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당신은 잠을 잘 자고 있나요? - 문화역서울284, 기획전시 '나의 잠' [전시]

글 입력 2022.07.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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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힘든 매일이다.

 

능력개발과 근면 성실한 삶의 모습을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잠'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고, 오히려 배척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에서 '주'가 잠을 자기 위한 공간, 즉 침실을 핵심으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잠은 곧 사치'로 여겨져왔다.

 

통계에 따르면 2020년 OECD 국가 중, 한국 사회의 평균 수면시간은 최하위이며 수면장애 환자는 90만 명에 다다른다. 학업에 열중하는 고교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5.8시간으로 집계됐다. 기면증, 불면증, 하지불안증후군, 무호흡증 등의 수면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잠'은 사치여야만 하는가? 더 이상 사치가 아닌, '잃어버린 시간'인 잠을 되찾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동감한 기획자와 예술가 집단은 서울역에 위치한 문화역서울284에서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는 7월 20일부터 9월 12일까지 55일간 개최되며 정지된, 혹은 줄여야 하는 시간으로 간주되어온 수면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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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부터 9월 12일까지 개최되는

문화역서울284 기획전시 < 나의 잠 >

 

 

문화역서울284은 두 번째 기획전시 < 나의 잠 >을 통해 일상적인 행위인 '잠'에 주목하여, 잠에 대한 사회 보편적인 통념을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해석으로 재탄생시킨 작업을 전시한다. 모두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소재인 '잠'을 주제로 선정해 소개하는 것은 일반 대중에게 일차적인 흥미를 불러온다.

  

더 나아가, 단순한 수면 활동이 아닌 역사·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잠의 의미를 되짚고 이를 기반으로 한 예술문화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전시에서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고, 일인칭이자 나의 것인 고유한 잠을 1인칭의 세계로 풀어낸 국내 19팀의 작품이 영상, 미디어아트, 사운드, 텍스트 등 다양한 시각예술 매체로 공개된다.

 

특히 중진 작가부터 신진작가 세대까지, 전 연령대로 이루어진 19팀이 주제에 맞추어 작업한 70여 점의 신작을 80% 이상 선보이기에 동시대 미술계의 흐름을 살펴볼 기회이기도 하다.

 

 

 

시간대를 기준으로 분류되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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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잠 > 전시는 시간대를 기준으로 섹션이 분류된다는 특징이 있다. 먼저, 첫 번째 섹션은 '한낮' 시간인 ▲나의 잠 / 너의 잠이다. 밤이 아닌, 한낮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모두 타인들의 시선에 노출돼있으며 은밀하고 사적이기보다는 공공의 잠으로 정의할 수 있다. 1인칭인 동시에, 응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전시 기획자는 한낮에 드는 잠을 '비-순응적 잠'이라 명명한다. 이들이 왜 한낮에 잠이 드는지를 밝혀내려 하면서, 결론적으로는 계층과 직업, 젠더와 사회적 행동의 차원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려 한다. 물음에 관한 답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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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김홍석 < 침묵의 공동체 >, 조각(설치) 12점, 2017~2019

 

 

섹션 1의 대표작인 김홍석 작가의 < 침묵의 공동체 >는 서로 다른 직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인의 잠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동물의 탈을 쓴 채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퍼포머는 대학생, 태권도 사범, 유명 영화배우, 전직 경비원 등 직업이 제각기다. 겪고 있는 상황도 다르다.

 

특이한 점은 이들이 스스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 아닌, 대가를 지불받으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것. 어떠한 연유로 전시장에서 행위예술을 하게 됐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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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머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모습

 

 

그 궁금증은 퍼포머의 옆에 설치된 판넬에서 즉각적으로 해소된다. 과거와 현재의 직업,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계기와 행하는 시간대, 지불받는 비용과 방법 같은 정보가 기입돼있어 관람객들은 동물 탈 안의 인물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가 일하고 있는지, 잠들었는지, 혹은 쉬는 건지, 깨어있는지를 알 수 없다. 단지 추정할 수 있고, 깨어있음과 수면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있다는 사실만 눈치챌 뿐이다.

 

침묵으로 연결된 퍼포머들은 현대인의 통상적인 잠을 지시하듯 불편하고 어색한 공간을 구현하며 내면의 긴장감을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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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김대홍 < 잠꼬대 >, 영상설치, 가변공간설치, 혼합재료,

프로젝터 및 싱글채널 비디오, 33x25x40cm 내외, 2022

 

 

두 번째 섹션은 저녁 '11:20'을 가리키는 ▲반쯤 잠들기다. 밤 11시는 늦은 시간이지만, 동시대인에게는 나머지 일을 처리하거나 또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일종의 연장된 낮이 되어버렸다. 자연스레 잠은 계속 연체되어 수면의 양을 단축하고, 늦은 잠을 자게끔 했다.

 

기획자는 "수많은 이들이 만성적인 가면(假眠) 상태 혹은 비몽사몽의 시간을 열렬하게 소비한다."라고 말하며 '자본주의적 불면의 시간'으로 명칭 짓는다.

 

이러한 정의는 로봇, 설치, 뉴미디어 매체를 다루는 김대홍 작가가 잠을 뒤척이는 작은 로봇들을 만들어 잠을 표현한 작품 < 잠꼬대 >에서 명확해진다. 비닐봉지나 알루미늄 포일 뭉치의 모습을 한 채 전시장 곳곳을 나뒹구듯 돌아다니는 작은 로봇의 움직임은 연장된 낮 시간을 마침내 겪고 비몽사몽한 채 잠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투영한 몸짓 같다.

 

로봇은 잠에 빠져드는 비디오 프로젝터가 자신을 작은 종잇조각에 비추어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조그마한 종이에 간단한 이모지로 나타낸 표정에는 작가의 유머러스함과 함께 왠지 모를 웃픔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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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최윤석 < 슬립북(Sleep Book) >, 출판물, 2004~2022

 

 

세 번째 섹션은 새벽 '1:30'을 가리키는 ▲작은 죽음이다. < 나의 잠 > 전시에서는 이 시간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어 취약하고 방심한 상태로 본다.

 

최윤석 작가의 < 슬립북 >은 과거 자신이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모습, 즉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지인들이 촬영해준 사진 모음집으로 엮은 출판물 작업이다. 잠에서 깨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는 마주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자화상 이미지를 날짜와 장소 데이터와 나열한 자전적인 작품인 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법한 작가의 19년 동안의 기록은 관람객들에게 재미와 더불어, 놀라움에서 우러나온 공감을 선사한다.

 

 

004_(0340) 유비호 예언가의 말 (ver.2022), 단채널 영상, 31분 55초, 2022.jpg

(3:40) 유비호, < 예언가의 말(ver.2022) >, 단채널 영상, 31분 55초, 2022

 

 

네 번째 섹션은 새벽 '3:40'을 가리키는 ▲집의 시공간이다. 이 시기는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 상태에 접어드는 시간으로, 인간의 뇌는 기억과 고통에 연관된 많은 정보를 정리한다고 한다.

 

미디어를 통해 예술적 세계를 구축하는 유비호 작가는 < 예언가의 말(ver.2022) >에서 눈을 감고 잠들어 있지만, 잠꼬대하듯 읊조리며 미래를 내다보는 한 예언가를 보여준다. 이로써 작가는 깨어있는 이들이 잠들어 있고, 오히려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든 예언가가 더 깨어있는 역설을 다룬다.

 

작품에서 드러난 역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수많은 사건과 장면을 연결하면서 현재에 놓인 숱한 난관들을 극복해온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잠'의 유용성을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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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한 번 깨기) 박가인, < 갈팡질팡하다(Bumble) >, 현수막, 100x70cm, 2022

 

 

다섯 번째는 '새벽에 한 번 깨기' 시간대로 구분된 ▲함께 잔다는 것 섹션이다. 혼자 자는 잠뿐만 아니라, 타자와 함께 청하는 잠을 나타내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본 섹션에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박가인 작가는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신과 유사한 30대 여성들이 경험하는 '함께 잠드는 일'의 이미지를 설치작업으로 구체화해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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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업

 

 

작가는 자신의 방에 있는 소품과 구조를 그대로 옮겨와 친구들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며 마치 관람객들이 프라이빗한 공간을 들여다보는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혼자 잠들곤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잠들곤 했던 공간을 타인에게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작품은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수면 방식과 장소성을 직접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함께 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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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D 콜렉티브, < 더 블루(The Blue) >, 혼합매체, 가변크기,

빔프로젝트, 1300x360cm, 2022

 

 

마지막 섹션은 '7:00'로 구분된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다. 얕고 깊은 잠의 반복 끝에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에서 우리는 잠의 끝을 무엇이라 정의할지, 삶과 잠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사유하게 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D 콜렉티브는 서울 도심의 거리 중, 을지로와 청계천 전체를 평면 이미지로 스캔해 렌더링한 결과를 담아낸 작품 < 더 블루 >에서 새벽의 시간대를 강조한다.

 

짙은 어둠이 깔린 후, 다시 밝아지며 도심의 오래된 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변화를 포착하는 영상에서 관람객은 인간의 잠을 포괄하는 세상의 전적인 흐름을 응시하게 된다. 거대한 세상이 다시 깨어나는 동안 자기 자신의 '깨어있지 않음'은 어떻게 정의되었을지, 또는 어떤 방향으로 정의되어야 할지에 관한 고민을 일삼으면서 말이다.

 

 

 

당신은 잠을 잘 자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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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기획 총괄한 유진상 예술감독은 모든 이가 잠을 '나머지' 또는 '여백'이 아닌, 삶의 커다란 영역에 자리한 중요한 의미로서 다루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예술감독의 따스한 바람이 닿았던 것일까, 문화역서울284의 두 번째 기획전시 < 나의 잠 >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잠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다채롭게 풀어내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섹션 1부터 6까지, 저녁에서 새벽을 거쳐 아침으로 가는 잠의 단계를 섬세하게 해석한 작업을 한데 모은 종합선물 세트같이 전시에 뒤섞인 메시지는 "당신은 잠을 잘 자고 있나요?"라고 총체적으로 묻고 있다.

 

잃어버린 잠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와 소중하게 다루어 사랑하는 노력이 필요한 지금, 이번 전시는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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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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