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에는 미술을 실험할 공간이 필요하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8.1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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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험적인 문화예술 공간을 찾아가는 재미가 생겼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곳.

 

음악 애플리케이션에서 하트 수가 300개 이하인 음악을 골라 듣고, 대중들이 즐겨 찾지 않는 독립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 의류를 찾아 입으려는 심리와 비슷하다. 일종의 ‘홍대병’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공간을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홍대병’에 반쯤 걸쳐있다고 볼 수도 있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친구들과 부산 아트 트립을 떠났다.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 등 큰 규모의 미술관을 방문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가 택한 곳은 다름 아닌 소규모의 공간이었다. 진득하게 관람해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법한 규모의 갤러리를 방문하기 위해 부산의 엄청난 언덕을 오르고, 버스에서 멀미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우리가 방문한 공간 중 한 곳을 소개한다. 바로 ‘오픈스페이스 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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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막’


 

‘열, 막’은 두 작가가 풍경을 표현하는 방법을 이분법적인 구도로 설명한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양 벽에서 서로의 온도를 내뿜는다. 파란색 작품 앞에 서 있으면 공간의 온도가 5도는 내려간 것처럼 느껴지고, 빨간색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림에서 후끈함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실제로 조명의 색도 달리하였다. 빨간색 작품에는 따뜻한 느낌의 노란색 조명을, 파란색 작품에는 차가운 느낌의 백색 조명을 두었다. 색의 대립뿐만 아니라 조형적인 부분에서도 대조를 이룬다.

 

빨간색 작품에서는 불타오르고 소멸하는 듯한 질감이 느껴진다. 반면 파란색 작품에서는 일렁이는 파도와 심해로 가라앉는 듯한 고요함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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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류’ 현상을 아는가? 물 또는 공기의 흐름이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 흐르는 현상을 말한다. 더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일정한 순환과 혼합을 계속하는 현상이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서로 극명하게 다른 두 온도의 공기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현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대조적인 구도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등론적인 측면을 드러내기보다는, 극명한 차이를 중심으로 그 사이에 있는 경계 위의 움직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즉, 환류 효과처럼 계속해서 순환과 혼합을 이루는 ‘상호 작용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빨간색 그림과 파란색 그림에서는 각자의 온도를 지닌 공기가 영원히 재생산되는 것만 같다. 보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관람객 주변의 온도가 조절되는 듯한, 즉 공감각적이며 초월적인 감각을 끌어내는 경험을 선사한다.

 

 

 

‘오픈스페이스 배’라는 공간


 

오픈스페이스 배의 전시 공간은 1층과 4층으로 나뉜다. 1층의 전시를 관람 후 4층으로 이동하면 된다. 이 공간의 핵심은 바로 4층에 있다. 4층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거의 90도로 꺾인 듯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긴장한 상태로 허벅지에 한껏 힘을 주고 올라가면, 미로처럼 숨은 공간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화이트큐브였던 1층 전시와는 달리, 군데군데 뜯어진 흔적이 보이는 회색 벽이 배경을 이룬다. 조금 더 이동하면 옥상 정원이 보인다. 온통 초록색 나무와 야자수로 둘러싸인 곳에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작품을 운송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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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던 것은, 회색의 투박한 벽과 초록색 식물들이 작품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1층에서의 전시가 두 온도의 작품 간 대립을 보여주었다면, 4층에서 이어지는 전시는 각 작품이 뿜어내는 온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다양한 크기의 방에 각 온도의 작품을 넣어두고, 그 작품에 오롯이 빠질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그 어떤 유명한 갤러리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공간이다. 작은 공간에 큰 작품 하나만 두는 것, 부산의 모든 전시를 통틀어 가장 깊은 여운이 남고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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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스페이스 배가 실험적인 예술 공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 공간 자체의 특이한 구조뿐만 아니라, 주변의 상권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대체 왜 이런 곳에 갤러리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며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진짜로 그곳에 갤러리가 있었다.

 

도통 주택밖에 보이지 않는 이 골목에, 저 멀리 인쇄소가 모여있는 구역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갑자기 오픈스페이스 배가 등장한다. 뜬금없게 느껴졌던가? 처음에 그 골목 건너편에서 오픈스페이스 배를 바라보았을 때는 그렇게 느꼈다. 주변에 온통 오래된 인쇄소밖에 없으며, 동네 주민들이 많은 곳이고 관광객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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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잘 어우러졌던가? 완벽하게 그러하다.

 

골목의 구성원으로 잘 자리 잡은 이 건물은 마을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존재한다. 갤러리가 모여 있는 동네에서의 갤러리와는 완전 다른 유형의 문화예술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마을에도 중간중간 예술을 향유할 수 있고 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갤러리가 철물점이나 우체국처럼 어느 동네에든 있는 유형의 공간이길 바란다. 예술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섞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러한 미술의 역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듯한 오픈스페이스 배는 ‘미술을 실험하는 공간’, 즉 ‘미술의 역할을 실험하고 정의하는 공간’으로서 정의할 수 있겠다.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진행하는 김이주, 이주영 2인전 ‘열, 막’은 8월 26일까지 진행한다. 많은 갤러리가 휴관하는 월요일에도 운영하므로, 부산에 머문다면 잠시 시간 내어 꼭 가보길 추천한다.


전시 장소: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길 43

관람 시간: 11:00 - 18:00 (일요일 및 공휴일 휴관)


 

 

 

[장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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