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큐멘타 15는 완성된 답을 주지 않았다. [미술/전시]

그저 참여하기를 권할 뿐이다.
글 입력 2022.08.0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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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카셀 도큐멘타 15(documenta fifteen)에 다녀왔다.

 

도큐멘타는 5년에 한 번 독일의 지역인 카셀에서 열리는 큰 규모의 현대미술 전시회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며칠 머물고 싶었지만 비용과 일정상의 문제로 당일치기로 결정했다.

 

처음 가보는 도큐멘타이고 5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독일에 있는 동안 보는 마지막 도큐멘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감에 부풀었다. 기대감이 최고치에 달해서 당일에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출발했다.

 

 


예상과는 달랐던 전시


  

카셀에 도착해서 마주한 도큐멘타 15는 나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이런 큰 규모의 전시회라면 좋은 퀄리티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도큐멘타 15에서 받은 인상은 완성된 작품들을 나열해놓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관한 자료들을 아카이빙 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람객들을 계속해서 주제에 관한 논의의 과정에 참여시키려는 듯한 인상이었다.


많은 전시관 중에서 주요 전시관이라고 생각한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도큐멘타 할레(documenta Halle)와 그 외 두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다.

 

예를 들어 프리데리치아눔에서는 동양인, 흑인, 페미니즘을 주제로 다룬 장소가 있었는데 완성된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기보다는 주제에 대한 아카이빙을 전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큐멘타 할레는 그래도 비교적 아카이브보다는 작품의 모습을 띤 것들이 조금 더 있었다. 체험형 장소로는 관객들이 직접 보드를 탈 수 있는 곳이 있었고, 그 장소 근처에는 관람객들이 펜으로 남겨놓은 듯한 메시지들도 볼 수 있었다.

 

방문했던 나머지 전시관인 자연사 박물관에는 전쟁에 대한 아카이빙이, WH22 전시관에는 성적 소수성, 그리고 예술가의 삶에 대한 아카이빙이 있었다.

 

방문한 네 곳의 전시장에서 계속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을 찾아 헤맸지만 전시를 보면 볼수록 도큐멘타 15의 의도는 나의 목적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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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ericianum 내부 전시관

 

 

 

이번 도큐멘타의 정신 'Lumbung'


 

이번 도큐멘타 15는 룸붕(Lumbung)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룸붕은 인도네시아에서 잉여 작물이 남았을 때 농부들이 그 작물을 나누는 공동의 곳간을 뜻한다. 도큐멘타 15의 감독을 맡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집단 'Ruangrupa'가 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도큐멘타 15의 전시를 보다 보면 이 가치를 잘 느낄 수 있다. 전시장을 공유 곳간으로 생각한다면 관객들을 과정에 포함시키는 이 전시 방식도 이해가 된다.

 

 

 

아쉬움 속에서도 좋았던 점


 

도큐멘타 15에서 좋았던 것은 배리어 프리 부분이다.

 

전시 설명에 다양한 언어를 제공한다. 쉬운 언어, 묘사가 많고 다중 감각적인 언어, 수어 등 선택지가 세분화되어있다. 수어도 독일 수어와 국제 수어를 함께 제공한다.

 

휠체어를 탄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한 안내도 잘 되어있었다. 전시장에서도 휠체어를 탄 관람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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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ericianum 내부

 

 

 

도큐멘타 15에 다녀온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뜨겁게 달궈진 몸을 식히며 약간의 현타가 왔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몇 시간 걸려서 기차를 타고 얻어온 게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를 원했다.

 

그래서 도큐멘타 15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담긴 핸드북을 주문했다. 내가 어떤 것을 얻지 못한 이유는 당일치기로 다녀와 다른 전시관들을 보지 못해서라는 생각도 있었기에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다.

 

책이 도착하고 책을 살펴봤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분명 도큐멘타 15를 방문했을 때 몰랐던 정보를 알게 돼서 유익한 건 맞지만 새로운 감흥은 없었다. 어떻게든 억지로 감동받으려 노력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노력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도큐멘타 15의 정신과 다른 목적이 있었기에 전시를 보는 중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도큐멘타 15가 말하는 가치를 존중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이번 도큐멘타 15는 나에게 완성된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관람객에게 전시장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하기를 권할 뿐이었다.




김선미.jpg

 

 

[김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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