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공평과 공정 사이

긴 여정의 시작점에 서서 바라본 세상
글 입력 2022.07.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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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주변에 취업한 사람들을 보면 이젠 현타가 와.”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

 

지난주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가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종종 내게 유학을 하며 만나게 된 여러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 주곤 했는데, 그러한 그의 이야기들은 때때로 내가 갖고 있는 걱정들을 덜어주는 힘이 되어 주었고 동시에 마치 내가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사람인 것 마냥 느끼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위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유학을 온 사람들, 그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창업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 유학 생활을 마치고 유명한 해외 IT 업계에 스카우트를 받아 회사에 입사한 사람, 그 외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4년째 빵집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나에겐 그런 그 역시 대단해 보였다. 그는 더 이상 나이에 조급해 하거나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성공을 맛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의 주위론 은은한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에게 지난 목요일에 한 패션 기업 인턴으로 지원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다. 그는 내게 반드시 붙을 거라며 붙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하게 얘기했다. “100개를 넣어. 그러면 10개는 붙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심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이렇게 멋진 나를 안 붙이고 배겨?

 

그렇게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의 난 기술적으로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실무 경험이나 수상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회사에서 요하는 수준의 대단한 영어실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당 인턴쉽의 경우 이미 내정자가 존재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세상이 이럴 수 있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비슷했다. 안타까운 결과에 대한 위로와 현실 자각을 위한 충고, 어쩔 수 없는 업계 관례가 그 대답이었다. 다만 내가 겪은 일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했다.

 

회사에서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은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회사에 지원하는 방식 자체에 불공정함이 내재되어 있다면 어떨까. 사회적 지위가 있는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간 상황이라면? 뽑을 사람을 미리 정한 상황이라면? 다시 한번 더 언급하지만 잘하는 사람이 뽑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적어도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공정도 공평도 이 세상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꿔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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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친구들을 만나면 재밌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각자 얘기하는 주제가 조금씩 다른 점이 재미있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 8월 졸업을 앞둔 나와 내 친구 한 명은 취업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아직 한 학기가 더 남은 다른 친구는 다음 학기 수업에 대한 고민과 휴학을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주主다.

 

이제 막 대학의 시작을 앞둔 친구는 또 어떠한가. 긴장과 떨림, 고민보단 아주 멋진 미래를 꿈꾸고 있다. 스물넷,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에 입학했던 같은 과 언니가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앞두고 있어 만나면 늘 취업 얘기가 주를 이루니 이제 1학년을 다니고 있는 자신은 조금 소외된다던 언니의 말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조금은 바보 같은 대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의 마음을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으니 말이다.

 

어쩌면 언젠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불편한 상황들을 친구들이 이해해 줄 날이 올 것이다. 아니 그보단 이런 불편한 일들이 내 친구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더 바라보려 한다.

 

*

 

“솔직히 말해서 주변에 취업한 사람들을 보면 이젠 현타가 와.”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뉴스를 보다가 초등학교 동창이 기자로 일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 이야기,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어느새 고등학교에서 교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20살에 유학을 간 옛 친구의 최신 소식, 어느새 취업에 성공한 대학 동기들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끝이 없고 나만 초라해진 기분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더 노력하고 굳세게 일어나야지 않겠는가.

 

설마 내가 이런 일로 주저앉을 줄 알았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조금 늦더라도 멀리 내다볼 줄 아는 힘을 기를 것이다. 그렇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버티고 즐기며 살아봐야지. 오늘 같은 글에 어울리는 곡이 하나 있다. 작은 위로가 되는 곡, 윤상의 <한 걸음 더>.

 

 

윤상의 <한 걸음 더>

 

 

숨가쁘게 흘러가는

여기 도시의 소음 속에서

빛을 잃어가는 모든 것

놓치긴 아쉬워

잠깐 동안 멈춰서서

머리 위 하늘을 봐

우리 지친 마음 조금은

쉴 수 있게 할거야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해도

그리 늦은 것은 아냐

이 세상도 사람들 얘기처럼

복잡하지 만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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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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