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구멍을 메우는 법 - Hole

아쉬움과 새로움 그 사이
글 입력 2022.08.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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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초대를 받고서는 바로 A에게 공연 정보를 알렸다. A는 따로 고민도 하지 않고 ‘결핍을 긍정한다고? 안 볼 수 없다’며 잔뜩 기대감을 드러냈다.

 

공연의 준비 자세를 묻는다면 딱히 공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지는 않는 편이라고 말한다. 자료가 감상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 고민인 결핍에 대해 완전한 타인인 공연자가 어떠한 시선을 선물할지가 궁금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동그랗게 모여앉은 사람들 앞에 흰옷을 입은 공연자 시네(shi-ne)가 서 있었다. 악기 연주로 시작된 첫 공연에 이어 곡들은 크게 구분되지 않은 형태로 쭉 이어졌다. 악기가 등장할 때도 있었고 영상이 등장할 때도 있었으며, 공연자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을 겪는다. 결핍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본 인간은 그 결핍을 채워야 비로소 자신이 완전해질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실제로 결핍을 채워보려고 발버둥 쳐봐야 그것의 존재감만 느끼게 될 뿐이다. 시네는 그 결핍을 긍정한다는 메시지를 여러 가지로 전달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악기는 피리다.

 

피리는 구멍에 숨을 불어넣는 악기다. 시네는 어떤 구멍을 막고 비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나는 악기인 피리를 결핍의 상징으로 선택했다. 피리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소리는 금방 떠나가지만 진동은 자잘하게 남아서 객석을 채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당부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제일 눈길을 끈 파트는 ‘다시’였다.


2020년 5월 28일. 예술에 대한 작가의 부끄러움을 담아 쓴 시를 음악으로 재구성했다. 처음에는 조각난 단어들이 떠돌았다. 유별난, 휘어진, 언제였을까, 부끄러워, 그만두지, 숨이 트인….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의 목소리가 겹치기 시작하더니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작가가 완성된 문장을 읊기 시작한다. 부끄럽지 않은 예술가이고픈 감정과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섞여 있는 부분이었다.


피리와 영상, 기획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공연에서 나는 시네가 말하고자 하는 결핍을 분명히 느꼈다. 하지만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결핍’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 본질에 대한 이해까지는 닿을 수 없다는 점이 근본적인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원예술이라는 형식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는 방식이 낯설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무대언어와 영상언어가 함께 등장하는 다원예술 공연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여러 가지 요소를 한 무대에 드러내는 예술인 다원예술. 이전에도 비슷한 형태의 공연을 본 적 있지만, 그때마다 여러 매체를 사용하는 만큼 관객이 더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는지, 각 매체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는지에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관객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시도와 복합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무대에 대해 ‘난해하다’고 쉽게 정의 내리는 부분도 물론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느끼는 낯섦일 수도 있다. 혹은 기획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대중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배제하게 됐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기획자의 기획 의도나 주제를 명확하게 찾지 못할 때 관객들이 퍼포먼스에서 길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시도가 예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키워드가 되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실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지만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메시지는 활력으로 다가왔다. 결핍을 우울하게만 그리지 않고, 이겨내야 할 대상인 것처럼도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피할 것이 아니라 안아보자. 그리고 다시 천천히 자연스럽게 차기를 기다리자.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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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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