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비안 마이어, 사진에 언어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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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통해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02.01~2009.04.21)를 알았다. <예술가의 일(2021, 조성준)>이었나? 작년에 읽었던 책이었고, 이 사진 봤는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비비안 마이어의 히스토리가 인상 깊어 금붕어 수준의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여태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물론 가장 큰 이유로 그녀가 가진 사연과 비비안을 세상 밖으로 꺼낸 열렬한 지지자들 덕분이었다. 비비안이 보모로서 40년간 거리에서 축적한 사진이 사후에 빛을 발하고, 철저히 관찰자로 살아온 미스테리한 그녀의 삶이 대중에 의해 파헤쳐지는 경위가 참 흥미로웠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매력으로 일반인의 흥미와 호기심을 지독히 자극해 열렬한 추종자로 만들었을까? 하지만 적극적인 팬들과 달리 나는 작가의 소극적 향유자로서 약간의 호감만 느끼고 있었다.그런데 요즈음 전시회든 책이든 갑자기 눈에 밟히는 ‘비비안 마이어’의 존재가 자꾸 나의 시선을 끌다 보니 적극적으로 향유해보고 싶더라.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이 그들이 작가를 대변하고 옹호하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소위 ‘영업’에 당해볼 생각이었다.
책은 사진과 출처를 포함해 500쪽에 달하는 양장본이다. 사진이 담겨있어 빳빳한 재질로 오래 두고 보기 좋고, 겉표지와 책 띠지를 벗기고 나면 불투명한 검은색 속표지 위에 고딕체로 VIVIAN MAIER라 적힌 디자인이 173cm의 뻣뻣한 비비안 마이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업 당하는 입장으로 일단 책의 디자인은 합격이었다. 먼저 책을 훑어보며 사진을 구경했다. 대부분 흑백 사진으로 비비안의 생애를 따라 시계 순열로 정리됐다. 종종 튀는 유색 사진 덕분에 20세기의 활달한 에너지도 느낄 수 있었고 전시회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8월 4일부터 그라운드 시소 성수점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도 약 3개월간 개최되는데, 20세기의 유럽과 미국을 담고 있어 대중에게 아주 인기가 좋을 것 같다. 책에 삽입된 사진 작품만 보아도 실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어린 시절 비비안이 샹소르에서 살 때, 어머니 마리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카메라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위상을 즐겼다. 그 같은 사실이 사진에 대한 초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르지만, 비비안은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과거를 빼앗긴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게 되는 것 같다.”
<비비안 마이어 중 85쪽>
현재를 남겨 과거를 채운
비비안은 보모로 일했고 퇴근 후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주변에 과거를 공유하지 않아 모두 비비안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녀에 대한 평도 극단적이었다. 주변인의 말에 의하면 가족에 관하여 비비안은 답변을 보통 거부하거나 화제를 돌렸다고 한다. 이 탓에 팬들이 그녀의 과거를 추적할 때 꽤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 조소(Marie Jaussaud, 1897~1975) 남긴 공식적인 허위 정보 같은 이유로 어려움은 계속 야기됐다.
그러나 미스테리한 비비안의 과거는 책의 저자인 앤 마크스를 포함한 모든 이의 의지를 불태웠는지, 저자는 15만 장이나 이르는 사진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받아 추적을 멈추지 않았고, 끝내 혼외자, 중혼, 방임, 약물 남용, 폭력, 정신 질환 등 부정적인 키워드로 얼룩진 그녀의 가족사와 과거를 최초로 밝힐 수 있었다. 나는 비비안이 과거를 숨긴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애초에 물어보지 않으니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스스로 감추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혼란스러워 불우한 환경이 보편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비비안의 유족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비비안의 외할머니인 외제니 조소(1881~1948)는 어린 나이에 마리를 가졌고, 마리의 부친인 니콜라스 바일(1878~1961)이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과 결혼을 거부하게 되자 마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사생아 취급받았다. 당연히 생계가 이어 나가기 어려웠던 외제니는 돈을 벌고자 마리를 조소 집안에 맡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외제니는 미국 상류계층의 요리사로서 일하였고 마리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채 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마리는 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어머니인 외제니를 만날 수 있었고 22살에 찰스 마이어 시니어(1892~1968)와 결혼, 그리고 칼 마이어(1920~1977)와 비비안 마이어(1926~2009)가 태어났다.
상처를 극복한 외제니에 비해 마리는 그러지 못했다. 가족 이슈는 마리를 평생 따라다녔고, 결혼은 실패했으며 자식에게 고통만 안겨주었다. 찰스와 마리는 모두 본인의 생계조차 책임질 수 없었으며, 특히 마리는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의지도 없었다. 편집적인 정신병 증세도 있어 공식 문서에 가족 사항을 누락하거나 본인의 이름을 마리 바일 혹은 마리 조소, 마리 마이어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재하기도 했다. 외제니가 성실히 모아온 돈이 없었다면 마리는 금방 길거리에 나앉아있었을 테다. 즉, 어린 마이어 남매를 돌볼 수 있는 건 친가와 외가의 할머니들뿐이었다. 비비안은 외제니가 별세 후, 그녀가 남긴 프랑스의 땅을 모두 처분하며 사진작가로서 기술을 갖추고자 사진 현상과 촬영법 등을 배웠고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비비안이 찍었던 15만 장의 사진 중 어머니인 마리의 사진은 단 3장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다. 나는 독자들이 비비안의 이야기 속에서, 작품 속에서 그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이 전기가 끝날 때쯤이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이며,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관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비비안 마이어 중 25쪽>
사진의 거장 조엘 마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는 “남녀를 불문하고 거리의 사진작가는 길가에 나가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걸 편안하게 생각해야한다는 점에서 사교적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독과 흥미롭게 결합된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관찰하고 포착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뒤로 물러서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것이 사진과 함께하기로 한 사람이 감수해야 할 이중성이지요.”라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행동과 반응을 포착하려고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피사체를 따라다녔던 비비안에게 딱 들어맞는 설명이다.
<비비안 마이어 중 135쪽>
기록이 주는 유일한 안정
비비안은 사진작가로서 사업 의지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사진엽서에 집중하며 유럽에 있는 아메데 시몽에게 현상을 의뢰할 정도로 완벽함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그러나 비비안은 언제부턴가 필름을 현상없이 창고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충분히 사진작가로 도전해 불법한데, 비비안은 평생 보모로 유랑하듯 사진을 찍었다. 보모라는 직업은 그저 생계를 위해 유지했을 뿐이고, 당시 귀했을 컬러 필름도 몇 통을 소비할 만큼 열정을 가지고 비비안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노력한 것은 사진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직업적으로 사진기사의 길을 걷지도 않았다. 나는 취미 이상으로 사진을 찍었던 비비안에게 대체 사진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앞서 말했듯이 비비안의 과거는 우울하다. 과거를 없던 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비비안에게도 흔적이 남아 일종의 편집증인 ‘저장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사진을 찍어 나누어도 이것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지, 남의 요청으로 주지 않았다. 즉 사진은 비비안에게 다른 무언가로 작용했던 셈이다. 실제 11년간 함께한 겐 서버 그 가족과 헤어진 이후, 저장장애가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아 비비안에게 사진은 단순히 기록물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결핍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요소로 여겨진다. 행복하게 시간을 보낸 겐 서버 그 가족과의 사진 속에서 비비안은 다른 사진에 비해 많은 표정을 지었고 보모 일을 그만두게 된 것도 단순히 형제가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비비안에게 사진은 자연스러운 결별 이후 채워지지 않은 상실감을 대체하는 유일한 존재가 됐다.
그때는 강인한 비비안이 한없이 약해졌을 시기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남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한 채 무턱대고 촬영하는 위압적인 면도 있는가 한편,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자 은둔자로 살아가는 이중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인 그녀는 사진 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시선을 담을 수 있었고 본인의 취향, 생각, 유머를 표현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표출하고 사람에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사진은 임대한 창고 비용도 지불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안에 쌓여만 갔다. 이 때문에 비비안의 고용주들은 자신의 보모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으며, 그녀 또한 함구하니 쌓여가는 오해를 풀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저자가 비비안의 주변인을 낱낱이 조사할 때 일관된 진술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다. 유일하게 그녀에 대해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진’ 딱 한 가지였다. 저자는 비비안에게 사진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며 독자인 나 또한 공감하는 대목이다.
비비안에게 사진은 믿음과 감정,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표현하는 배출구로 기능했고, 그 결과 보편적인 진리와 폭 넓은 정서를 반영하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낳을 수 있었다. 그녀의 사진 언어는 무수히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주제의 일부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영감 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 중 275쪽>
비비안의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인간이 처한 보편적인 조건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로 비비안을 설명하곤 한다. 어디에서 사진을 찍든, 적어도 비비안의 촬영분 일부는 창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비비안 마이어 중 142쪽>
작가의 언어가 담긴 사진
앞 문단에서 저자는 비비안의 사진을 ‘사진 언어’라 명명한다. 나 또한 비비안의 사진에 대하여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책은 그녀의 주변인과 에피소드, 작품 등이 실려있다. 셀럽이나 연예인을 담았다가 정치인으로 옮겨가는 시기와 2차 세계대전과 각종 격동의 시절을 보낸 비비안이 남긴 세간의 대소사가 그녀가 무엇에 집중했는지, 그리고 현상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졌는지 사진과 해설을 보며 느낄 수 있다. 비비안은 사진을 통해 시대를 진득하게 관찰하고 견해를 시각적으로 충분히 전달한다. 그것이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똑같은 풍경일지라도 구도와 조명에 따라 비비안의 식으로 담긴 사진은 항상 말하는 느낌을 준다. 그것이 사진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15만 장이라는 8톤의 규모로 다가오니 말수가 적었다던 비비안은 실제로 말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저 비비안은 단지 말로 소통하기보단 사진을 수단으로 택했던 것뿐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가끔 그런 경험이 있다. 분명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실제 말로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문장을 구성하지 못하고 그림으로 그려서야 그 기분을 해소한다던가, 혹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대체할 법한 글이나 영상, 이미지를 찾아 대변하는 그러한 경험. 감히 같은 맥락이라 표현할 수 없겠지만, 사진을 언어 수단으로 활용했던 비비안도 이러한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비안은 1996년 이후, 더 이상 보모 일을 하지 않았다. 동시에 카메라도 손에서 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70세가 될 때까지 40년 동안 사진을 찍었는데, 2009년까지 남는 10년 동안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살았다고 한다. 이때도 수집욕 때문에 공간이 좁아 결국 겐스버그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쳥청한 에피소드도. 이후 비비안 마이어는 공원에서 볼법한 그런 평범한 프랑스 할머니로 남아 여전히 전형적인 비비안으로 하이랜드 파크에 있는 장기 요양 시설에서 건강 악화로 2009년에 생을 마감했다.
작가의 언어가 담긴 사진은 사후 창고 비용의 채무 불이행으로 경매를 통해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들어지고 이처럼 책도 나올 정도로 그녀에 대한 인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사진작가로 기록된 비비안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삶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한 흔적인 사진 규모 자체로 놀란 사람들이 신비로운 그녀의 매료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몇십 페이지가 안되는 한 챕터로 그녀를 접하고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보았던 사진을 아직도 기억하니 말이다. 이 책 또한 그 기억이 더듬어 읽게 됐다.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잔상처럼 남은 비비안이 가진 사진 언어의 힘은 세상과 연결하는 고리였기 때문에 그녀의 삶에 큰 존재였으며, 사진 자체가 그녀의 생존을 뜻하니, 작품의 무게에 이끌린 사람들이 무뚝뚝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라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매력에 감화되어 완독할 수 있었다.
유독 작가의 생각이 진득이 묻어나는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사진작가로 작품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떤 요소가 작품에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면 비비안 마이어를 읽어볼 것을 꼭 권장해본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사진만으로 쉬이 영업당하기 좋다.
[이서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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