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영화]

어리석음에 대한 사랑
글 입력 2022.08.1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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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엊그제 밤엔 한참을 뒤척이다 넷플릭스 창을 배회했다. 그리고 평소라면 보지도 않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보게 됐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끝으로, 이 장르엔 별 관심이 없던 나인데, 그날은 유독 새로운 영상이 보고파졌다.


영화는 분명 신선하지만 기괴했다. 술을 삼키는 장면에서는 목구멍이 갑작스럽게 부어올랐다가 내려간다든지,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길을 광각렌즈처럼 보여준다든지 말이다. 초반엔 캐릭터들의 성격이나 여성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안 가서, 보다가 잠이 싹 달아나 버렸다.


빨간 원피스에 사과 머리핀을 꽂은 모습의 앳된 주인공은 여기저기 배회하고, 일행과 함께 모르는 모임에 참석하면서 피곤하다시피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과의 최대의 우연을 만들어 관심을 얻으려는 한 남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뉘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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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30분이 지나서였을까. 그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음에 오히려 내가 지쳐 잠에 빠져버렸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혼란스럽고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이어져서 장황하다. 이상한 변명 같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호평에 대한 이유 중 하나는 어리석음에 대한 사랑. 청춘 같은 이야기 때문이다.

 

밤은 깊었고 사람들은 벌게진 얼굴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면서 들떠있다. 아침이 밝아오면 ‘어제 늦게까지 놀지 말 걸...’이라는 후회가 생길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다소 무리를 한다. 실수, 실패, 좌절, 어리석음까지 사랑하며 그 과정을 모두 아로새기는 그 시간들에 대한 사랑. 그런 과정에 청춘이라고 이름 붙이며 그들은 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누군가는 치기 어리다고 할지라도, 실패의 쓰라림까지 온전한 제 몫임을 알고 어떤 젊은이들은 걷고 또 걷는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그들의 말간 얼굴이나 만큼, 젊은이의 나아감엔 순수함과 희망, 사랑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 있다.


극 중 헌책방의 요괴는 책들은 다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작가가 모티브를 받은 작가, 그 작가에게 또 다른 영감을 준 작가.. 등 이런 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앨런 긴즈버그의 시를 읽고 패티 스미스의 책에서 다정한 그를 만나는 등의 책 속 우연은 친한 지인을 갑자기 만나는 것처럼 짜릿하다.

 

특히 여러 소설에서 존 레논의 모습이 묘사될 때는 모퉁이에서 인사하는 이처럼 ‘여기도 계셨군요!’라며 말을 건네고픈 느낌이 든다.


책과 책의 연결처럼,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방황했다고 생각했던 젊은 날 역시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가, 심지어 시대를 넘어 나의 머릿속에도 걸어 들어올 만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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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가 오롯이 담긴 제목은 몇 번을 곱씹어도 감탄하게 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밤은 짧아, 걸어 젊은이야.


방황하는 길목,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하는 날, 마법 같은 기괴함과 동시에 현실감을 선물했던 이 영화는 비틀대는 청년에게 꾸지람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겪었던 다사다난했던 과정 역시 단 하루였으니까.

 

즉 다른 길로 돌아가던 젊은 날이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루처럼 짧게 느껴질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더운 여름밤엔 시원한 음료 한잔을 삼키고, 훌훌 웃어버리고 씩씩하게 다시 걸어가보자.

 

그러면 어느새 선선한 가을밤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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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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