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별'이들에게 - 가별이를 찾아서

꼭 훌륭해야 하나? 그냥 너는 '너'로 살아.
글 입력 2022.07.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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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별이를 찾아서] 포스터.jpg

 

 

 

간만의 연극

 

아주 오랜만의 연극이었다.

 

4월 초에 보았던 극 <스메르쟈코프>이후의 첫 연극이었으니 말이다. 그 날 내가 느꼈던 선선하고 간지러운 봄날 저녁은 온데간데 없고, 거리는 온통 뜨거운 태양과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일요일, 더위를 뚫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소극장 [공간 아울]이었다. 그곳에선 연극 <가별이를 찾아서>가 한참 공연 중이었다.

 

연극 <가별이를 찾아서>는 팀 [정:지]의 작품이다.

 

다 커버린 어른 '가별'이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극으로, 작은 무대 위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가별이부터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한 가별이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가별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하여 팀 [정: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거기에 초점을 두고 극을 감상해보았다.

 

극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가별이의 부모님은 늘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입학한 후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훌륭한 어른이 되는 법이라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처럼 훌륭한 어른이 된 가별이는 이제 행복한 어른이 되고자 여행을 떠납니다.

 

반명 가별의 첫사랑, 경준이는 하고싶은 일을 찾아 원하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 경준이는 돌연 사라져 버린 첫사랑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가별이와 경준은 처음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 각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극은 다 커버린 가별과 경준의 독백, 등장인물들의 바쁜 발걸음으로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대사는 가별이가 뱉은 '내가 다 큰 것 같아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그것은 관객, 즉 우리사회에게 던지는 질문이였기 때문이다.

 

사실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조차도 어른으로서 응당 책임져야만 할 것들 - 이를 테면, 월세나 공과금, 보험료 등등 -을 온전히 지고 있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나는 내가 덜 컸다고 생각하는데, 저 대사를 들으니 공감력이 막 솟았다. 그리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길을 나선 '가별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놉시스만 읽었을 때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다.

 

 

'다 커버린 어른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고 했을 때, 몇 명이나 박수쳐줄까? 너무 늦지는 않은 걸까?'

 

 

우리 사회가 나이 앞에서 얼마나 매정한 태도로 구는지 알기에 나오는 마음의 소리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조차도 그렇게 듣기 싫어했던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른.

 

책임져야 할 것들은 늘어가고, 정작 '나'는 흐릿해져만 가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던 요즘, 그 생각들을 한 큐에 정리해줄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감상을 이어나갔다.

 

 

 

휼륭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작품 내내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훌륭하다'이다.

 

'훌륭한'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훌륭하다 : 썩 좋아서 나무랄 데가 없다.

 

 

썩 좋아서 나무랄 데가 없다라.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한 상태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객관적으로 '성공한' 삶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성공한' 상태가 모두에게 훌륭한 상태로 받아들여지느냐고 물었을 때, "네"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과연 훌륭하고 착한 어른이 과연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 살고 있다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아실현, 행복을 얻지 못해도 겉보기에 '훌륭한' 사람이면 그 사람은 정녕 성공한 삶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가별이는 극 내내 끊임없이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기를 강요 받는다. 학창시절에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대기업에 취직을 하는 삶이 '훌륭하다'고 학습되어 결국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할 때까지도 끊임없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을 살게 된다.

 

가출 전까지, 그녀가 사는 목적은 그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서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는 딸이 되는 것. 그저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고 나면, 그 즈음에 행복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관객으로서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녀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좋은 성과를 거두는 멋진 사람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게 없는, 말하자면 향이 없는 꽃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이렇게 보기 좋지만 향이 없어서 벌레나 벌같은 것들이 꼬이지 않는 '보기 좋은' 일꾼을 찍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진정한 '나'로 살기


 

부모님이 정해둔 성공한 사람의 상에 맞춰 살아온 가별이는 공허한 대답과 질문을 던지다가 극 중반부가 지나서부터 마침내 '나'로 살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돌연 자신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가별이를 주변사람들이 찾아 나서면서, 인물들과 관련된 일화를 풀어가는 형식과 현재의 가별이를 보여주며 전개된다.

  

그녀 주변 인물 중에서도, 경준과 혜나는 주체성이 강한 인물이다. 뭘 좋아하고, 어떤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가별이도 조금 더 빨리 상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이유를 물어나가며 삶을 개척하는 자세로 살았을 수도 있었을 지도.

 

특히 가별이의 친구로 등장하는 '혜나'라는 캐릭터는 아주 능동적이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공부 하고 좋은 성과를 내지만, 이 모든 것의 이유는 결국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라는 아주 뚜렷한 목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가별이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의문을 제기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말들은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되어 천천히 가별이를 변화시킨 이유가 된다.

 

그렇게 가별이는 조금 늦은 20대 중반에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상당히 억울했을 법도 한데, 가별이는 지금껏 그래왔듯 차분히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조금 느려 어딘가 답답해보이는 그녀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가출한 왜 그녀는 수많은 장소 중에서도 바다가 있는 도시를 선택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 경준과 강에서 쌓았던 기억을 다시 찾아 나서는 행위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잊고 지냈던 '좋아하는 것'들을 꺼내어 내기 위한 작은 발걸음 말이다. 또, 끝이 없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저 수평선 너머의 세상에 기대를 걸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끝이 없음 앞에서는 지금 갖고 있는 고민이나 상황들이 모두 하찮게 느껴지는 마법같은 힘이 있다.

 

또한 여행을 떠나 '나'를 찾는다는 점에 깊이 동감했다. 여행은 진정한 '나'를 찾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오롯 혼자 경험하고 책임지는 수많은 것들은 결국 여행이 끝날 무렵에 유산이 된다. 바삐 흘러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상황을 객관화 하고 정의 내리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흥미로웠던 점


 

<가별이를 찾아서>가 여느 극과 달랐던 점은 단연 'UGLY MOVEMENT'를 사용하여 인물의 감정선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극 중간 중간 끊임없이 춤을 추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생경했으나 보면 볼수록 움직임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한 것들을 생각해보면서 관객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던져주는 장치가 아니였나 싶다.

 

극 브로셔에 적혀있는 기획의도 말미에도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 대사와 움직임으로 입체적으로 표현하여 다른 선택지 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을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 내면을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고등학생이 느끼는 중압감과 쉼없이 몰아치는 일정들을 5분이 넘는 시간동안 격렬하게 몸을 흔듦으로써 보여주기도 하고, 막 성인이 된 가별이의 고민들이 강렬한 웨이브들로 표출되기도 하는 연출은 아주 신선했다. 이렇게 역동적인 극은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배우들이 몸을 잘 써서 보다 극적으로 느껴지면서 예술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아쉬웠던 점


 

좋은 극이었지만, '가별이'에게 내내 느낀 답답한 감정이 아쉬웠다.

 

남들의 잣대에 맞춰서 사는 수동적인 태도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공연이 끝난 후, 함께 관람함 친한 언니와 대화를 나누다 이런 말을 했다. "가별이에게 많은 공감을 하고 위로도 보내주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별이는 꽤 답답한 캐릭터인 것 같다. 그걸 의도했겠지만,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대사나 태도가 있었다."

 

사실 나도 남들의 기준에 나를 끼워밎추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숱한 날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보는 것이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 널려있는 자식상이면서도, 열심히 시기 별로 해야 할 것들을 수행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모른 채로 커버린 어른은 결국 우리기 한 번 씩은 겪었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며


 

극 중 인상깊었던 대사들 중에서도, 앞서 말했던 혜나가 말한 문장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대사는 고등학생 시절 혜나와 가별이의 대화 중에 나온 것이었으며,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혜나 :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만 보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어."

 

 

이후 비슷한 장면이 또 등장한다. 그 씬에서 혜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계속 추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부도 못하는 게 무슨 춤이야? 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걸 계속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걸 해야만 했다는 말이다.

 

결국 훌륭한 어른이라는 것은 자신의 목적과 목표에 맞게 열심히 삶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이번 연극이 전하는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적당히 하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지닌, 자신이 사랑하는 것쯤은 명확히 아는 어른이 되자는 것 말이다.

 

극 종료 후 짧게 '관객과의 시간'을 가졌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어른이 되면서 꿈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꿈과 멀어지는 거죠. 꿈은 곧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극을 보는 관객분들깨서 꿈, 그러니까 정체성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좋은 작품은 보는이로부터 수많은 질문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별이를 찾아서>가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재미있게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닌, 잘못된 분위기를 꼬집고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상기시켜 주는 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세상에 존재하는, 지금도 고군분투 중인 수많은 '가별이'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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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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