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제 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 [문학]

글 입력 2020.11.1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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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소설은 현대문학 10월 호에 발표된 임솔아 작가의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내가 알던 임솔아 작가와 다른 무안가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가 줄곧 그려온 것들, 그러니까 차가운 세계, 절제된 감정, 그리고 그 속에서의 연대,와 같은 것들을 기대하면서 반가운 마음으로 문예지를 펼쳤고, 나의 기대는 철저히 무너졌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큰 무언가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충격적인 줄거리에서 오는 일종의 이물감도 느껴지고, 사건인지 배경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문장의 추동력도 감탄스러웠다. 이 새로운 충격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우선 임솔아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 문단에서 시와 소설 모두 창작하며 양쪽 모두에서 인정받는 흔치 않은 작가다. 2013년에 중앙신인문학상에서 시로 등단한 이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면서 소설로도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최근아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최근에는 시인보다는 소설가로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훌륭한 소설들이 많고 작품 발표를 하지 않더라도 문예지에 임솔아 작가의 이름은 자주 인용되고 언급된다. 올해는 지난달에 발표한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 외에도 상반기에 단편소설 「희고 둥근 부분」과 「그만두는 사람들」을 발표하였다. 나의 경우 두 작품 모두 읽어 보았는데,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작가의 문체 속에서 묘한 울림이 느꼈던 것 같다.

 

상반기에 발표된 두 단편소설에서는 제도와 시스템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여성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그런 여성 주인공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연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폭력의 공간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담담한 감정으로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그런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사회에는 폭력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차분하게 서로를 생각해주며 고요한 연대를 이루고 있는 모습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모습들이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임솔아 작가는 문단의 성폭력 사태와 관련하여 여성 작가들과 연대하며 서로를 보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치열한 경험들이 오늘날의 임솔아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임솔아 작가의 작품은 시스템과 폭력을 말하고 있는 동시에, 그 모습을 특유의 안정적인 감정으로 표현해내고 있어 굉장한 가치가 있다.

 

 

현대문학 2020.10.jpg
현대문학 2020년 10월 호


 

이러한 생각들이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를 읽기 전에 임솔아 작가에 대해 내가 기대하고 있던 점이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읽었을 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이 작가가 이런 형식의 소설도 쓸 줄 아는구나, 생각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소설은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어릴 적에는 ‘척’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그런 위선적인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서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 조용한 그녀에게 글을 쓰는 일은 성격과 잘 맞는 직업이었고, 대학시절부터 글을 쓰면서 돈을 모으고 삶을 꾸릴 수 있게 된다. 치열한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서 서울에 거처를 둘 필요가 없었던 그녀는 지하철 노선의 끝에 위치한 교외의 동네에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집은 부동산 업자는 사기꾼이었고, 집은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는 등 하자가 많다. 같은 빌라 주민들과의 협력도 쉽지가 않아 스트레스가 날로 늘어간다. 자기 집을 가졌을 때 세대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부동산 제도의 문제점들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도 사람들을 속여 자신의 집을 처리하기로 한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줄거리는 이 정도인데, 줄거리 이상의 디테일들이 놀라운 문장들이 많다. 특히 시간에 따라 주인공에게 일어난 변화들, 혹은 주인공의 내면 변화가 유독 눈에 띄었다. 길게는 거의 두 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 동안 대화나 독백 같은 것이 나타나지 않고, 시간에 따라 주변 환경이 변해가는 모습, 주인공이 겪은 사건에 대한 묘사 같은 것들이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글이 임솔아 작가가 쓴 단편소설이 맞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 담담하고 안정적인 감정들과 주인공들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형식의 단편 소설 주인공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임솔아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의자에 앉아 지하철이 텅 비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태아도 아이로 인정이 된다면, 태아를 인정받은 이후에 낙태를 하는 것이 가장 영리한 전략이 된다. 아이 한 명당 5억이 아니라, 낙태 한 번에 5억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간단한 계산을 나만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핸드폰으로 포털 어플을 켰다. ‘청약’과 ‘낙태’ 두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2019년 특별공급 당첨자 중에서 부정 청약은 밝혀진 것만 10퍼센트에 달했다. 사람들은 청약 당첨자가 되기 위해 싱글 맘과 위장결혼을 했고, 임신을 한 후 낙태를 했고, 파양할 아이를 입양했다. (중략) 나는 계산기 어플에 5억이라는 숫자를 입력했다. 매달 100만 원씩 저금을 한다 해도, 내가 40년 동안 거의 80세가 될 때까지 모아야 하는 액수였다. 청약 가점 계산기를 켰다. 나에 대한 정보를 가점 계산기에 하나씩 입력했다. 나 같은 주거용 오피스텔 소유자는 무주택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예상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 봤자 내 점수는 16점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에 당첨되려면 최소 54점 이상이 필요했다. (현대문학 2020년 10월 호 p.82)

 

 

이 부분이 나는 특히 놀라웠는데,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 뉴스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현상을 임솔아 작가는 자신의 주인공을 통해 글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러한 문체는 장강명 작가나 조남주 작가처럼 소설적 문체를 약화시킨 르포 형식의 소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은 소설의 허구적 세계를 따라가며 책을 읽던 독자들이 눈앞의 한국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부분이다.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임솔아 작가가 소설에 담아낸 것이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동시에 독자를 생각하는 행위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서 그것을 문장으로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옮겨놓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것은 흔한 ‘이야기’가 아닌 체계적인 완성품인 것이다. 임솔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사회의 불편한 단면들, 작가도 알고 독자들도 알고 있을 그러한 현상들을 독자들에게 전하기로 했다. 그녀는, 말하자면 ‘르포 형식’이라는 그릇에 한국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서 독자에게 내주었다.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임솔아 작가가 정한 형식에 따라 다시 소비하게 된다. 임솔아의 체계 속에서 우리가 이미 몸담고 있는 익숙한 고통을 다시 낯설게 마주하며 생생한 불편함을 느끼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의 불쾌하지만 가치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문예지에 실린 다음 작품도 읽어볼까 했는데 (다음 작품은 편혜영 작가의 작품이었다) 이미 글을 계속 읽기는 힘든 상태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임솔아 작가의 이름을 보고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제도가 주는 상처로부터 회복하며 서로 연대하는 그런 이야기를 해줄 거라 막연히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런 소설이 굉장히 좋았던 것은, 짧은 단편의 분량 속에서 위선을 거부하고 소소한 삶을 추구하던 한 인물이 결국에는 “누군가를 낚는다는 기쁨”을 느끼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드러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갑작스런 비약이 아니다. 이것은 대출이자를 계산할 때는 무직자로 분류되고 건강보험료를 책정할 때는 직업인으로 분류되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주민들의 집단적 부정행위를 몸소 체험한 끝에 비로소 만들어진 새로운 인물이다.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는 어쩌면 사람이 한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속 사회와 인물은 현실의 사회와 인물과 얼마나 다른가. 별의 별 일을 겪으며 살아갈 미래를 앞두고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소설이다.

 

 

[크기변환]임솔아.jpg
임솔아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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