 마치 현장에서 도슨트를 듣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16개의 컬렉션을 나누어 맨 첫 장에서는 해당 작품을 모마가 소장하게 된 히스토리로 문을 연다. 이후 작품이 탄생한 시대의 미술 사조 및 작가의 의도와 예술가의 인생사 등을 너무 어렵지 않고 가볍게 소개한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모마 미술관에 작품이 걸려 있는 전경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위해 세부화를 따로 실어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치 현장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따라 작품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계적 명화라는 타이틀 그 이상의 감동
 
<그림들>은 반 고흐, 모네,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등 이미 너무나 유명하고 국내에서도 자주 소개된 거장들의 작품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잘 알고 있고 자주 본 작품들임에도 나는 책을 통해 그것들을 새롭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서부터 봐 온 모네의 '수련' 연작은 특히나 새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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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4.2미터, 세로 2미터의 패널 3개를 연결해 가로 약 12.7미터의 초대형 작품이 모마의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은 기존에 내가 기억하던 '수련'의 느낌과 많이 달랐다. 게다가 살짝 굴곡진 형태로 전시되어 얼핏 한 폭의 아름다운 정원이 공간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또한, 이것은 실제로 모네가 미술관 측에 요구한 사항으로 관람객들이 마치 지베르니 정원에서 수련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의도했다는 사실 역시 매우 놀라웠다. 학창 시절, 나에게 모네는 “인상파의 창시자이며 '수련'이 대표작이다.”라는 식의 시험 공부를 위한 정보로만 기억되었는데 그가 이토록 자신의 작품에 진심 어린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앙리 마티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 마티스의 작품은 요즘 여느 감성 카페에 하나쯤은 꼭 있는 흔한 명화라는 인식이 있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그의 작품을 이전에 전시를 통해 직접 보기도 했지만 사실 명성만큼의 감흥을 느끼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마티스의 작품 '모자를 쓴 여인'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통해 그의 색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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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티스는 이 그림의 주인공인 사랑하는 여인을 봤을 때 “그녀가 어떤 색의 모자를 썼는지, 옷과 부채는 어떤 색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오직 흥분되고, 설레고, 사랑이 넘치는 '감정의 색'만 남아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 감정의 색이라니! 이때부터 마티스는 사물이 본래 가진 색과 보는 이가 느끼는 '감정의 색'을 분리한 최초의 화가가 된다.... -114p

이 부분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마티스에게 색이란 실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은 있지 않은가. 감정이 감각을 지배해 실제 내가 겪은 사실과 다르게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 말이다. 이를 마티스는 '색'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예술로 승화했던 것이다. 이제야 그의 작품이 왜 감동적인지 더욱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이외에도 책은 샤갈의 작품이 왜 그토록 사랑스러운지,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는 왜 눈물을 흘리게 되는지 등 명화라는 식상한 타이틀을 넘어 누구나 쉽게 그러나 깊이 있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니 당장이라도 여권을 챙겨 뉴욕으로 향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물론 현생이 발목을 잡아 당분간은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간접 경험으로나마 모마 미술관이 조금은 친숙해졌으니 나 같은 미알못도 충분히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뉴욕을 가게 되는 날이 온다면 잊지 않고 <그림들>을 챙겨 모마를 방문해야겠다.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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