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 - 막스 리히터 스페셜 [공연]

미니멀리즘 음악의 세계
글 입력 2022.07.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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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일, [막스 리히터 스페셜] 공연이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렸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 지휘자 아드리엘 김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가 함께 무대를 구성했다.

 

나에게 운명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클래식 공연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가끔 상상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장례식장에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을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선택할 거다. 어떤 음악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데 나에게 이 음악이 그랬다. 설레는 마음으로, 예술의전당을 향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요제프 하이든의 <무인도> 서곡을 시작으로 장 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레 보레아드> 모음곡,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이다. 막스 리히터는 대표적인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곡가다. 그는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On the Nature of Daylight, 빛이 우리에게 닿기를


 

중간 휴식 15분 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4개의 현악기만 자리에 남았다. 음악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들었는데, 현악기로만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처음 비올라가 메인 선율을 이끌어가며 첼로가 뒤를 받쳐준다.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선율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린다. 그리고 바이올린이 다시 메인 선율을 따라간다. 한 층 톤과 스케일이 커졌다. 어느 한 지점을 위해 음악이 흘러간다. 음악은 대체로 커다란 기승전결은 없다. 간단하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비올라와 첼로가 연주할 때부터 눈물을 참아야 했다. 김애란 작가의 책 『바깥은 여름』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 『바깥은 여름』 김애란

 


On the Nature of Daylight는 사람의 인생(人生)을 닮았다. 인간은 매일매일 하루를 산다. 돌아보면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나있다. 별거 아닌 하루를 쌓았다고 생각할지라도, 돌아보면 근사한 삶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해준다. 이 곡에서도 영원한 움직임처럼 선율이 반복된다. 매번 똑같은 것 같아도, 여러 겹 악기의 소리가 쌓여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준다.

 

힘들거나 실패하고 위로가 필요할 때, 이 곡을 한 곡 반복으로 자주 들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곡이 실제 연주로 들으니 달랐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은 따로 또 같이 하나하나 꾹꾹 누르는 손가락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는 평생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음악을 통한 위로의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실제로 막스 리히터는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인 The Blue Note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폭력 메시지와 자신의 가장 내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은 끝났지만 다른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5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이 곡의 메시지가 그곳까지 가닿았으면 바란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jpg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

 

 

 

막스 리히터의 <사계>, 비었지만 다시 찼다.


 

우리가 지겹도록 들었던 비발디의 사계가 맞다. 막스 리히터는 사계를 재구성하면서 음악의 25%만 남겨두고 75%를 버렸다. 남은 25%가 우리가 아는 음악이 맞을까? 의심스러울 수 있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익숙하다.


공연장에 하프가 들어왔다. 커다란 하프의 소리는 어떨까? 기대감이 커졌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가 들어오고, 막스 리히터의 사계가 시작했다. 그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개의 협주곡으로, 총 13개의 악장(Spring 0 포함)으로 구성한다. 개인적으로 막스 리히터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계절은 ‘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특징인 미니멀리즘 음악 요소가 잘 드러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가 음악을 끌어가는 힘에 반했다. 특히 여름 1악장을 연주할 때, 그의 역동성이 멀리 있는 나에게 전했다. 사계 연주는 모든 단원이 하나의 끝을 향해 함께 달려간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나의 절정을 향해 끝없이 연주하고, 결국 그 끝이 마침내 도달했을 때 다 같이 활시위와 손을 올리는 모습은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연주를 통해 계절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아드리엘 김 지휘자의 뒷모습도 여전히 두 눈에 아른거린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뜨거웠다. 계속된 박수 소리는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드리엘 김 지휘자를 몇 번씩 무대로 붙잡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연에 연주된 곡을 헤드폰으로 다시 들었다. 확실히 공연을 보기 전과 후가 달랐다. 공연 전에는 음악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메인 선율에 집중해서 들었다면, 공연 후에는 곡 속에 숨겨진 다른 악기의 소리를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 듣기 위해 집중했다.

 

클래식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멋진 연주를 통해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경험을 느끼게 해줘서 감사하다.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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