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별이를 찾아서'
쉴 틈 없이 집중하게 되는 연극이다.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이 쉬지 않는다. 그들의 몸짓을 따라가다 보면, 종종 숨을 참기도 하고 편한 숨을 내쉬기도 한다.
무대를 이토록 알차게 쓸 수 있을까? 잉여 공간 없이, 모든 곳에 배우의 발길이 닿고 관객의 시선이 머문다. 계속해서 변주되는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배우의 몸짓, 춤, 표정, 대사, 발걸음이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당긴다.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연극, ‘가별이를 찾아서’를 소개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훌륭한 어른이 되렴.’,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지.’
연극 ‘가별이를 찾아서’는 묻는다. 훌륭한 어른이 대체 뭔데?
가별이와 혜나
가별이는 훌륭한 어른,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혼자만의 여정을 떠난다. 그녀의 인생에서 마주친 누구도 그녀의 여정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부모님, 선생님, 펜션 사장님, 교수님, 친구, 첫사랑 중 어떤 이도 가별이가 답을 찾는 과정에 억지스럽게 관여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면서 보듬을 뿐이다.
가별이와 그의 친구 혜나의 관계가 특히 흥미롭다. 가별이는 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혜나를 우러러 보는 듯하다. 혜나는 계속해서 혼자만의 여정을 걷고 있었다. 목표가 뚜렷하고,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그녀의 눈빛은 반짝 빛이 난다.
혜나는 가별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그녀에게 오로지 질문만 던진다. 대체 네가 되고 싶다는 훌륭한 어른이 뭐야? 그녀는 가별이를 응원하고 자신의 길을 걸을 뿐, 가별이의 이야기를 직접 끌어내 주거나 명시적인 힌트를 주지 않는다. 방관자처럼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 뿐이다.
혜나와 가별이의 관계에서 정인정 연출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나를 찾아간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 없는 혼자만의 여정’이다.
자연스러움, 내면의 표출, 자유분방
여정이 계속될수록 가별이의 표정, 몸짓과 말투가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주변의 몸짓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별이도 나름 그 몸짓을 따라 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가별이는 자꾸만 자유분방한 몸짓을 알려주었던 첫사랑 경준이를 떠올린다. 무대 위의 천 뒤로, 동시에 천 앞으로 경준이가 돌아다니면서 그의 생각으로 가득한 가별이의 머릿속을 표현한다. 경준이가 알려주었던 몸짓은 자유분방하지만, 자연스러웠다. 내면의 것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다. 누구보다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고, 종종 수려한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
경준이와 함께 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여정을 걷는 가별이의 몸짓은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속초에서의 웃음은 혜나의 눈빛처럼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여정의 끝, '뮤즈'
가별이의 여정이 혼자만의 것이라고 해도, 경준이, 혜나 모두 그녀에게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다. 이는 그림자를 연출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가별이의 눈에는 혜나는 큰 사람이고, 자신은 작은 사람이었다.
공연장 한쪽에 비춰진 혜나의 그림자는 선명하고 컸다. 자신의 꿈이 뚜렷한 경준이의 그림자도 크고 선명하다. 그에 반해 가별이의 그림자는 작고 짓눌려있다. 그러나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그녀의 여정은 결국 스스로에 의해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런데 가별이의 성장이 결국 누군가의 뮤즈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주변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가별이가 알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뻔한 이야기일지라도, 뻔해서 더 몰입되었다. 다들 조금이라도 공감할 이야기이니까. 그러나 결국 누군가의 뮤즈가 되어버린 결말이다. 가별이의 주체성을 조금 더 조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뮤즈가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혼자만의 여정을 걷는 이는, ‘뮤즈’, 즉 다른 사람에게 이미 빛나는 사람이자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가별이는 이미 경준이에게 빛나는 사람이었다. 어딘가 자유로운 눈빛, 그리운 눈빛을 지닌 사람.
결국 혼자만의 답을 꾸준히 찾고 강구하는 사람. 그는 그 자체로 이미 빛나는 사람이다.