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물의 특징 지우기 - 물가 [격주의 문학]

글 입력 2022.07.2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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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성혜령 작가의 단편소설 「물가」이고, 이 소설은 상품의 가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를 말하고 있다. 비가 많이 내려 물이 쏟아지는 강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성혜령 작가는 그리고 있다. 성혜령 작가의 「물가」는 『창작과비평』 2022년 여름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성혜령 작가의 이력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성혜령 작가는 작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다. 창비신인소설상은 문단에 데뷔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가요계에서는 3대 기획사를 통해 데뷔를 하는 가수들이 대중에게 가장 널리 인식되고 무대에도 많이 설 수 있는 것처럼, 문단에서는 주요 문학 출판사들―대표적으로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그리고 최근 뜨고 있는 민음사 등―의 신인 작가상을 통해 등단하는 작가들이 대중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문예지 지면에 작품이 실릴 기회도 많이 얻게 되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당선한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첫 작품집을 선보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렇게 영향력이 큰 작가상인만큼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창비신인작가상에 도전하고 또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 같다. 최근의 소설상 수상자 중에서는 2018년에 장류진 작가가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소설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고, 장류진 작가는 현재 문단에서 아주 널리 읽히는 작가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정영수 작가(『내일의 연인들』), 김사과 작가(『테러의 시』) 등이 이 상으로 데뷔하였다. 성혜령 작가도 좋은 작품들로 조만간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물가」에서 성혜령 작가가 각각의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분명 각각의 인물이 서로 소통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물리적·감각적인 교류는 거의 없고 언론 혹은 사회의 이슈들이 인물들 사이에 자꾸만 끼어든다. 이러한 소통방식은 문학으로서는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현실적인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성혜령 작가의 글쓰기 방식에서 이러한 지점들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이러한 지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물가」를 통해서 오늘날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함께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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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인 ‘유안’으로부터 자신의 반려견인 ‘치약이’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들의 항암치료 때문에 병원에 함께 있어야 해서 강아지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유안의 남편인 “형우 혹은 현우” 씨가 어느 날 오전 방문해 치약이를 ‘나’의 집에 데려다 주고 치약이와의 다소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유안과 있을 때는 마냥 얌전했던 치약이는 유안이 없자 짖거나 그르릉 거리기 일쑤고, 같은 빌라 주민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들어오면 그제서야 얌전해지는 치약이 때문에 ‘나’는 매일 반복되는 고된 알바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산책에 나선다. 그러나 반복되는 노동으로 인해 저녁에 다리에 부종이 생기기도 하고 발을 다치기도 해서 매일 밤마다 산책을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나’는 강아지 산책 대행 알바생에 연락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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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를 읽으면서 최근에 발표된 다른 소설들과 비교하여 흥미로운 부분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다른 주변 인물들에 비해 주인공인 ‘나’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독자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샌드위치 가게 알바라는 것, 그리고 어릴 적부터 유안과 친구였다는 사실 등은 드러나지만, 나머지 정보는 주변 인물에 대해 ‘나’가 보이는 반응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 유안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제공된다. 외국어고를 나와 현재는 외국계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든가, 얼굴 등의 외모 묘사라든가, 시사 이슈에 대한 반응, 심지어 좋아하는 음식까지도 세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근래 모더니즘 경향의 소설에서 인물에 대한 소개나 묘사가 고의로 제한 되는 경우는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으나, 주변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제한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나’에 대한 정보가 제한되는 것은 한편으로 독자들이 스스로를 ‘나’에 투영시킬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는 것 같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이고, 그래서 소설의 인물은 실제로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소설이, 소설적 인물이 더욱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려면 작가는 자신이 만든 인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인물 묘사를 자세히 할수록 허구적이고 가상적인 하나의 존재가 더욱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유안의 부탁이나 요구에 불편해하는 모습만을 남겨두면서, 독자는 적극적으로 ‘나’의 위치에 들어가 유안의 행동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유안이라는 인물이 너무 자세하고 명확하게 그려져 있어서 독자는 유안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독자들은 유안의 반대편에 서서 ‘나’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혜령 작가의 글쓰기 방식 속에서, 독자는 ‘나’의 입장에 가까워지게 되고, ‘나’가 경험하는 현실과 가상의 이슈들을 모두 함께 체험하게 된다. 소설 전반에 있어서 유안의 대척점에 있는 ‘나’는 자발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계속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 유안은 ‘나’에게 부탁을 하거나, 세상의 여러 충격적인 뉴스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나’에게 늘어놓는다. 실제로 심각한 것은 아이의 항암치료와 반려견 치약이의 상태인데, 눈앞의 심각한 일들은 뒷전이 되고 유안은 사회적 현안―흉악범죄나 안티페미니즘 이슈, 자살 사건 등―들과 섀도복싱을 하느라 바쁘다. 유안이 해결하지 못한 현실의 문제를 맞닥들이는 것은 ‘나’의 몫이고, ‘나’는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유안의 고민들을 함께 지켜본다.


특이한 것은 현실의 사건과 미디어의 사건들은 소설 내에서 접점이 없는데, 주인공인 ‘나’는 미디어의 이야기가 형성하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현실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시신이 강에 떠내려가는 범죄가 발생한 것은 다른 지역의 일이지만, ‘나’는 그 물이 흘러오는 지역을 치약이와 산책하게 된다. 임산부를 혐오하는 남성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임산부가 아니지만, 알바를 하면서 불쾌한 남자 손님을 상대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반려견 산책 대행 알바과 접선하게 된다. ‘나’의 정보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나’가 경험하는 현실의 고통과 언론의 자극을 모두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성혜령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일상과 거시사회의 경계는 기존의 작가들이 그린 것과 비교하여 특이한 지점에 위치하는 것 같다. 리얼리즘 소설 혹은 역사소설에서는 역사나 사회의 흐름이 인물의 운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소설적인 매력이 발생한다. 이전에 소개한 임솔아 작가의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가 이러한 면에 해당한다. 반대로 몇몇 모더니즘 소설들은 역사나 세계의 배경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거시적이고 압도적인 배경은 미니멀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각과 감정의 세계를 침범하지 못한다. 염상섭의 「취우」가 그러하고, 최근 소설 중에서는 이장욱 작가의 「귀 이야기」 혹은 「유명한 정희」가 그렇다.


「물가」에서 드러나는 성혜령 작가의 작품 세계는 이 둘의 어느 중간에 위치하는 것 같다. 소설 내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은 주변적인 것이지만, 자꾸만 인물의 현실 속에 묘한 분위기를 드리운다. 소설 속 ‘나’의 일상에는 강력 범죄나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것에 ‘나’가 심정적으로 인접해 있다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어쩌면 ‘나’라는 인물이 너무 수동적이고 연약하게 느껴져서 분위기의 작용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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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물가」에서 성혜령 작가가 그리고 있는 것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어느 중간에 있는 것 같고, 이것은 사실 현대의 독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과 가장 유사할 것 같다. 자극적인 사회 이슈나 크고 작은 폭력이 만연한 사회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은 지루하지만 매번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점에서 안전하고, 그래서 소중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회적 이슈의 영향력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고, 그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묘한 긴장감과 경각심을 심어준다. 일상과 거시사회의 경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그 섬세한 지점을 성혜령 작가가 짚어주고 있다.


성혜령 작가의 작품은 그 독특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실감나고 살벌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직은 단편소설의 형식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난 뒤에는 더 길고 완성된 형태의 성혜령 식 소설을 만나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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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령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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