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리고 낯선 - 바티망

일상
글 입력 2022.08.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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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망 전시 포스터.jpg

 

 

"눈이 보여주는 것은 잊고, 머리가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의 대표작 [바티망(Bâtiment)]이 오는 7월, 서울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서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프랑스어로 건물을 뜻하는 '바티망'은 매해 파리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예술 축제 '뉘 블랑쉬(Nuit Blanche)'를 위해 2004년 처음 제작된 대규모 설치 작품이다. 이후 18년간 바티망 시리즈로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도시를 투어하며 일 평균 4500명이 찾는 대중적인 인기를 이어왔다.

 

바티망은 고정된 하나의 형태가 아닌 각 도시의 고유한 건축물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이렇듯 도시의 친숙한 건물을 통해 관람객에게 현실적인 공감대를 높이는 동시에, 낯선 형태로 건물을 배치시킴으로써 관람객에게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바티망의 구조는 바닥에 실제 크기의 모형 파사드를 설치하고 그 앞에 45도로 기울인 대형 거울을 세운 형태로, 관람객이 작품에 올라서면 마치 건물 외벽에 매달린 듯한 모습이 거울에 반영된다.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포즈를 취하며 다른 관객과 함께 작품을 즐기면서,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바티망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캔버스를 관람객이 채워가는 형태로써 바티망은 참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바티망을 통해 관람객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꿈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바티망은 문화적 차이나 언어 장벽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전 세계인에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1973)는 수영장, 탈의실, 정원 등 주로 일상적인 공간을 주제로 거울이나 유리, 스크린 등 시각적 효과를 주는 장치를 활용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게 하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세계적인 아티스트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그는 1998~1999년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예술가 레지던스 코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뉴욕의 한 상업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현대미술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9년 휘트니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다수의 국제 비엔날레와 파리, 런던, 마드리드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전시회를 진행하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2001년에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영장(Swimming Pool)](1999)을 선보였다. 2019년에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66대의 모래 자동차를 이용해 21세기 교통 상황과 환경 문제를 묘사한 초대형 설치 작품 [중요함의 순서(Order of Importance)]가 가장 주목 받는 작품으로 선정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2년 첫 개인전 [Inexistence]를 시작으로 2014년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대척점의 항구], 2019년 [그림자를 드리우고] 展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미쓰잭슨이 주최하는 이번 [바티망] 서울 전시에서는 바티망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교실(Classroom, 2017)],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비행기(El Avión, 2011)],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등 일상적 소재를 매개로 신선한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만의 다양한 설치∙영상∙사진 작품들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의 지하철 (Global Express)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작품.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jpg

Global Express

 

 

해당 작품은 지하철 안의 창문과 의자들을 가져다 놓아, 일상의 현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하철 창문으로 보이는 뉴욕, 파리, 도쿄의 풍경들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작품으로 20분 전 지하철에 앉아 본 서울의 전경들이 오버랩되며 몇분 지나지 않은 내 기억에 대한 낯섦을 느낀 작품이다.

 

 

 

뿌리채 뽑힌 (Pulled by the Roots)


  

규모 때문에 전시에 들여올 수 없었던 작품들은 크지않은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일상 속 우리가 흔히 보고 사용하는 공간에 불어넣은 착시로 인한 약간의 혼란과 기분좋은 생경함 덕에 나는 익숙함에서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뿌리채 뽑힌(Pulled by the Roots).jpg

Pulled by the Roots

 

 

사진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환상적인 분위기의 영화 에 나온 풍선 집을 현실판으로 바꾸어 놓은 듯 보였다.

 

창밖을 보며 종종 멍 때리기를 즐겨 하는 나에게, 하루하루 다른 풍경을 보며 눈 뜰 수 있는 저런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지나간 작품이다.


 

 

교실 (Class Room)


 

다음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신기하고 뭉클했던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과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는 어둑한 방과 교실이라는 스산한(?) 장소 때문에 소름이 끼쳤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검은색 박스로 만들어진 교탁, 책상, 의자가 놓인 무지의 공간 그리고 반대쪽은 교실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교실(Class Room, 2017).jpg

Class Room

 

 

검정색 의자에 앉아 거울을 쳐다보면, 마치 실제 교실에서 앉아있는 것 같이 보여졌다.

 

대학생이 되어 딱딱하고 새로운 강의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듣게 되고 정겨운 분위기의 교실다운 교실에 다시한번 앉아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예전처럼 밝고 따스한 분위기의 교실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으로써 기분만이라도 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랜만에 있는 교실 방문이라 함께 간 친구와 추억에 깔깔 웃으며 꽤 오랜 시간 그 공간에 머물렀다.

 

 

 

잃어버린 정원 (Lost Garden)


 

마치 나 자신을 타인처럼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작품인, 잃어버린 정원.

 

100세 인생 동안 제 얼굴 한번 바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항상 미스터리하면서 조금은 서운한 점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jpg

Lost Garden

 

  

내가 있을 리 없는 저 반대편에 내가 서있는 모습을 보니 유체이탈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봐도 봐도 신기하고 낯선 모습에 한참이나 반대편에 있는 나를 봤던 작품이다.

 

 

 

마지막, 바티망


 

해당 전시의 하이라이트!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작품, 바티망.

 

바닥에 그려진 건축물 그리고 그 위에 자리한 기울어진 거울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이 작품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잠깐 동안 자신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바티망.jpg

 

 

다행히 나는 전시 오픈 시간에 맞추어 방문하여, 다른 관람객들의 눈이 거의 없었고 눈치 보지 않고 한바탕 잘 놀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광기가 가득한 제일 요상한 자세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일상?



글.jpg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거울이나 트롱프뢰유(trompe-l’oeil, 평면을 3차원 공간으로 보이게 하는 등 착시를 유도하는 눈속임 미술) 등의 장치를 통해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공간들을 지각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작가가 정교하게 설계한 ‘트릭’을 경험하고, 호기심을 느끼고, 논리적으로 원리를 탐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게 함으로써 일상적 공간을 낯설게 보게 한다.

 

이렇듯 관람객에게 지적 활동을 촉발하는 그의 작품들은 수영장, 탈의실, 엘리베이터, 계단 등 실제 일상의 맥락을 가져와 언어적, 문화적 장벽 없이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게 특징적이다.

 

전시 공간이 다소 협소하고 작품의 수도 적어 노들섬까지 먼 길 달려오는 것이 조금은 부담일 수 있겠지만 높은 밀도의 작품에 의문을 갖고 직접 참여하고  노들섬의 한적함까지 함께 느껴볼 수 있기에, 고요 속에서 광기를 꺼내보고 싶다면 방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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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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