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는 왜 이렇게 감정적이고 불안할까? - 나는 관계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글 입력 2022.08.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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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기억의 영향력에 관하여



필자는 타인과 음성으로 나눈 대화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누군가 예전 기억이 가물거린다고 하면  그가 몇 살 때, 언제, 어디서, 어떤 말을 했었는지 짚어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떻게 그렇게나 오래 기억할 수 있는지 반문이 돌아온다. 왜일까. 언젠가 그 질문을 듣고 이유를 헤아린 적 있다. 나는 내가 감정적인 사람이라 그렇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똑같은 일을 겪어도 감정을 느끼는 역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쉽게 분노하고, 슬퍼하고, 감동한다고. 대개 어떤 감정과 함께 대화 내용을 머릿속에 담으면 기억에 색이 입혀져 깊이 각인되지 않나. 나는 그 빈도가 잦은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보니 필자가 짐작한 바는 실제 정신 의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한 모양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감정 기억’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어떤 상황에서 무척 강렬한 감정을 갖게 되면, 이 기억은 ‘감정 기억’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만든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트라우마'도 이렇게 통합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 기억인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온갖 감정과 함께 봉합해둔 기억들은 장기기억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셈이었다.


물론 장기기억을 잘하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저자가 '트라우마' 역시 이러한 감정 기억의 일부라고 지적한 것처럼, 나를 해하고 괴롭혔던 사안까지 오래도록 기억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가진 부정적 감정 기억은 애착 유형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잠시 과거 기억을 되짚어본다.


필자는 어린 시절 매일 아침 맞벌이로 출근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유치원 종일반에 갇혀 있다시피 생활했다. 야근하느라 늦게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면서는 온갖 상상을 했다. 아파트 앞에서 경찰차나 구급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급 불안해지면서 부모님이 귀가가 늦어지는 이유가 그것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교통사고 뉴스라도 들으면 돌연 조마조마해져서 잠들지 못 했다. 그렇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끝내 울먹이며, 한 번만 부모님께 전화하면 안 되겠냐는 애처로운 부탁을 꺼내곤 했다.

 

필자는 수화기 너머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야만 안심했고, 꼭 조심히 돌아와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몇 번이고 건네야만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그마저도 불안에 점철돼 있었기 때문에 얕게 잠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귀가하는 소리만 들리면 화들짝 놀라 마중하러 달려 나갔다. 아직도 이러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트라우마처럼 무의식중에 깊이 남아 있는 유년의 기억이 '감정 기억'으로 남아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늘 분리불안에 시달렸던 유년기를 지나온 필자는 성인 애착 유형 중 불안정 애착을 갖게 됐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카테고리에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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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애착 유형 중 '몰입형'의 고충



저자는 성인 애착 유형을 ‘안정형’, ‘무시형’, ‘몰입형’, ‘혼란형’ 총 4가지로 구분해두었다. 안정형을 제외하고는 전부 불안정 애착 유형인데, 필자는 개중에서도 '몰입형'에 해당한다. 저자는 몰입형에 대한 설명으로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과거의 애착 관계나 경험에 집착하며 말을 하는 동안 매우 화가 나 있거나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임. 묘사가 과도하게 긴 경향이 있음." 여기서 후자의 경우 다소 의아할 수 있다. 어쩌면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몰입형이, 매번 나 스스로 주체하기 어려운 감정을 타인에게 납득시키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표현하려다 보니 발현되는 특성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글을 쓸 때도 스스로 변명하듯 길게 늘어뜨려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역시 애착 유형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

 

몰입형인 필자는 늘 상대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염려를 끌어안는다. 조금만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져도 과도하게 불안감을 느끼고 쉽게 의심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필자의 기준에 따라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으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근거가 필자의 억측에 의한 것일 뿐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타인에 대해 느낀 부정적 감정인데, 타인이 나를 싫어하거나 위협한 것으로 착각하는 '투사 현상'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있을 때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렇게 불안정한 심리는 외려 까칠하게 반응하거나, 혹은 아예 얼어붙어 입을 다무는 식의 서툴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비일치적 의사소통일 뿐 진심이 아니지만, 상대방은 당연히도 오해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그러면 당연히도 관계에 균열이 온다. 중요한 건 비난의 화살은 점차 타인에서, 나 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고는 나 자신을 위축시키고, 이는 다시금 새로운 관계를 맺기 어려운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애착 유형은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본인의 결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수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관해 새로운 낙관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어렸을 적에 부정적 애착 유형을 형성하며 자랐다고 할지라도 누군가와 꾸준히 안정적이고 좋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애착 유형이 바뀔 수 있다고 한 것이었다. 저자는 “애착 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도 애착 유형은 변할 수 있다는 뜻에서 작동모델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다.

 

되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잠시 필자가 연애 경험을 통해 얻은 바를 되짚어본다. 늘 불안감과 함께 각종 근심 걱정에 시달렸던 필자는 혼자 오롯이 그 감정을 끌어안으려 했다. 물론 워낙 자주 깊은 부정적 생각 회로에 감겨있다 보니, 그것들은 곧잘 새어나가 표정으로 드러나곤 했지만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애인은 왜 그러냐고 물어왔고 옆에서 관심을 기울여줬다. 물론 필자는 단번에 답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애인은 옆에서 화 한 번 내지 않은 채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면 필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긴긴 감정과 사유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곤 했다. 그럴 때면 애인은 옆에서 묵묵히 듣다가 대화를 시도했고, 늘 필자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선언해왔다.


물론 대화 후에 바로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감정은 제어하기 어려운 영역인만큼, 우리는 대화를 잘 끝냈어도 곧잘 다시금 갈등에 시달리곤 했다. 앞서 말 한 것처럼 필자가 늘 너무 많은 생각에 잠기고 지레짐작하는 습관이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애인이 퇴근한 후 밤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날 필자는 돌연 어떤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이후 새벽이 됐을 때까지도 울면서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그는 피곤했을 법한데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고, 위로와 해결책을 제시하며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소통했다. 그렇게 동이 텄을 때에야 필자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날 필자는 처음으로, 스스로 변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불안정 애착이라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합리화하며 지레짐작 하고 억측하는 습관이 정말 좋은 사람을 잃게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사랑을 주는 사람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무용할 뿐더러, 실례라고 판단했던 것도 있다. 더불어 애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상당 면에서 나와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는데, 그런 것만 보아도 사람을 내가 아는 데이터로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든 탓도 있다. 이제는 그저 믿고 싶었다. 아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저자의 말대로 필자는 나를 무한히 신뢰해주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내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과 더불어, 불안정 애착에서 다소 안정된 애착으로 바뀌는 진귀한 경험을 몸소 한 것이다.


필자가 겪은 위와 같은 변화는, 저자가 "감정 기억을 긍정적 기억으로 뒤덮어 쓰는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하기도 한다. 필자는 앞서 감정 기억이 부적절한 애착 유형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안에 매몰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애인으로 새롭게 쌓아올린 긍정적 기억이 어느새 부정적 기억을 덮었다. 물론 불안정 애착 유형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니, 아예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 불안하더라도 괜찮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생긴 게 사실이다.

 

 

 

늘 각종 이유로 불안감에 시달리는 당신에게



책에서 어떤 이는 저자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는 그런 일만 연달아 일어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에 동의하며 ‘상처는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받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마음의 여유와 안정이 사라진 뒤에 겪는 사건은 그게 무엇이든 상당한 부담과 불안으로 다가오기에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상황이나 결핍, 성향을 올바르게 마주하고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강구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책을 읽으며 본인의 불안한 상태를 돌아보고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그 근원을 살폈다. 나아가 저자의 가이드에 따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를 고찰했다. 앞서 다른 카테고리에서 언급한 '서로 존중하는 연애를 통해 애착 유형이 안정적으로 변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는, 저자가 제시한 바가 새삼 와닿아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반드시 필자와 같은 유형에 속했다거나,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도와 양상이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할 것이다. 인간은 고정적이고 일차원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떤 경험에 의해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이고 입체적이며 유연한 존재다. 그러므로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인간은 반드시 변화할 수 있다. 만약 당신도 나처럼 어떻게 해야 현재 겪는 심리적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면, 이 책을 참고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이 당신의 옆에서 그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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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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