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수꾼'으로 감상하는 영화 속 우정 이야기

글 입력 2022.07.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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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명목 아래 참으면서까지 아파야 했던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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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10대 남학생들의 서열 생존기에서 한 소년이 죽었다.

 

이 소년의 이름은 기태다. 기태는 가정에서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을 우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성숙한 우리들 사이에서 솔직함보다 자존심이 우선이었던 소년은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속사정이 있었다.

 

아무리 두터운 우정이라도 말 못 할 사정은 있는 법. 이를 알지 못한 희준은 무심코 기태의 결핍을 다른 친구와 의도치 않게 건드리게 되고 이때부터 이들의 관계는 서서히 갈등을 빚어낸다. 이에 동윤은 희준에게 폭력적을 가하는 기태에게 이유를 묻지만 입을 열지 않는 기태에게 실망하게 되고, 기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던 동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며 큰 상처를 받고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일으킨다.

 

대체 이들에게 학교라는 작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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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의 대화 장면


 

아이, 그냥 그냥 보통은 내가 다 얘기하잖아, 어?

이번엔 그냥 자세하게 얘기 안 해도 그냥 넘어가. 

아, 설명 못하는 것도 있잖아.

 

 

 

파수꾼에 대한 에디터의 견해


 

[어떤 관계든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기본값이다]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 왜 어른들은 한 번 싸우면 다시 친해지기 어려워? 우리들은 어제 싸워도 다음 날 되면 또 아무렇지 않은데.”

 

“머리가 크고, 어른이 되면 하나도 복잡하지 않은 게 없어. 그래서 성인이 되고 한 번 사이가 틀어지면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거야.”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신 워딩 자체는 머리로 이해가 갔다. 그런데 몸속 어딘가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저장 기능 안에는 복잡한 관계 설명이 잘 소화되지 못했다.

 

살면서 누군가와 큰 다툼 없이 항상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회피했던 결과 <파수꾼>의 주인공들(희준, 기태, 동윤)처럼 대놓고 관계를 파멸까지 이른 경험은 없었다. 그런데 사회화 활동을 기본으로 두고 살아야 하는 세상 구조 속에서 인간관계는 신경을 곤두서야 하는 일종의 노동이라고 느꼈다. 감정선이 예민하고 복잡했던 10대 시절에는 내가 속한 무리 속에서 버텨내야 하는 에너지를 항상 농축시켜야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20대는 각자마다 길이 정해지고 속도와 방향이 확연히 달라져 비교적 관계를 애써야 하는 큰 에너지는 얼마 들지 않지만 남아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습관처럼 안부를 묻고, 내 안부를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파수꾼>은 한창 질풍노도를 겪는 10대 남자 고등학교 친구들의 학교생활을 보여준다. 희준(박정민)과 기태(이제훈) 그리고 동윤(서준영)은 하교 후 야구공 하나로 또 다른 추억을 깊게 만들 정도로 친구로서 관계가 끈끈했던 사이였다. 진부한 말이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단순하고 철없는 10대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말하지 못할 속사정이 하나씩 마음에 투명히 달려있었다.

 

우선 희준은 자신을 포함한 3명의 삼각형 구도 안에 벽이 있다고 느꼈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고 자신만 고등학교를 넘어와서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지 못했던 그 시간을 지금부터 채우기엔 무리가 있다고 씁쓸해했다.

 

기태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자존심 상해 말할 수 없는 집안 사정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엄마가 없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관심도 없어서 항상 애정과 관심이 필요했던 친구다. 이를 해결할 결핍 방안이 없으니 건강하지 못하게 학교 안에서 서열 싸움에 전부를 거는 행위로 친구들에게 외면을 사게 된다.

 

학교 쉬는 시간 아이들이 책상 앞에 의자를 끌고 앉아 둥글게 모여 수다를 떤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기태가 다른 주제로 화제를 홱 돌려버린다. 이런 어리 숙한 기태의 여러 번 반복된 행동을 눈치채고 희준과 또 다른 친구는 자기들만 공유할 수 있는 미묘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이때부터 이 관계는 파멸이 되는 원인을 만들고 끝내 오해가 쌓여 기태를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기태가 주먹을 운용해 친했던 희준을 때리는 악랄함을 보면서 동윤은 기태에게 그만하라며 여러 번 신호를 준다. 대체 희준을 왜 때리냐고 이유를 묻는 동윤에게 기태는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기태는 어차피 말하지 못할 이유를 계속 알려달라고 하고,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자신한테만 나무라 하는 동윤에게 원망을 산다. 서로의 입장 차이는 판사가 존재하지 않는 구역에서 자존심이라는 감정을 우선시 생각하며 솔직함에서 끝까지 멀어지게 만들며 감정의 골을 깊게 파낸다.

 

허물없이 친해서 더 보여주기 어려웠던 나의 사정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를 알아주길 원하는 욕심, 객관적으로 잘못한 것은 아니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너라서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이 한데 모여 서로를 지치게 만들었다.

 

차라리 큰 말실수를 한다던가 욕을 해서 기분이 상했다던가 했다면 정정당당하게 또는 일목요연하게 기분이 상한 이유를 설명하면 뒤끝 없이 관계는 정리될 수 있다. 그래. 친하니깐 감정이 상할 일도 생기는 거지, 안 친했으면 싸우기도 했겠어?라며 얼렁뚱땅 합리화 시킬 수 있다.

 

그런데 친한 관계에서 대놓고가 아닌 미묘하게 상대의 허점을 긁거나 은근슬쩍 성가실 정도로 불쾌하게 감정을 건드리면, 객관적인 상처의 지표가 없음에도 그 울분이 오히려 큰 불화를 만들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치부를 알지만 궁금해도 물어보지 않는 것, 크게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알아도 나만 알고 있는 것. 이 배려심이 한데 모여야지만 소중한 친구를 옆에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며 서로에 대해 전부를 공유해야지만 친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도 이젠 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 친구가 먼저 입 밖으로 꺼낼 때까지 궁금해도 기다려주고, 내게 알려주지 않는 것 같아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시간이 흐르면 내가 알 수도 있겠지. 하는 무던함과 약간의 안일함이 상대를 위하는 방식임을 알아야 한다.

 

“아이, 그냥 그냥 보통은 내가 다 얘기하잖아, 어?”라고 서럽고 답답한 심정으로 말했던 기태의 표정과 목소리의 갈라짐을 선명히 기억한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보통’도 꼭 친구에게 말할 의무는 없는데 친구라는 울타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보통’도 끄집어내어 말하고 싶었을 기태의 노력은 그 아무에게 노력으로 치환되지 않았다. 관계를 이루는 모든 사람은 이 ‘보통’의 사연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한 건 가족 간의 관계에도 없는데 말이다.

 

인간관계는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나 어렵고 복잡하다. 문제집처럼 해설지도 없어서 그 어떤 깔끔한 설명도 착한 매뉴얼도 없다. 나의 행동이 A라는 친구에겐 배려라고 느껴지지만, B라는 친구에겐 무례하다고 판단될 수 있다. A라는 친구에겐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만, B라는 친구에겐 상처로 남길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관계는 그날의 기분, 감정, 날씨, 상황 모든 종합적인 요소에 따라 예측 가능한 길로 정확히 도착되는 지점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친할수록 상냥해야 하며 말의 온도를 챙겨야 하며 비언어적 행동에 예의를 차려야 한다. 이렇게까지 나 자신을 정돈 시켰음에도 그 관계가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고음이 쨍쨍하게 들려오면 일어난 일에 대해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어쩌면 그게 사는 법이고 그 친구와 나 사이에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될 수 없는 척력이 증명된 어느 날 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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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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