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주의 문학 이야기 - 귀 이야기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2.1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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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단편소설은 이장욱 작가의 「귀 이야기」이고, 「귀 이야기」는 물론 말 그대로 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동화나 우화는 아니고,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이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장욱 작가의 이번 작품은 독자들에게 친절하고 살갑게 다가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귀라는 소재는 너무 심각하지 않고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귀는 둥글고 말랑말랑하고 얼굴 양옆으로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무언가 만져보고 싶기도 하고 친한 사이라면 귀에 대고 말을 속삭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귀 이야기」는 그런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신체 부위에 대한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일거라고 예상 할 수 있다. 물론 그 예측은 어느 정도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린 것이다. ‘귀’라는 소재에 대해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픈 이야기들은 약간 불편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있어서는 위로가 필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장욱 작가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아트인사이트에 소개를 한 바 있다. 「잠수종과 나비」, 「트로츠키와 야생란」 등의 작품을 일전에 소개했었는데, 이 두 작품은 이장욱 작가 특유의 유머를 담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장욱 작가를 굉장히 좋아하고, 그가 삶의 비선형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독자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저 두 작품은 확실히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충격적인 전개들이 눈에 띄는 작품들이었고, 호불호가 나뉠만한 전개였다. 그에 반해 「귀 이야기」는 약간 다른 면이 있다. 서로 다른 환경을 살아온 세 사람이 우연히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그 속에서 서로 몰랐던 면을 발견하고 더욱 가까워질 수 있게 되는 이야기. 「귀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장욱 작가의 유머 속에서 인물 사이의 느슨한 연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사회 21년 가을.jpg

《문학과 사회》 2021 가을호

이장욱 작가의 「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귀 이야기」는 서로 각자의 사연 때문에 여행길에 오르게 된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나’와 ‘예수’와 육십대 중반인 ‘나’의 친척, 이질적인 세 사람은 서로가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나’와 예수는 남녀 사이의 친구인데 대화가 잘 안 통하는 사이인데도 그 관계가 독특하게 유지되고 있다. '나'는 어릴 적에 '나'의 친척―정확하게는 당숙―에게 신세를 지며 살았는데, 지금은 가끔씩만 왕래하며 연락을 주고받는다. 당숙 아저씨는 어느 날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는 예수를 데리고 셋이서 여행에 나서게 된다. 재밌는 것은 예수가 '나'의 당숙 아저씨를 유튜브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예수가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아저씨가 유튜버인 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독특한 순환적 관계를 맺고 있는 세 사람의 여정이 「귀 이야기」에서 그려진다.


각 인물은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들이다. '나'는 잠수부와 연애를 했지만, 잠수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공무원 시험 최종까지 갔다가 면접에서 떨어져 크리에이터로 전전하고 있으며, 친척 아저씨는 한국 전쟁 때 포격으로 인해서 청력에 심한 손상을 입어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 여행이 진행되며 각자의 상처가 점점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상처는 오랜 시간 남아서 생활에 장애로 작용한다. 어쩌면 아저씨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고집불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매력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게 된다.


제목이 「귀 이야기」인만큼 각 인물의 삶에 있어서 ‘귀’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당숙 아저씨는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예수는 (이름과는 반대로) 부처처럼 귀가 길고 복스러워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의 ‘귀’를 마주하면서, '나'는 잠수부였던 옛 연인이 말해주었던, 잠수할 때의 귀의 중요성을 떠올린다. 귀라는 소재는 이질적인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서로가 상대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치 우화 같은 소설의 제목 속에서 각각의 인물은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함께 조화로운 여행을 완성한다.


*


「귀 이야기」의 매력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각각의 인물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 독특한 분위기를 그려내는 데에 있다. 주인공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예수와 당숙 아저씨의 태도와 행동은 기이하고 낯설다. 그렇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각 인물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세 사람의 관계는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귀 이야기」의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얘기해보고자 한다. 두 가지 부분을 얘기하게 될 터인데, 하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느슨한 연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서 각 인물의 삶의 무게가 덜어지는 현상에 관한 것이다.

 

 

 

1. 이질적 존재들의 느슨한 연대


 

우선 소설 속에서 세 이질적 존재들이 결성해 나가는 느슨한 연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세 명의 주인공은 서로 굉장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그래서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장면들이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두 사람일 때 대화가 이어지지 않던 지점들이, 세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소통이 원활해지는 장면들이 속속 등장한다. 평소에 '나'의 친척은 '나'가 묻는 말에 대답을 명확하게 해주질 않고, '나'가 더 집요하게 묻거든 ‘그런데 너는 참 집요하구나’(《문학과 사회》 2021 가을호, 87면)라며 지적한다. 그래서 '나'는 친척 아저씨가 자신과의 소통을 피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가 합류하면서 친척 아저씨의 우회적인 대답을 '나'를 위해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나'의 시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소통이 제삼자의 개입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의 설정을 다시 점검해 보면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나'와 친척 아저씨, '나'와 예수, 그리고 예수와 친척 아저씨, 각각 둘씩은 서로 다른 연결고리가 있다. '나'는 친척 아저씨의 ‘친척으로서의 면’만 알고 있지만, 예수는 ‘유튜버로서의 면’을 알고 있다. 또 '나'는 예수에 대해서 ‘친구로서의 면’만 알고 있지만, 친척 아저씨는 동종업계에 속한 사람으로서 예수의 말을 이해한다. 따라서 둘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면들이, 셋이기 때문에 이해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극적이지만 유의미한 연대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해결될 수 없는 장벽이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해결될 수 있고, 어쩌면 네 명 이상이 참가할 때 이들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가 반드시 사회적 차원의 거대한 문제해결을 위한 연대만은 아니다. 개인과 개인의 삶에 있어서 단순한 소통의 단절이 좌절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악의가 없는 대화 속에서 한쪽 혹은 양쪽이 상처를 입는 일상은 모든 집단에서 보편적인 것이다. 챙기고 아껴주려는 마음이 오해 속에서 비수가 되어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개인적 차원에서의 소통을 증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귀 이야기」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러한 느슨한 연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소한 관계들이 활성화되고 그것이 문화가 되면, 어쩌면 커다란 사회적 문제들도 좀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 ‘연대의 무게’ 탈피하기


 

연대라는 용어는 좌우간 친숙하지만은 않은 말이고 무게감이 있는 말이다. 이러한 용어는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 피상적이고 구조화된 느낌을 준다. 연대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딱딱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이장욱 작가가 「귀 이야기」을 통해서 완성해낸 훌륭한 작업 중 하나는, 연대를 유머러스하고 친숙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한 것에 있다. 무겁고 딱딱한 개념들 혹은 현실의 형상들을 감각과 감성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문학의 작업이라지만, 유머와 친숙함의 차원으로 이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서야 이루어지고 것 같다. 이장욱 작가의 이번 작업 역시 상처를 안고 있는 세 명의 인물로 하여금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최근 한국 문학, 특히 근래의 소설들 중에서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달성된 이후인 1990년대 문학부터 현실을 소설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경향이 줄어들었었는데, 근 몇 년 동안 그러한 움직임이 다시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소설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주고 있어서 사회 곳곳에 침투한 미시적인 폭력의 흔적들이 비로소 재발견 될 수 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런데 이들 문학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대 혹은 사회적 의식과 책임을 더욱 무겁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지속가능해야 하고 개인의 삶도 지속가능해야 하며 따라서 독자들이 읽는 소설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독자에게 사회적 의식을 요구하는 소설은 의미가 있지만, 그러한 소설만을 읽고 살수는 없는 것이다.


이장욱 작가의 소설을 유머를 도입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는 소설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귀 이야기」의 소설 전개 곳곳에서도 취업에 실패한 이야기, 전쟁의 후유증, 정치적인 소재들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세 사람의 여행, 그리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이러한 삶의 무게는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이 통하지 않거나 통하는 단순한 인간관계만 남아있다. 대화의 초점이 어긋나 우스꽝스러운 장면들, 그러다가도 서로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주는 여운은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독자의 마음을 공명시킨다. 이러한 소설이야 말로 지속가능한 소설이고, 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벼운 연대에 나아가고자 하는 기분 좋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


이런 식의 서술 방식, 그러니까 느슨한 연대에 대한 희망을 던지면서도 비장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유머로 극복하는 방식은 일전에 박솔뫼의 중편소설 『인터내셔널의 밤』을 읽으면서도 경험했던 것 같다. 아주 가볍지는 않아도 연대를 이야기하는 소설로는 임솔아의 단편소설 「희고 둥근 부분」이 떠오르고, 연대라는 키워드가 아니더라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관계를 조명하는 소설로는 이유리 작가의 「이구아나와 나」와 박솔뫼 작가의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소설들은 언제 읽어도 지치지 않고 미소 지으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소설을 읽는 이유야 각각의 독자에 있어서 모두 다르겠지만, 다양한 OTT 서비스들이 즐비하고 있는 오늘날에 문학이 지속되려면 화려한 영상물들을 뒤로하고 딱딱한 문자들을 읽을 동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문학이라는 주제 속에서 문학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계속 읽을 수 있는 재미있고 참신한 소설들이 있어야 한다. 이장욱 작가의 소설들은 그러한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귀 이야기」를 읽는다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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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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