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 잃은 ‘마음’을 돌아보는 일 - 연극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

‘나’의 우주를 부유하던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글 입력 2022.08.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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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 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너의 꿈은 때로 마지막 기대어 울 곳

가진 것 없는 너를 안아주는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꿈을 꾸었네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 김윤아, '꿈' 가사 中

 

 

꿈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동시에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스라이 먼 곳에 존재하는 꿈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초라함과 부족함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알 수 없이 그저 꿈을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가 서 있는 곳조차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을 마주하게 된다.

 

유진희 배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1인극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는, 이러한 꿈의 양면 사이에서 그럼에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니나’이자 ‘빛나’, ‘진희’이자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특히 ‘가능성’과 ‘미완성’, ‘정성’과 ‘적성’ 등 ‘10성’으로 나누어진 구성 안에 녹아든 생생한 이야기는, 막연한 바람이든 분명한 소망이든 ‘꿈’이라 부르는 것들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여러 번 다잡아봤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충분히 와 닿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삶과 겹쳐진다고 해서 진부하거나 뻔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연극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는 한 사람의 어쩌면 개인적이고 진솔한 이야기에서 시작했기에, 그것이 모두의 이야기로 가 닿는 지점이 오히려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 에피소드 제목

 

1. 혜성 : 갑자기 출연한 혜성, 갈매기의 장면 오마주

2. 정성 : 배우의 숙명 오디션

3. 가능성 : 배우의 일대기

4. 적성 : 배우가 적성이 아닌가? 생존을 위한 생업과 부업과의 사투

5. 아우성 : 길이 막혀버린 내면의 방으로의 초대

6. 상처투성 : 팬데믹으로 갈 길이 막힌 배우의 존재감

7. 감수성 : 외부 세계로 자각몽 (루시드 드림)

8. 탄성 : 자신을 탄식하고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기 (박제)

9. 대기만성 : 나만의 시상식 그리고 기억

10. 미완성 : 초심으로 돌아간 나만의 지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 잃은 ‘마음’을 돌아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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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의 주인공 ‘빛나’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속 ‘니나’처럼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빛나’는 무대 위보다는 무대 뒤의 크루로서 그 주변에 머무는 일이 더 많았고,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무대 밖의 다양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그럼에도 빛나는 1년에 한 작품, 작은 배역이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과 반복되는 실패는 빛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이 겹치면서, 빛나의 배우로서의 삶은 더욱 희미해지고 어려워진다. 진희는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언젠가 연기 생활의 ‘자양분’이 될 거라고 힘을 내면서 열심히 살아가다가도,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인물들의 ‘연극의 소재를 위한 것으로 점철된 삶’을 탄식하는 독백 대사를 내뱉기도 한다.  이러한 진희의 모습에, 아득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막연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계속 몸과 마음을 소진 시키는 모습 말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보상 받지 못한 힘듦과 불안을 그래도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증거로 여기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라도 ‘이만큼 했으니 됐다’거나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멈추고 나아가야 할 때를 명확히 알려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현실에서도 문화 예술 콘텐츠 속에서도, 희망만 가득 찬 성공보다는 현실적인 실패나 포기를 응원하게 된 것 같다. 이는 비단 나만이 실감한 변화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실제로 개인만의 힘으로 꿈을 이루거나 성공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구조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고 성공과 실패를 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부정적이라고 보진 않는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의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경쟁의 구조나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 그 안의 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상황을 포용하게 될 수 있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획일적인 기준으로 ‘성공’에 주목하고 구조에 대한 성찰 없이 경쟁을 찬양하는 것만큼이나, 구조를 지적하고 실패를 위로하는 데만 매몰되어 개개인의 마음과 상황을 간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나 역시 연극을 보며 ‘빛나’의 이야기에 몰입하여, 어느샌가 ‘결과와 상관없이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행여 포기하더라도 괜찮다’고 빛나의 ‘실패’와 ‘포기’를 응원하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태도의 빈 곳을 파고들 듯, 연극 속 ‘빛나’는 나의 예상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구조를 지적하고 실패를 위로하는 데 집중하다가 오히려 정작 정말 중요한, 당사자들의 ‘마음’을 간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끈기가 ‘오기’가 되지 않는 것도, 현실의 벽 앞에 멈추고 포기하는것이 ‘용기’가 될 수 있는 것도, 다른 누가 아닌 꿈을 꿔온 ‘당사자’가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돌아보고 결정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 속 ‘빛나’는 계속되는 좌절과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마음의 우주 아주 깊은 곳에서 빛나가 애써 숨겨왔던 본심과 생각들을 안고 있던 존재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한 대화 속에서 ‘빛나’는 꿈을 가졌던 처음의 마음과 함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은 지금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 보고,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기로 결정한다. 이는 뻔한 희망도 값싼 신파도 아닌, 스스로를 계속해서 돌아보고 내린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 연극 속 빛나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후, 계속해서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빛나’와 ‘진희’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진다.

 

‘미완성’이라는 에피소드로 끝을 맺는 연극은 무대 밖에서 배우 ‘진희’의 삶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고 또 멈춰서는 우리 개개인의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해나갈지 또 그 끝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 일지는 알 수 없겠지만, 꿈과 현실 사이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 자신의 마음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우리가 보내온 시간들을 충분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행여나 그 시간들이 지난한 실패의 과정일 뿐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 안에서 온전히 스스로를 존중하며 버티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전에도 앞으로도 꿈을 향했던 우리의 마음과 하루하루가 그저 소진된 채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반짝반짝하게 채워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니나’이자 ‘빛나’, ‘진희’이자 우리인 모두가 이렇게 채워진 스스로의 이야기를 서로의 앞에 풀어놓으며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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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 존 러스킨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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