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 우리는 동물로서 말한다. [도서/문학]

이동시의 『절멸』, 인류세의 현실을 마주해야 할 때
글 입력 2022.08.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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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세의 지구


 

공식적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일컫는 지질학적 용어는 홀로세이다.

 

홀로세는 인류가 자연과 조화로운 완전한 시대 즉, 지구가 탄생한 이래 아주 특별하고 유일한 시대이자 지금의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바로 지금 이 시대이며, 홀로세의 지구는 인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행성이다.

 

특히 인간 문명의 탄생은 홀로세의 온화한 기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세에서도 건조한 지역은 문명이 약화되거나 소멸되었지만, 기후가 안정적인 지역에는 특히나 이로운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고 안정적이었던 기원전 400년부터 서기 200년까지의 시기에 번성한 왕국이 바로 로마와 한나라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4대 고대 문명 또한 모두 큰 강 하구 주변의 비옥한 퇴적층에서 탄생했다.

 

지금까지 인간이 이뤄온 모든 번영과 발전의 역사가 전부 기후의 덕은 아니겠지만, 인간이 분명히 그 덕을 보며 살아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좋은 기후를 만난 덕분에 문명을 이루고,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번영시킨 셈이다.

 

 

 

기후변화와 홀로세의 위기


 

지구의 역사에서 기후는 늘 변해왔으며 지금도 변하고 있다. 지구의 기후가 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는 지구가 아닌 인간이다.

 

기후 변화는 기후 변동과 다르다. 기후 변동은 기후 평균값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자연적인 움직임을 뜻하며 주기적 혹은 간헐적으로 일어난다. 이에 반해 기후 변화는 기후 변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상태를 말하는데,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인간이 일으킨 변화로 간주한다지구의 역사상 한 개체가 지구 환경에 이렇게까지 유의미한 변화를 초래한 사례는 없었다.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만 보아도 그렇다. 가장 최근 발표된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420ppm으로, 지난 80만 년과 비교해 보아도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례 없는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20226월 기준).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바다와 육지에 흡수되고 대기에 남는 이산화탄소는 2% 미만인데다, 기후계의 반응 시간은 주로 열대와 아열대 해양에서 표층열이 바람으로 섞이는 층까지 퍼지는 시간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아직 기온 상승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지금 우리가 겪는 온난화 현상이 수십 년 전 온실가스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실이다. 인류는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만큼의 조건에서 생존해 본 경험이 없다.

 

우리가 아직도 인류에게 안성맞춤이었던 홀로세의 지구에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류세의 현실을 말하다.


 

‘인류세(Anthropocene)’란 인간이 지구 환경에 유의미한 변화를 초래한 시기를 의미한다. 그 시점이 언제부터인지는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질학적 개념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로 ‘인류세’라는 용어는 지구과학,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심도 깊게 회자되고 있다.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는 기후, 동물, 생태계 이슈를 다루는 창작 집단으로, 이러한 인류세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죽음과 외면과 이기심에 대해 강력하게 말한다.

 

 

절멸 일러스트 43.jpg

 

 

이들이 2021년 7월 15일 발행한 총서『절멸』은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에는 작가들이 동물의 입장이 되어 쓴 시를, 2부는 시인소설가시민들이 쓰레기와 동물과 시를 주제로 창작한 작품들을, 3부에는 동물권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동물주의자 선언과 동물당의 소개 및 강령을 실었다.

 

이동시는 우리에게는 기후 위기를 헤쳐 나갈 픽션이 필요하기에인간은 여전히 동물에 관해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모르기에지구와 시의 생태계에 벌어진 일들이 다르지 않기에이야기와 동물과 시의 이름으로 책을 펴낸다고 밝혔다.

 

이동시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이름을 빌려 전하는 이야기는 다소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이들의 언어는 우리 함께 노력해 보자같은 어르고 달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실린 내용 또한 동물권 보호에 치중되어 있어 강력하게 탈육식을 권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과연 인간이 동물과 환경과 지구에 가한 해보다 더 공격적일까?


*

  

이미 지구는 거대한 가속을 맞고 있다.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힘을 능가했다는 말이다. 현재의 지구가 괜찮아 보이는 이유는 단지 지구가 인간이 가하는 압박을 스스로 완충하고 완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지구의 능력도 한계가 있다.

  

지구의 미래를 전망하는 유엔 산하의 IPPC나 로마 클럽의 보고서는 지금까지 거의 일치해왔다. 이대로라면 정말 절멸이 머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기후 변화와 멸종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 계속해서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도모할 방도가 없는지 궁리하고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모른 체한다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처럼 정말 인간은 미래를 예견하고 그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국가 차원에서조차 실패하고 미루는 기후, 환경, 생태계에 대한 대응이 과연 개인의 인식과 노력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동물권 보호, 생태계 보호, 기후 변화의 유보어떤 이유라도 좋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지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지구의 위기는 더 이상 후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것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우리의 생활 방식이 우리에게 득인지, 독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멸종의 소식이 매일 들리는 시대에 산다고 해서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 왜냐하면 지구 역사상 그 어느 때에도 이 정도였던 적은 없었으니까. 이것의 의미와 중요성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지 능력과 감각 기관의 한계와 무능 덕분이지 결코 사태의 심각성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자연스럽게 되지 않으면 의식적으로라도 되새겨야 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절멸』 서문 中

 

 

*참고 문헌: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11). 이동시, 『절멸』(워크룸프레스, 2021). 조천호, 『파란하늘 빨간지구』(동아시아, 2019).

 

*이동시의 총서1 『절멸』에 참여한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정혜윤, 김한민, 김산하, 이슬아, 정세랑, 김탁환, 홍은전, 유계영, 요조, 이라영, 정다연, 단지앙, 최용석, 초식마녀, 양다솔, 강하라, 심채윤, 현희진, 이내, 김하나, 이수현, 남형도, 서민, 김도희, 김보영, 김남시, 이지연, 오은, 유경근, 서효인, 유희경, 김경환, 김연수, 김숨, 손아람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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