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난 나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로 했다 - HOLE

텅 빈 공간, 그 무용한 것에 관하여
글 입력 2022.08.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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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e.

 

사전적 의미로는 구멍 혹은 구덩이. 이것이 동사로 쓰일 경우 '구멍을 내다', 또는 '공을 구멍에 넣다'.

 

사람에게 그 의미를 적용한다면 아마도 결핍이거나 실연. 더 깊게 들어가면 무언가 빠져버리거나 중요한 것이 결여된 마음 속 빈 구석.

 

결핍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반드시 채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마치 우리가 밥을 먹지 못하면 배고픈 게 당연하듯 결핍 역시 그러하다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결핍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다. 약점을 모두 들켜버린 사람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자신에게 그런 구멍이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내게 그렇게 큰 구멍이 있다고? 아냐. 난 항상 채워져있는 걸. 난 비어있지 않아.'

 

그들은 사람으로, 성취로, 행복으로, 쾌락으로, 돈으로, 자신의 텅 빈 공간을 채운다. 아니, 채우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듯,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결핍에 집중하며 구멍을 채우려고 애쓸수록,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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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E은 우리들 내면의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결핍에 대한 작품은 흔하게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바라보고 표현하며 풀어내는 방식은 예술가의 연출 의도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타날 것이다. HOLE은 그 중에서도 Shi-ne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방향을 택했다.

 

그가 남기는 흔적들은 고스란히 무대에 남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홀로 6파트로 나뉘어진 50분의 공연을 책임지는 모습은 비유하자면 피리를 부는 순백의 나그네 같다. 관객인 우리가 할 일은 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그의 여정을 읊는 것이다.


 

이번 공연 HOLE은 '극'의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내는 대신 음악과 영상, 목소리와 악기가 상징이 되어 얽히며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일반적인 콘서트나 영상을 활용한 공연과는 다른 형태로 영상이 무대 전반에 거쳐 음악과 함께 한 편의 영화로 묘사되고, 영상 속 배우와 무대 위의 연주자는 관계성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렇게 영상언어와 무대언어가 조응하는 연출을 통해 단순히 연주자가 주목을 받는 연주회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영상이기보다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는 자극으로 작용되었으면 합니다.

 

- 이번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수림아트랩 신작지원 2022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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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Improvisation of piri



그는 Intro에서 피리를 불며 등장한다. 허나, 피리를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피리에 있는 구멍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는 듯이 구멍을 통한 숨의 질감에 집중한다.

 

후- 후- 후-

 

피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피리의 구멍에 초점을 맞춘다. 피리의 본질, '구멍'난 악기가 내는 원초적인 소리를 듣는다. 공연장 내부에는 그가 만들어내는 일정한 선율이 사람들 사이로 고요히 스며든다.

 

후- 후- 후-

 

그렇게 몸에 들어온 일정한 한 음은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우리 몸의 결핍을 지나간다. 피리의 구멍이 숨이 지나가는 창구가 되듯, 우리 몸의 결핍은 피리로부터 나온 소리가 지나가는 통로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악기가 된다.

 

 

 

O


 

공연장 전체를 아우르는 피리의 소리가 저물고, 본격적으로 음악이 소생한다. 눈여겨 봐야 할 중요한 것은 영상이다. 영상에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영상 속의 사람은 결핍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하실의 텅빈 방 안에서 무언가를 응시한다. 그것은 방 안의 구멍이기도,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문이기도, 방 내부의 공기이기도 하다. 때때로 그는 자신을 바라보기도 한다. 아마 그것은, 외부와 연결된 내부의 자신이겠지.

 

그는 지하실들의 구멍을 통해 자신의 구멍을 본다. 그리고 구멍 안에 있는 또 다른 구멍을 본다. 구멍을 통해 구멍을 보고, 그 구멍을 통해 또 다른 구멍을 본다. 마침내 무언가에 굶주린 괴물을 찾는다. 그건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일종의 괴물이다. 그 괴물은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자신을 먹어버리고 만다.

 

결핍에 매몰된 인간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다 그렇게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디가 비어있는지, 내가 지금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그는 '채운다'는 행위만 반복한다. 종국에 구멍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는 자신을 갈아넣어 자신의 구멍을 채우는 역설을 행하며 결국은 끝없는 무한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맹목적인 추구, 무한히 확장하는 공허, 결국 모든 것이 쓸모없는 행위가 되어버리는 0(Zero).

 

 

 

암월(暗月)


 

Shi-ne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비추던 달빛을 묘사한다. 동시에 그는 연주를 멈추고 뒤를 돌아 화면을 바라본다. 그는 어떠한 연주도 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결핍의 가장 밑바닥, 육신과 마음이 가장 무력하고 고통이었던 시간이 담긴 그때 그 시절을 직시할 뿐이다. 영상은 여전히 지하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은 그의 깊은 심연을 가감없이 담아낸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한다.

 

무(無)의 상태가 되어버린 그는 자신의 결핍을 마주한다. 그 순간만큼은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영상 속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을 깎아 자신을 채우는 무한 궤도에서 그는 어두운 달빛을 마주한다.

 

우리 역시 Shi-ne의 행동을 따라 영상 속 누군가를 본다. 우린 그와 함께 자신의 결핍을 본다. 나의 결핍을 확인한다. 무엇이 있을까? 어떤 결핍이 내 깊은 마음 속에 숨어있을까? 내가 채우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결핍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까?


 

 

다시 / 일, 일, 일


 

결핍을 직시한다. 결핍을 채우려 하는 노력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제 아무리 결핍된 구멍을 막으려 해도 그건 또 다른 결핍을 만드는 허무한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결핍은 그 자체로 결핍이다. 구멍은 그대로 구멍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그렇기에 결핍을 인정한다. 내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결핍을 '굳이' 채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존재 자체를 긍정한다. 결핍은, 나의 일종이다. 이것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결핍을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여유로움을 즐기기로 한다. 여백의 미. 빈 것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나온 것이리라. 빈 것은 아름답다. 나의 아름다움은 빈 것에서 나온다. 텅 빈 것, 결핍된 것, 모자른 것, 부족한 것, 그런 것들이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이룬다.

 

구멍은 채우지 못해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비워두어 누군가를 품어낼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된다.


 

저는 불안을 자주 느끼는 편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예민한 감각 때문에 가만히 있을 때에도 끝없는 자극들을 받고 쉽게 피로해집니다. 결핍이라 하기엔 오히려 과잉되고 넘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제겐 결핍이 되어 때로는 공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미워하지 않고 받아들여 일상적인 활동을 잘해낼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핑크 다이아몬드는 다이아가 되는 과정에 불순물이 끼어서 만들어지지만 그 덕에 그 가치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저에게 결핍은 나를 괴롭게 하는 동시에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과장된 감각 덕에 어떤 환상이나 음악들이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 결핍을 잘 다스려주는 훈련은 앞으로도 필요하지만, 이것이 나에게만 있는 외로움이 아닌 내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 본인의 결핍은 무엇이고, 이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나요? / 수림아트랩 신작지원 2022 인터뷰 中

 

 

 

초-록


 

결핍을 긍정하는 순간, 나의 세계는 바뀐다.

 

채워야 할 것으로 인식되던 나의 구멍은, 그 존재 자체를 인정받음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또 다른 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자, 내가 나로부터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있는 그대로의 나다. 있는 그대로의 긍정, 존재 자체만으로의 긍정, 결여의 긍정. 그것이 구멍을 대하는 나의 예우다. 내가 안아주고 싶었던 또 다른 나의 존재, 텅 빈 공간의 모습을 한 나.

 

차디찬 겨울의 칼바람 속에서 모든 것이 꽁꽁 언 내가 간절히 찾아 헤매던, 가장 뜨거운 여름 아래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초록빛. 그렇게 마주한 여름의 초록은,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해준, 나의 얼어버린 공간을 녹여준 온화한 빛 그 자체이다.

 

 

HOLE을 통해 자신의 구멍을 외로운 싸움이 아닌, 누구나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바라보고, 서로를 더 사랑하고 바라볼 수 있는 통로로 여기길 기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완전함을 통해 서로를 마주하는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 같습니다.

 

- 본인의 결핍은 무엇이고, 이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나요? / 수림아트랩 신작지원 2022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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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긍정하는 기나긴 여정을 피리부는 순백의 나그네와 함께 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핍은 결국 우리와 함께 갈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허나, 그 사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은 너무 멀고 험한 길이다. 자신을 갈갈이 찢어내는 고통을 감내야 하며 정체모를 내 안의 어둡고 텅 빈 공간을 직접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과정에는 식별되지 않는 공포가 우리 앞길을 막고 있다.

 

한 줄기 빛도 내비치지 않는 지하실에서 끝없는 공허 속 무한한 식탐을 가진 내 안의 괴물을 마주해야 하는 길이고, 어두운 달빛에만 의지하여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허나 Shi-ne가 그러했듯, 우린 결국 긍정을 마주할 것이다. 나의 심연을 들여다볼 용기,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 그 안에 서식하는 괴물을 바라볼 용기, 그리고 그 괴물의 정체가 내 안의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결핍을 채우려는 나의 무모함에서부터 나온다. 결핍을 긍정하는 과정은, 필시 결핍을 채우려는 무용한 시도가 필요하다.

 

무용한 시도 끝에 얻은 결핍의 본질에 대한 직시는 결코 무용하지 않다. 먼 길을 돌아왔어도, 느린 걸음으로 세월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과정 속에 발견한 내 깊은 구멍에 대한 이해는 유용한 자기 긍정의 초석이 될 것이다.

 

결핍을 긍정하여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누군가는 그런 삶 가운데서도 내면을 단단히 빚어가고 발걸음에 묵묵한 힘을 더해간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 묵직한 걸음을 위해, 난 나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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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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