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돌아갈 곳이 있나요? [영화]

다큐멘터리 <나의 집은 어디인가>
글 입력 2022.07.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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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무리가 아니라 선명한 개인이 보인다.


 

보통 난민에 관해 생각할 때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난민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난민의 삶을 시혜적 관점에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집을 찾아 계속 헤맬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삶을 그저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아민은 인터뷰 초반에 자신의 가족이 다 죽었다고 말한다. 밀입국자가 지시한 대로 공항 직원에게 자신의 가족들이 죽었다고 말하며 "refugee(난민, 망명자)"를 외쳐야 했을 덴마크 공항에서부터 아민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족이 생존해있음을 밝히지 못한다.

 

그러다 인터뷰가 진행되고 나중이 되어서야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있음을 밝힌다. 그의 달라진 진술에서 그동안 아민이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아민의 마음을 열어낸 인터뷰어인 감독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다큐는 난민을 뭉뚱그려 해석하지 않게끔 한다. 아민에게 힘들었던 기억을 물었을 때 얘기했던 것 중 하나는 배를 타고 밀입국을 시도하던 도중 큰 선박을 만나 구조 요청을 하는데 큰 선박에 탄 사람들이 난민들의 사진을 찍는 행동을 했을 때 느꼈던 수치심이다. 다른 기억은 러시아에서 부패한 경찰들이 난민 여성을 강간하려고 할 때 돕지 못한 뒤 느꼈던 죄책감에 관한 기억이다.


난민이라는 타이틀에만 집중해서 아민의 고통을 불안감 또는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괴로움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것뿐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수치심과 죄책감 또한 아민을 괴롭히는 주요한 감정들이었다. 이 다큐를 통해 한 인물의 세세한 감정의 결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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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안의 여러 가지 정체성



아민은 난민뿐만 아니라 게이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 아민의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 싶은 정도로 동성애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는 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아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을까 봐서였다.


나중에 그가 큰형과 누나들이 있는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 형이 아민을 게이클럽을 데려다준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형의 응원을 받는 모습에서 계속해서 흔들리던 아민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음을 느끼게 되어 나까지 마음이 따듯해졌다. 다큐 끝에 아민이 자신의 남자친구와 결혼했다는 소식에 흐뭇했다. 주변을 경계하고 타인을 신뢰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이 타인을 온전히 믿게 되는 성장의 모습이 느껴져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난민의 삶에 게이라는 성소수자의 정체성까지 있어 속앓이했을 아민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정체성들이 공존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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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 방식의 선택은 훌륭했다.


 

잔혹한 전쟁 실상과 피폐한 환경 등을 실사로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은 용기를 내서 취재에 응한 인터뷰이에 대한 보호와 존중이면서, 동시에 효과적인 전달 방식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택함으로 인해 많은 제약이 없어졌다. 아민의 감정이 드러난 클로즈업을 모자이크하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고, 아민이 겪은 상황들을 관객에게 더 와닿게 묘사할 수 있다. 오히려 폭력적인 장면이나 황폐한 장면을 실사로 담아냈다면 지금까지 많이 봐왔던 뉴스들의 반복이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연출을 해서 진실한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준 감독의 연출 능력에 감탄했다. 또한 인물의 보호를 위해 가명을 쓰고 여러 정보도 변형하고, 성우를 섭외한 것도 사려 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보도 윤리란 무엇일까.


 

아민이 밀입국에 실패하고 에스토니아 경찰에 잡혀 열악한 환경의 임시 숙소에 살았을 때의 일 중에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다. 기자들과 TV 프로그램에서 불쌍한 난민들의 상황을 촬영해갔지만, 그때뿐이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6개월 후에 아민은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난민들을 뭉뚱그려 불쌍하게 연출하고, 개인의 목소리는 담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상황을 찍고 전달하는 것 이상의 섬세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보도는 어려운 걸까.

 

그런 면에서 이 다큐는 섬세하고 진중한 동시에 중요한 사실들 또한 놓치지 않은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였다. 러닝타임은 한 시간 반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그 안에 한 사람의 삶을 섬세하고 사려 깊게 잘 묘사해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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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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